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껄껄 웃지만 우리들은 피눈물난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낙엽이 찬바람에 나부끼는 궂은 날씨. 파란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작은 방석들이 모두 52개, 조합원들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는다. 이윽고 60여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구호와 함께 목청껏 외친다.

"출연료를 나몰라라, 해도해도 너무한다" "KBS는 사과하고 미지급금 13억원 당장 지급하라" "당신들 봉급 떼 먹으면 당신들은 가만있냐"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던 조합원은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김도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아래, 한연노) 조합원들은 16일 오후 3시 KBS 드라마 <내 딸 서영이> 녹화가 진행되는 서울시 여의도 KBS 별관 앞에서 KBS를 상대로 미지급된 출연료 13억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출연료 미지급 항의 의사 표시로 지난 12일 KBS를 상대로 '전면 출연거부'를 선언했다. 10월 10일 기준으로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국가가 부른다> <도망자> <프레지던트> <정글피쉬2>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약 13억원의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공주가 돌아왔다>(방송일 2009년 9월 24일~11월 3일) <국가가 부른다>(2010년 5월 10일~6월 29일) 미지급액 약 2억 5천만원은 2010년 한연노가 방송3사 촬영거부를 선언한 이유였고, 당시 'KBS가 미지급 출연료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급 보증을 한다'고 KBS와 합의했으나 아직도 이들 드라마에 대한 출연료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현재 KBS는 "미지급의 문제는 잠적한 외주 제작사의 책임"이라며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4일에는 서울 여의도 KBS 별관 내에 연기자실을 폐쇄해 한연노 측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지킬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한참을 조합원들과 구호를 외치던 한연노 탤런트지부 신용규 사무국장은 "우리 한연노는 밀린 출연료 13억을 지급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서 "대부분의 드라마가 제작 후에 계약을 하고 있는데, 이는 KBS가 '선 계약 후 방송제작'이라는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출연료 지급이 방송 후 10일 내에 지급되기로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방송이 끝난 뒤 다음 달 말일에 지급되고 있다. KBS가 단체협약을 제대로 이행할 것을 요구하며 약속한 것을 지킬 때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한연노의 농성장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KBS시큐리티' 점퍼를 입고 있는 청원 경찰들이 출입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한연노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청원경찰들의 경계는 삼엄해졌다. 10여명에 불과하던 청경들은 시간이 흐르자 점차 불어났다. 한연노 조합원들이 KBS 별관 돌입을 시도하자, 청경들은 스크럼을 이뤄 그들의 진입을 원천봉쇄했다.

▲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조합원과 청원경찰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출입문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도연

"왜 못 들어가는데?" "막아, 막아" "좀 들어가자" "이러면 안 됩니다" 들어가려는 자와 저지하려는 자들의 몸싸움은 10여분 간 계속됐고, 한연노 조합원들은 결국 KBS 별관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한연노 한영수 위원장은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바탕의 농성이 끝난 뒤, 한국방송탤런트극회 박칠용 회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KBS의 '연기자실 폐쇄'에 대해 "우리는 50년 동안 연기자실을 지켜왔다. 그리고 방송사는 적은 금액이지만 월 62만원씩 지원해줬다"면서 "그 공간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우리 연기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바둑과 장기도 두고 연기 공부를 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 회장은 "그런데 '출연자의 쉼터'라는 이유로 출연하지 않는 연기자들은 들어와서 안 된다고 출입을 막는 것은 군정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KBS 내부의) 노동조합은 KBS 건물 내 민주광장에서 농성을 하지만, 이렇게 청원경찰이 못 들어가게 막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역시 50년이나 KBS와 함께 한 직원이자 동료"라면서 "거부 운동이 끝나고 잘 풀리게 되면 형, 아우할 사이인데 이렇게 안면몰수하고 막는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KBS 별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날씨는 흐렸고, 바람은 더 거세졌다. 우산을 펼치고 목도리를 걸치며 거리를 나서는 순간에도 그들은 끝까지 외쳤다.

"출연료를 지급하라. 단체협약을 준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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