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용산참사 당시 점거농성으로 옥고를 치른 철거민 김재호, 김대원 씨가 3년 9개월 만에 출소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과는 커녕 용산참사 피해자 유가족 및 철거민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을 내 놓고 있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용산참사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선언적인 수준이다.

김재호 씨는 “깊은 데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며 “하나의 정치적 쇼인지, 믿음이 안 간다”고 말했다. 정영신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활동가 역시 “우리들을 먼저 만나 문제가 뭐고 어떤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는데도 철거민들에게만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 김재호 씨는 “같은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갔다”며 “처음부터 (테러리스트로)몰아세웠으니 판결도 그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김재호, 김대원 씨와 다른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바람은 결코 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했다. ‘돈 때문에 망루에 올랐다’며 그들을 비난하는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가장 간절히 바란 것은 ‘국가의 사과’였다.

3년 9개월이나 흘렀지만 이들에게 용산참사는 아직 생생하고 뚜렷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용산참사를 직접 겪은 두 사람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디어스>는 12일 오후 대한문 근처 카페에서 가석방된 철거민 김재호, 김대원 씨를 만났다. 용산참사 피해자의 유가족이자 진상규명위 활동가인 정영신 씨도 함께 했다. 질문에 김재호 씨가 주로 대답했고 김대원, 정영신 씨가 이따금 거들었다.

▲ 지난달 26일 가석방된 용산참사 철거민 김재호, 김대원 씨(왼쪽부터) ⓒ미디어스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 많이 봐…”

- 얼마 전 교정의 날을 맞아 가석방됐다. 어떻게 지내는지?

적응 기간이다.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머리가 빈 것 같고 기억력도 많이 쇠퇴했다.

- 수감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기소되고 5개월 정도 되니까 스트레스와 충격, 잠 못 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방 안을 쓰다듬으면 한 줌씩 뽑힌 머리카락이 잡혔다. 왕창 빠져서 긁어모아 버릴 정도였다.

- 가석방 소식에 가족들 반응은?

부모님께서 내가 교도소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출감한 건 모르신다. 형제들이 알리지 말라고 했다. 당장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정되면 내려가려고 한다. 가석방되고 한 열흘 동안 딸하고 가까이 지냈는데 딸이 웃음이 생기고 한결 밝아졌다. 3개월 빨리 나온 게 굉장히 위안이 됐다. 아내도 너무 좋아한다. 말로 표현을 못한다. 근데 나와 보니까 딸이나 (아이)엄마나 몸이 많이 변했다. 관리를 못하니까…그동안 내가 너무 했구나…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보고 너무 고생도 많이 했다.

- 지금 생계는 어떻게 꾸리고 있나.

출소하기 몇 개월 전에 아내가 장사를 시작했다. 그거 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둘이 잘 지내고 있더라. 그냥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벌어야지 사니까 나오기 몇 개월 전에 내게 면회 와서 얘기하더라. 장사하고 싶다고. 경기도 안 좋아 잘 될까 걱정했는데 얘기 들어보니 잘하고 있다. 장사도 용산에서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철거민 책임으로 돌리는 정부

- 용산참사 3주기부터 석가탄신일, 광복절 등에도 용산참사 철거민들에 대한 사면청원이 이어졌다. 또 가석방된 두 분은 모범수로 정기 가석방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고 들었다. 너무 늦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진 않나.

원래 특사로 나올까 생각했는데 계속 연기되고 아예 특사 자체가 없어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초범이고. 원래는 4년형이면 한 7개월, 8개월 먹고 나와야 정상이라고들 했다. 공안사범이다 보니까 이제야 가석방된 거다. 용산참사 사건에 대해 민감하다. 내보내주면 바깥에서 이슈화될까봐 자꾸 꺼리더라. 안에서 봉사활동도 안 내보내고. 다른 교도소로 옮기려고 했을 때도 여러 사람들한테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안 됐다).

- 수감되어 있는 다른 철거민들이 특사로 나올 가능성은 없는지.

야권에서 정권을 잡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너무 꽉 잡는다, 촛불집회 때부터. 사과하지도 않고 강압적으로 나오니까 (어려울 것 같다). 특히 공안사범에 대해서는 요주의인물로 보고 있다. 장사만 하던 사람들이라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온순하고 착하게 생활하고 그런다. 그런데도 가석방 3개월 주는데 자기네들은 큰 특혜나 선심을 쓴 것처럼 한다. 당연히 법 없이 살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데 모범수라니…그들은 그렇게 말해야만 위신이 선다고 생각한다.

- 재판부는 ‘화재 원인과 공무집행방해죄 성립 여부’를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경찰의 진압 시기나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참작되지 않았다.

실제 상황에 처해 있던 내가 보기에는 그때 하루 24시간 만에 올라와서 무리하게 진압할 여건이 안 됐다. 빨리 협상을 해서 내려오게끔 하는 게 경찰의 임무인데, 같은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갔다. 그렇게 몰아가야만 진압하는 명분이 서니까. 계속 처음부터 몰아세웠으니 판결도 그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약자는 당하니까… 진실은 세월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 용산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나.

고위층에 있다. 그 당시에 진압해 들어온 전경들은 위험한 상황을 모르고 들어왔다. 결국 걔들도 피해자다. 걔들을 지시한 상부,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 말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직접 때리고 죽인 놈보다 말로 사람 죽인 놈이 더 나쁜 놈이다.

- 용산참사는 왜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을까.

철거민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밀어버리고 나가는 거다. 어느 정도 잊혀질 때쯤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때 되면 세월이 지났으니 무덤덤해질 것 같다, 인혁당 사건처럼. 정권이 두 번 정도 바뀌거나 하면 재심 청구해서 (이길 것 같다). 국민들 누가 봐도 (판결이) 잘못된 걸 안다. 재판부에서도 판결할 때 경찰 쪽에서도 잘못이 있지만 판결을 유죄로 내렸다. 결국은 자기네들도 알 것이다. 나중에 그런 것들이 밝혀지면 원상 복귀되지 않을까. 꼭 그렇게 복귀되어야 하고.

대선 후보 행보엔 ‘갸웃’

- 지난달 문재인 후보는 용산참사 희생자 묘역이 있는 모란공원을 찾았다. 지난 11일 심상정 후보는 20대 공약을 발표하며 용산참사, 쌍용차 등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재호 : 깊은 데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나의 정치적 쇼인지… 믿음이 안 간다. 다들 선거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 두 번 당했나. 말한 걸 그대로 실천한 사람은 없었다.

정영신 : 솔직히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을 만나서 해결방안을 얘기해줘야 한다. (지금 행보들은) 우리한테 얘기한 적 없이 하는 것이다. 우리들을 정말 만나서 문제가 뭐고 어떤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가서 대답을 들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 위해 각인시켜놔야 된다.

- 지난달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 정상화가 추진된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아직도 사업은 미진한 상태다. 그래도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면서 뉴타운, 재개발 지구에 대한 재검토가 시작됐는데 어떻게 보는지?

시장이 한 명 바뀌는 데 따라서 변화되는 걸 본다. 지금 시장은 아무래도 야당 쪽이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고가 있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구청과 같이 대화를 하며 풀어나가는 것 같더라. 좋게 본다.

가장 원하는 건 ‘국가의 사과’

- 뒤늦게라도 철거민들을 위한 보상이나 대책이 마련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김재호 : 정부에서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과하면 그 뒤 일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니까. 그만큼 사과가 중요하니 전에도 사과 안하고 계속 밀고 나간 게 아닌가.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건 죽기 전까지 남아 있으니까. 잠시 위안은 되겠지만 국가의 사과가 제일 첫 번째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타나서라도 대신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김대원 : 형님 말씀과 똑같다.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 임대아파트나 주거비는 일정 부분 해결됐지만 상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없다. 상가 세입자들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좋을 것 같다. 자기가 기존에 했던 식당을 인근 지역으로 옮기더라도 그 정도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또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꼭 그 지역에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용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 이번에 가석방된 소식은 여러 언론에서 나왔지만 인터뷰는 경향, CBS 정도만 했더라. 아직도 보수언론은 용산참사를 거론하는 데 소극적인 것 같다.

용산 얘기는 한겨레, 경향에서만 주로 다룬다. 동아일보는 처음에 굉장히 나쁜 방면으로 얘기해주다가 출소하기 얼마 전엔가 자꾸 용산 관련 기사들을 실었다. 그때는 나쁘게 얘기하지 않았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것 같다. 어쨌든 보수 언론이 만든 여론에 국민들 생각이 좌우되는 것 같다. 철거민이나 전철연을 아주 악하다고 보는 시선에는 미디어가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다.

-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관객수 7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는 보았나.

김재호 : 아직 보진 못했다. 조만간 보러 갈 생각이다(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지금도 <두 개의 문>이 상영되고 있다). 안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나도 신문에 나오는 박스오피스 순위를 주시했다. 어느날 봤더니 갑자기 10위권 안에 들어왔더라. 일반 영화와 같이. 관객 7만 넘었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같이 있는 사람들이 ‘와! 독립영화로 이 정도면 일반 영화로는 70만~100만까지 된다 이거야’라고 했다. 성공한 거라고 하더라. 전부 그렇게 얘기했다.

정영신 : 많은 사람들이 용산을 잊는 것 같다. 그나마 <두 개의 문> 아니었으면 잊혀진 거였다. 용산 현장에 가 보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그들이 우리한테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지… 저렇게 공터 만들려고 우리한테 그렇게 했나. 차라리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만 더 줬으면 그렇게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 (용산이) 빈 공터로 남겨져 있으면서 아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사람들이 잊은 것뿐이지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인권위가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용산참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현병철 위원장은 <두 개의 문> 관람 중 쫓겨나기도 했다.

신문 보고 무척 통쾌했다. 어떻게 현장에서 그런 일이 있는데 무시할 수 있나.

- 올해는 특히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사랑받았다. 용산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이라는 영화도 곧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보는지.

영화의 파장이 크다. 사건을 이슈화하기에 가장 좋다. 그런 쪽으로 자꾸 나가는 게 용산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좋을 것 같다. 특출한 연예인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도가니도 참 그게 관객이 상당히 많이 들었던데.

우리 사회에서 용산참사는 어떤 의미일까

- 용산참사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재호 : 나도 이런 일에 뛰어들기 전에는 농성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막상 그 자리에 서니까 알게 됐다. 지금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쳐다보는 사람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똑같은 사태가 생기면 똑같이 행동할 테니 너무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난개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피해보는 사람들이 추운 데 더운 데 쫓겨나지 않길 바란다. 적절히 보상받고 가족들도 무사히 다른 곳에 이주해서 살 수 있는 그런 행복한 나라를 원한다. 얼마 전 용산에 가 보니 건너편에서 임시로 장사하고 있었다. 새로 시장이 바뀌고 하면서 뭔가 조금 달라졌구나 하는 걸 느꼈다.

정영신 : 소수의 사람들이 정부가 원치 않는 걸 원한다고 해서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지는 못할망정 억압, 탄압,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상황은 없어져야 하겠다.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에 대한 인식은 살짝 바뀐 것 같다. 재개발 현장에서의 말도 안 되는 용역 폭력이나 건설사의 야합, 횡포, 비리가 밝혀지며 철거민들도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도 철거민이 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싹튼 것 같다. 또 주거보다 상가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 소유자들의 편으로 기울어 세입자들의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 시스템 구조도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어찌됐건 국가폭력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지시한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며 누릴 거 다 누리면서 4년이 넘도록 철거민들만 책임을 지는 현실이 슬프다.

- 앞으로의 계획은.

김재호, 김대원 : 오늘(12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나머지 구속자들(수감된 용산참사 철거민들) 석방시켜라, 강제퇴거 금지법 제정해서 우리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제대로 법의 보호 받도록 해라 하고 요구하고 있다.

정영신 : 계속해서 현 정권의 말도 안 되는 살인 진압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확답을 대선 주자에게 받아야 한다. 그래서 개발현장에서 거주민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입법 추진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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