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잠정중단된 것과 관련해 취재진과 만나 "깊은 실망을 느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단일화 협상 잠정 중단의 후폭풍이 거세다. 가시적으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실이 커 보인다. 13~14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율은 급락세를 보였다. 다자구도에서 3위로 내려앉은 것은 물론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도 뒤졌다. 안 후보가 박 후보에게 양자대결에서 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9월 이후 2번 밖에 없던 일이다. 단일화 협상 중단은 안 후보의 앞날에 심각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단일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실재하는 것만큼 단일화 협상파기에 대한 실망도 강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인과관계이다. 어찌되었건 단일화 협상에 임하기로 했으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끝까지 논의를 진행했어야 한다는 게 야권 성향 지지자들의 정서적 구조라고 읽힌다. 한 마디로 ‘이게 지금 판을 깰만한 일이냐’, 이런 심리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의 주장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안 후보 측의 단일화 중단 선언은 3가지 이유에 근원한다. 첫째는 민주당이 ‘양보론’을 흘리며 ‘이중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안 캠프 측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이 나왔단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협상 내용에 대한 보안을 민주당이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문제는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치더라도 첫 번째 문제의 경우 안 후보 입장에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안 후보는 그저 대선의 흥행을 위한 ‘이슈 메이커’, 민주당 ‘불쏘시개’ 정도 밖에 안 된단 얘기다.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민주당 내 어떤 인사들의 이런 시각은 정확하게 ‘제3후보 운명론’ 같은 것에 기대고 있다.

결국, 안 후보 측은 민주당의 단일화 논의 방식이 ‘그래도 우리가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감춘 ‘무늬만 협상’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언론이 만들어 낸 오해’라는 해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럼, 우리가 언론을 보고 자의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냐’는 안 후보 측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해명일 뿐이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15일 오전 부산 중구 마린센터에서 전국 해상산업 노동조합연맹을 방문한 후 건물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과 안 후보 측은 ‘덩치’가 다르다. 정치적으로 ‘체급’도 다르고 쓸 수 있는 ‘기술’의 차이도 현격하다. 이걸 어떻게 성찰적으로 ‘수용’하느냐는 결국 민주당의 ‘깜냥’이다. ‘국민의 뜻’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고 단일화 논의에 임하고 있는 안 후보 입장에선 거의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직도 열세이고, 정치력도 열세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러한 불안 심리를 계속 자극해 안 후보 측을 흔들고 싶은 욕구가 치밀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단일화가 반드시 상대를 이겨야 하는 정치적 게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려도 되는 그런 혈전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안 후보 측의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 이후 문재인 후보는 “뭔가 저쪽에게 부담을 주거나 자극하거나 또는 불편하게 한 그런 일들이 있었다면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고, ‘사과’를 언급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맏형론’을 제기하며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를 정치적 명분으로 삼고 있는 그의 존재를 더욱 부각할 수 있는 전향적 판단과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일방적인 민주당의 '양보‘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단일화 협상에 보다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안 후보 측의 협상 중단 선언 이후 민주당 측 관계자들은 “정치 프로보다 더 한다. 기존 정치인들보다 몇 수를 더 두려고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단일화를 중단할 맘이 없으면서 전략적으로 상황을 끌어간단 힐난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안 후보는 지금껏 고비마다 역설적 선택으로 이슈의 중심을 점해왔다. 이번 선언 역시 그런 차원의 일환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갈등만 더 양산될 뿐이다. 안 후보의 ‘진심’에 문 후보가 ‘공감’하고 있다면 가뜩이나 ‘입’이 많아 사고가 많은 민주당 입장에선 보다 신중하고 자중할 필요가 있다. 단일화 협상 중단의 발단도 결국 민주당의 ‘입단속’이 잘 되지 않아 벌어진 문제라면 말이다.

억울하고, 할 말이 많더라도 안고 가야 한다. 그 자체를 ‘포용’하지 못하면 이 협상은 재개될 수 없다. 안 후보 측은 애당초 단일화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금도 안 후보는 정권교체보다 정치혁신을 상위에 놓고 있다. 단일화 중단 이후 나온 발언만 하더라도 그렇다. 안 후보에게 단일화는 정치혁신으로 가는 과정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이 인식이 비현실적이건, 뜬구름 잡는 얘기이건, 지나치게 이상적이건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안 후보가 거듭 그렇게 말하고 있단 점이 그 자체로 시사점이다. 안 후보의 이러한 인식은 안 후보 측이 단일화 과정에서 뭔가를 더 양보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점을 드러낸다. 안 후보의 권력 의지는 ‘집권’을 향해 있기 보다는 ‘정치개혁의 화신’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단일화 논의를 위한 첫 회동을 마친뒤 회동장을 함께 나서고 있다. ⓒ뉴스1

문 후보가 직접 나서야 할 때다. 현재, 문 후보는 부산에 있다.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문 후보가 직접 안 후보와 다시 만나냐 한다. 후보 간 직접 대화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안 후보 역시 문 후보를 만나야 한다. 안 후보는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개인적 차원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새누리당 출신이 주도하는 정치개혁과 단일화 협상에 역시 ‘깊은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이제 후보 간 직접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다. 단일화를 할 것이라면 말이다.

테이블 뒤에서 ‘저쪽 협상팀의 새누리당 출신이 문제네’, ‘이중 플레이하는 친노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하는 총질을 해대는 것은 두 후보가 공히 약속한 ‘아름다운 단일화’에 가장 반하는 행위가 아니냐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