▲ 28일 오전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선거캠프였던 건물에서 대형 현수막이 철거되는 모습. ⓒ뉴스1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이미 사퇴했지만 역설적으로 대선정국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단일화 이전과는 달리 안철수 후보와 민주당을 구분해서 대처하려는 행보를 보인다. 안철수 정치쇄신안과 새누리당 정치쇄신안의 유사성을 강조하거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처럼 ‘순진한 안철수를 문재인이 꼬드겨 (정치적)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 직후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과 만난 것도 화제가 된다. 민주당에서 ‘비노’로 분류되는 손고문이 안후보에게 대선에 결합해줄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친노’의 피해자들끼리 모여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타진한 게 아니냐는 예측도 있다. 안철수 후보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정치를 했지만 아직까지 정치권의 주 플레이어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 안철수’의 장래는 어떨까? 정치가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예측이 있어야 그 정치인이 그저 가능성이 높은 길로 평범하게 나아갔는지 아니면 모종의 반전을 이루어냈는지를 구별할 수 있다. 안철수의 정치적 가능성을 단기/중기/장기로 나누어 평가해 보았다.

단기 : 매우 맑음

안철수의 정치적 입지를 대선까지의 ‘단기’ 국면으로 파악해 보면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라 요약할 수 있다. 지금의 정황과 민주당의 대처능력으로 볼 때는, 설령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안철수의 승리’가 되고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문재인과 민주당의 패배’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3% 정도 박근혜 후보에 뒤지는 민주당이 다른 추격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안철수 후보의 구원등판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선거운동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안철수의 생각’에 달려 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구도가 유지될 것이고 그의 ‘정치적 몸값’은 선거가 지금과 같은 박빙구도로 흘러간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중기 : 자욱한 안개

그러나 문제는 선거라는 특수한 국면에서의 가치상승을 안철수 후보가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것이다. ‘사퇴’라는 결단이 정치적으로는 ‘자살’에 해당한다는 이회창 전 총재의 비난은 절반 정도는 타당하다. 안철수 후보는 개인의 이미지를 살리고 대선 때까지의 영향력은 유지하게 되었지만 대선 이후 정치영역에 개입할 조직력은 여전히 전무한 상황이다. 그를 따라 캠프에 온 인력들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든 낙선되든 안철수 후보에게 정치적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승리할 경우 승리하는 대로 그에 공로가 있는 안철수 후보에게 무언가를 나눠야 한다는 여론이 생길 것이고, 패배할 경우 또 패배하는 대로 쇄신하지 못한 민주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철수 후보에게 무언가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가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안철수 후보에게도 민주당에게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다소 거칠게 구별하면 대선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그와 그의 측근들이 여의도에 입성하는 길과 민주당 및 야권을 개혁하기 위한 당내 조직 혹은 당외곽 조직의 수장이 되는 길이 있을 수 있다. 현재 16곳의 지역구에서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며 특히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엔 현재 그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역시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일각에선 문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그의 지역구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안후보를 배려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문후보가 낙선하거나 부산 지역구를 비우는 것이 녹록치 않더라도 수도권 지역구에선 안후보가 무난히 당선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안철수의 여의도 입성은 정치쇄신의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논공행상’이나 ‘권력분점’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에 대한 지지가 ‘여의도 바깥의 정치’에 대한 열망에 기인한 면이 큰 만큼 이런 방식의 정치권 진입이 과연 ‘안철수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뱃지는 쉽게 달 수 있겠지만 안후보가 ‘새 정치의 상징’에서 그저 그런 300명 의원 중의 한 명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반면 정치쇄신을 위한 당내 조직 혹은 당외곽 조직에서 역할을 맡을 경우 이미지 훼손에 대한 부담은 없는 반면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 한국의 정당조직이 아직 당료의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한 곳이 아니고, 일종의 ‘국회의원 조합’의 형식으로 운영되는 실정에서 민주당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포장지’로만 소모되고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길 이외에도 다른 선택지도 있다. 안철수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하기 전 윤여준 전 장관 등과 계획했던 것처럼 일종의 국민운동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지들은 앞서 말했던 선택지들에 비해 위험부담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안철수 후보가 다른 선택을 통해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장래는 중기적으로 보면 ‘자욱한 안개’가 낀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장기 : 흐림

사실 안철수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장기적 예측은 중기에서 나오는 성과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만을 놓고 보자면 안철수 후보가 이번에 보여준 정치의 방식은 장기적 전망을 밝게는 보지 못하게 한다.

“대통령 후보로서도 영혼은 팔지 않았다”는 사퇴 후의 발언은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과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진심’이었음을 강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단일화 협상에서도 드러났듯 그러한 ‘진심’이 과연 정치영역에서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지, 정말로 그게 ‘진심’이라고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는 하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안철수의 진심캠프 측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내세웠던 제안은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심’은 정치영역에선 유연성이 없다거나 협상을 모른다고 비춰질 소지도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막상 협상과정에선 그러한 ‘진심’을 알지도 못했고 오히려 그들이 민주당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다.

안철수 캠프 측이 호남의 자발적인 후원자들과 선을 그은 부분도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를 보았을 때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번 단일화 국면에서 호남은 오래도록 캐스팅보트를 행사했고, 친노세력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쉽게 풀지 않았다. 즉 호남은 안철수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남의 사위’와 같은 멋들어진 수사도 나오긴 했지만 안철수 캠프의 정서는 수도권 중산층의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들은 안철수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호남의 후원단체들과 거리를 두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 역시 ‘구태정치’의 일부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유력자들이 정치인을 후원하겠다는 것이 꼭 ‘구태정치’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안철수 후보는 상당 기간 동안 호남만 확실하게 잡고 있으면 결코 다자구도에서 3위로 밀려나지 않을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이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 역시 ‘진심’의 부작용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 제안이 정치개혁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과는 상관없이, 정치권 및 정치학자들로부터 많은 반발을 받은 제안을 돌직구처럼 계속해서 밀어붙인 것이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새정치 공동선언문 이후엔 굳이 이 이슈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단일화 토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측에 공동선언문이 사실상 정수 축소와 같다고 주장하면서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린다는 인상을 줬다. 민주당이 이전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쟁에 대해 관망하다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중앙당 폐지라는 대안을 보고 급격하게 문재인 후보로 쏠렸다는 증언도 있는 것을 보면 안철수 후보 측의 ‘진심’에 입각한 ‘무전략’의 정치가 과연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해낼 수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는 안철수 후보가 정치권에 진입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설령 대통령이 되어 통치를 할 때라도 문제가 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정치영역에서 ‘진심’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감동을 받는 그 행동들은 대체로 가장 세련된 전략을 통해 연출된 ‘진심’이지 ‘진심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적 경쟁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데에 있다면 이처럼 ‘진심’을 전달하는 기술의 중요성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안철수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안철수만이 아냐

물론 이러한 장기전망은 지금의 안철수 후보와 캠프의 행동양식에서 추론한 것일 뿐이다. 중기과정에서 안철수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러한 행동양식이 또 다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고 행동양식 자체가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상식적인 가능성을 따진다면 여전히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작업의 난이도는 ‘극악’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안철수 후보의 무능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에게 사람들이 투영하는 열망을 받아 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원인에 대한 해법이 안철수 개인의 영웅적인 행보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정치쇄신이나 개혁의 상징을 일개인으로 묶어 두는 것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 층위의 제도개혁 논의를 해야 안철수 개인의 정치적 운신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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