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현 신부가 '함께 살자 농성촌'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김도연

아코디언이 흘러나온다. 시청 앞 대한문에 잔잔한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를 맛깔스럽게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함께 살자 농성촌'의 '촌장'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는 함께 살자 팟캐스트 첫회의 오프닝을 아코디언 연주로 장식했다. 백발 수염이 그득한 할아버지 같지만, 그의 미소는 어린 아이처럼 한없이 해맑다.

이어 세 명의 패널들이 자리에 앉았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을 비롯,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상임이사,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김덕진 사무국장이 그들이다. 김덕진 사무국장은 앉자마자 "함께 살자 농성촌 팟캐스트 사실 몇 번이나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열심히 응원해주시면 계속 해보도록 하겠다"고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문재인·안철수·박근혜 후보의 공약들을 씹어보려고 나왔다. 단일화로 뜨겁지만 어떤 생각과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정작 알려진 게 하나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장하나 의원은 "함께 살자 농성촌 국회출장소장 장하나입니다"라며 카메라를 보며 연신 "사랑합니다"를 외친다. 역시 정치인은 다르다.

'함께 살자 농성촌'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해고 노동자들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유족들을 포함한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그리고 핵발전소 폐기를 주장하는 탈핵운동본부가 모여 사는 공간이다.

이들은 지난 12일 '함께 살자 농성촌' 입주 기자회견을 통해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제주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핵발전 폐기 △4대강 원상회복 △강원도 골프장 건설 중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 보장 △중소상인 생존권 보장 △장애인, 이주노동자의 권리 완전 보장 등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바 있다.

세 명의 사회자는 가장 먼저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문제를 꺼냈다.

박래군(함께 살자 농성촌 공동상황실장) : 지금도 누군가 가장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국보법 폐지라고 하면 적화통일이되니 사회주의가 되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잖나. 문재인 후보는 열린우리당 시절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현행 형법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며 국보법 폐지를 확고하게 견지한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그에 비해 인권 침해적 요소가 없게끔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장하나(함께 살자 농성촌 국회출장소장) : 사실 안 후보의 질의응답서에는 국민, 사회, 합의, 공감대라는 말이 참 많다. 또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부녀자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들이 발생하면서 사형제 유지에 대한 국민 여론도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뚜렷한 의지가 없다는 게 아쉽다. 문 후보의 경우에도 참여 정부에서 국보법 폐지와 같은 개혁이 실패했던 이유와 원인이 빠진 느낌이다.

김덕진(함께 살자 농성촌 사무국장) : 안 후보의 경우 국가보안법도 존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후보는 명확하게 폐지하겠다고 말한다. 유엔의 권고와 방침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문재인 후보는 답변이 길고 구체적인 반면 안철수 후보는 짧다. 사형제와 관련해서는 네 줄로 답했고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리해고의 요건의 절차를 강화하여 남용을 방지할 것"이라고만 말한다.국가보안법과 사형제도만 보면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좀 더 와닿는다.

'함께 살자 농성촌'은 정리해고, 용산참사, 제주 해군기지, 핵발전소, 국가보안법, 사형제도, 4대강 사업 등에 관해 각 대선 후보 캠프에 질의서를 보냈고, 대선 후보의 캠프는 이에 대한 응답을 전했다. 세 명의 패널들은 각 주제에 대한 문-안의 입장을 설명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특히 박근혜 후보의 용산참사 질의응답이 좌중을 폭소케 했다.

▲ 서울 대한문 앞 '함께 살자 농성촌' ⓒ뉴스1

김덕진 : 박근혜 후보가 다른 답변은 안 보내오셨는데,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보내왔다.

박래군 : 세 후보 다 철거민들 사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박근혜 후보 경우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할 부분으로 고려됨" 이 표현은 뭡니까?

장하나 : 검토를 고려하겠다는 거죠.

김덕진 : 고려는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안 하겠다는 말보다도 못한 것 같다.(웃음)

장하나 : 전 단락의 표현도 재미있다. "사면 요구는 잘 알고 있는데"(웃음)

이렇게 세 패널이 떠들고 있을 때, '멸공(滅共)'이라는 빨간 글자가 새겨진 승용차를 몰고 농성촌 앞을 천천히 운전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확성기의 볼륨이 너무 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가 없었다. 이 할아버지는 매일 대한문 주변을 돌며, "공산당은 물러가라"고 외친다고 한다.

김덕진 사무국장은 "저 분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운전에 집중하셔야 한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서 운전하는 것과 같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고, 박래군 공동상황실장은 "저렇게 운전을 하시면 뒤에 있는 차가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은 "볼륨이 너무 커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볼륨을 낮추시면 좋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동장군이 찾아온 듯 혹한 추위 속에서도 이들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은 대선 후보들이 유세용 사진을 위해서라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현장을 찾았으면 좋겠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어찌됐든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관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에 책임이 있다" 등 김덕진 사무국장은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고민을 촉구했다. 박래군 공동상황실장 역시 "정리해고 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용역이라든지 국가 폭력이 개입한다" "두 후보들이 안이하다. 민중들은 절박한데 하나마나한 소리, 원론적인 소리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의 '사람'은 어디까지이며, 안철수의 '상식'은 무엇을 포함하고 있나?"라며 민중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 제시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 서울 대한문 앞에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맨 왼쪽),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가운데),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 '함께 살자 농성촌' 팟캐스트 촬영을 하고 있다. ⓒ김도연

세 명의 패널들은 1시간 동안 웃고 떠들면서도 울분, 넋두리, 개탄, 충고, 비판, 제안 등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팟캐스트에 담았다. 박래군 상황실장은 언 두 손으로 마이클 꼭 쥐며 "두 후보들이 땅 위의 사람들의 절박함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신껏 자신의 입장을 대중들에게 밝혀줬으면 좋겠고 함께 살겠다는 의지를 꼭 좀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장하나 국회출장소장은 "27일 화요일 11시에 국회의원회관 474호에서 '함께 살자 농성촌 국회 출장소 개소식'을 하게 됐다"며 "이날 많은 국회의원을 초대해서 소박한 이야기를 나누고 농성촌 주민이 되자는 의미"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세 대선 후보들은 정치·경제 분야의 개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인권과 환경, 생존권의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과연 18대 대통령은 '함께 살자 농성촌' 주민들이 원하는 것처럼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통령, 환경을 사랑하고 지켜낼 수 있는 대통령,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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