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완전히 졌다. 길었던 밤이 지나고, 청와대의 오늘은 다소 불편했던 일요일 아침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역사는 출범한지 채 100일도 안된 정부가 사실상 '불능'상태에 빠진 아침이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아직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패배는 너무나 확실하다. 2MB는 완전하게 졌다.

시민은 패배를 모른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시민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민주주의는 성립한다. 한번 나서면 패배할 수도 없고 패배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시민은 언제나 신중하다. 어젯밤 초유의 시민들이 밤새워 청와대 앞에서 '이명박'의 이름을 불렀다. 요구는 단 하나였다. "이명박 물러가라!"

▲ 1일 오전 5시 30분경 광화문 앞 강제진압 상황 ⓒ윤희상
깃발을 앞세운 대오들이 불가항력으로 모여든 인파에 시청광장에 들어서지 못했을 때, 어젯밤의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광장에는 사상 최대의 촛불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 촛불에 경찰은 기름을 부었다. 시청 앞이 아닌 청와대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100여명의 시민들을 강제 진압했다. 10만을 넘는 촛불들은 즉각 행사를 중단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말하지 않았었나, 울고 싶은 사람 뺨을 때리겠다는 자세로는 어떠한 '정치'도 할 수 없다고.

언제나처럼 시민 앞에는 전경 버스가 있었다. 육중한 몸매, 단단한 방어. 지난 수년간 한 번도 뚫려본 적이 없는 괴물이었다. 지난번까지는 시민들도 그 고까운 '괴물'의 위용을 인정했다. 그 인정의 마음마저 버린다면 정말이지 이 정권이 버틸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시민들은 그 '괴물'을 넘어섰다. 너나 할 것 없이 그 고까운 괴물이 뿜어내는 물줄기를 맞으며 버텼다. 밤새 버티며 넘었다.

▲ 1일 오전 시위 진압과정 중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한 여성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피를 닦은 거즈. ⓒ윤희상
사실, 그 괴물은 얇고 또 얇은 벽이었다. 어떠한 국가도 시민을 '전경 버스' 한 줄을 막아 놓고 통치를 할 수는 없다. 지금, 2MB는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버틸 수 없는 버티기로 연명하기 시작했다.

" ...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을 통해 배우고 있었고, 자기 확신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품위 있는 중간 계급 가정에서 왔고, 아무것도 해 보거나 말해 보지 못한 이 모든 애들이, 이제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술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장터 같은 공공 장소의 민주주의 였으며, 말하는 데 누구도 특권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했었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를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 "

- 1968년, <68혁명> 당시 영국 헐 대학을 점거했던 어느 시위대의 말 중에서

설마설마 하던 집회가 자정을 넘기고, 첫차 시간을 넘기고, 해가 완전히 뜨고도 끝나지 않는 동안에 시위대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말했다. 무자비한 '살수' 앞에서 시위대는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이왕 뿌릴 거라면 '온수'를 뿌려달라고 외쳤다. 그것은...... 방패를 긁으며 거리를 부수겠다는 심산으로 달려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집단 이성'이 '2MB의 독단'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촛불 누구 돈으로 샀는가 알아"오라는 저질스런 수준에 대한 이성적인 대응이었다. 그러나 정권의 대답은 다시 한 번 수준이하의 폭력, 그 자체였다.

물대포에 맞은 고등학생의 눈이 실명 위기에 빠졌고, 차벽 위에서 취재하던 외신기자를 차 아래로 떨어뜨렸다. '집단 이성'의 상징적 아이콘이었던 진중권, 한홍구 교수를 연행하였다. 학생을 패고, 기자를 떨궈내고, 교수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경찰은 최후의 정리를 위한 호송차와 기동타격대를 전진 배치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또 세심하게 보도의 논조까지 신경 쓰며, 비겁하게도 마지막으로 경찰이 원하는 것은 대결이 아닌 대화라는 선전을 했다.

그리고 곧 은밀한 준비가 끝나자 새까맣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상황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의 지휘관은 확성기가 터져라 "아고라 깃발, 잡아"를 외쳤고, "항의하면 연행하라"고 지시했다. 전경의 입에선 차마 담기 힘든 쌍소리가 나왔고, 목덜미를 쥐어 틀린 연행자를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요구하던 시위대는 인도에 고착됐다.

▲ 1일 오전 시위대가 대열을 맞추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윤희상
몇 초 지나지 않아 청와대 앞길에는 경찰의 수신호를 받고 달려온 차들이 전경과 시민 사이에서 곡예운전을 시작했다. 갓 스물이 넘어 명령에 의한 폭력이 얼마나 가차 없는 것인가를 체험한 전경의 낯빛에도 그제서야 두려움이 비쳤다.

일단, 오늘의 상황은 이렇게 종료됐다. 2MB는 얇디 얇은 벽 뒤에 숨어서, 동원된 청춘들에게 폭력을 명하면서. 그렇게 하룻밤을 더 버텼다. 그리고 그는 오늘 오전 자신만의 절대자 '하나님'에게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을 기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무수한 절대자 '하느님'들이 더 이상 그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지 않기로 했음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생전 집회라는 것에 처음 나와 본 듯한 어느 학생의 눈물에서, 어느 주부의 구토에서, 어떤 아저씨의 울음에서 그것은 숙성되고 있었다. 그것은 올바른 질문을 제기했지만 올바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이들의 처절한 분노였다.

2MB, 차라리 두렵다고 말하라.
마지막으로, 알아듣기 쉽게 경고한다.
장로가 하나님 앞에서 나약해지는 것처럼 대통령이 국민 앞에 두려운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가 계속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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