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백낙청 서울대 교수. 그는“이런 뜻 깊은 자리에서 길게 말하는 사람은 멘토가 아니라 전문용어로 꼰대라고 한다. 오늘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미디어스

13일 저녁에 그랜드컨벤션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500인 원탁토론”은 최근 서구 각국에서 유행하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원탁토론을 한국 사회에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자유토론이 이루어지는 ‘오픈 스페이스’ 방식과 의제설정이 제한된 ‘월드 카페’ 형식을 거쳐 최근 유행하는 ‘원탁토론’을 코리아스픽스에서 한국적 방식으로 변형했다고 소개하는 원탁토론은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숙의 민주주의 / 직접 민주주의적 토론을 노트북과 무선투표기 등의 기술적 장비들을 결합하여 구현한 것이었다.

이 행사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코리아스픽스가 주관했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주최와 후원으로 결합했다. 이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끌만한 격려사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재야원로 중 하나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것이었다. 주최측으로부터 ‘이 시대의 멘토’라는 찬사를 받은 백 교수는 “시민들의 SNS에서의 정치활동은 주체적이지만 사적이고, 멘토의 강연장에 몰리는 것은 공적이지만 주체성이 상실되는데, 이런 행사는 주체성을 가지고 공적인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치하했다.

이명박 정부 중반부터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를 주장하는 ‘거버넌스’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그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치하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가령 한국 사회에서 정당정치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최장집 교수와 같은 정치학자들의 견해와는 사뭇 멀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어야 할 민주당은 시민사회 세력과의 결합으로 탄생된 ‘민주통합당’이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 역시 모바일 투표 등 정당 바깥 시민들의 폭넓은 결합으로 탄생한 후보다. 그리고 그런 문재인 후보는 아예 정당 바깥의 시민들이 만들어낸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로 경쟁하는 처지다.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볼 때는 모바일 투표와 문재인 후보의 성향,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정치개혁 방안 등이 모두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다.

사실 이 행사 역시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한계를 모두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먼저 모인 이들의 인적구성 자체가 그랬다. ‘500인 토론’이라 하지만 사실은 300명이 좀 안 되는 사람이 모였는데, 행사 시작 때 무인투표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시행된 사전투표 결과를 볼 때 성별로는 여성이 더 많았고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여성’이라 대답한 이가 124명으로 ‘남성’이라 대답한 112명보다 많았고, 20대(76명)와 30대(64명)는 다른 연령대 참가자를 모두 합친 것(사전투표 때는 82명)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2012년 10월 현재 행정안전부 통계로 볼 때 20대 유권자 숫자는 660만여명으로 다른 연령대 유권자 숫자들에 오히려 뒤진다. 반면 30대, 40대, 50대, 그리고 60대 이상 유권자는 800만명이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위치다. 지역이나 계층 특성까지 고려한다면 여기 모인 이들이 한국 사회의 ‘시민’을 대표하기란 턱없이 부족했다.

투표결과 역시 정당정치론자들이 말하는 특정 계층 사람들의 ‘정치 영역에서의 과잉대의’를 보여주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구성원의 절반 정도는 사전 설문에 참여한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그들이 2012년 대한민국의 문제로 지적한 것과 현장에서 문제로 지적한 것에 괴리가 있었다. 사전 설문에서는 ‘고용과 일자리 문제’를 지적한 이들이 17%였고 ‘낮은 정치의식,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정책’을 문제삼은 이들은 9%에 불과했던 반면 행사에서의 숙의 토론 후 투표에서는 오히려 ‘낮은 정치 의식,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정책’을 문제삼은 이들이 25%(244명 중 61명)까지 올라갔고 ‘고용과 일자리 문제’를 선택한 이는 그 절반 이하(22명)로 변했다. 이는 시민들이 평소에 삶의 문제로 느끼는 것과 원탁토론의 현장에서 ‘근본적인 문제 하나를 골라달라’는 주최측의 주문을 받으며 고르는 답안 사이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연 이를 숙의를 통한 정치의식의 성숙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인지, 혹여 민심과의 괴리를 유발하는 상황은 아닌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삶의 현장에서 떨어져서 토론을 할 때 삶과 비교적 거리가 먼 문제를 근본적인 것이라 받아들이는 허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긍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였다. 막상 일자리 공약에 대한 선호도를 묻자 ‘정리해고 제도 개선,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66명)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만들기’를 찬성하는 이들(59명)이 가장 많았다(전체 투표 255명). 청년 일자리 만들기나 정년 연장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등 국지적인 대책에 대한 지지는 크지 않았으며 특히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일자리 만들기’에 대한 지지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문화 인식 개선 및 인권교육에 투자’를 대책으로 선택한 이들이 125명이나 되는 등(전체 투표 252명) 사회 전반의 인식보다 명백하게 진보적인 모습이 보였다. 이는 숙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들이 비록 제한적일 수 있지만 오히려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최초에 지지할 수 있는 ‘시드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숙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결합한 토론 모델을 대중적으로 보급하여 정치적 대안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당장에는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 사회는 기본적으로 정당이 탄탄한 가운데 이러한 대안들이 보완책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그 사회에서 정당이 약화되어 있다고 해봤자 한국 사회의 정당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적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이 제한될 때, 그것은 직접 민주주의라기보다 오히려 ‘직접 민주주의적 행사에 참여할 형편이 되고 토론할 역량이 있는 특정한 어떤 시민군’의 판단에 정치를 맡기는 전도된 엘리트주의가 될 수 있다.

또 평범한 시민들이 모두 숙의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았을 때 정당,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중간단체들이 공론장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역량이 중요할 텐데, 정당의 문제를 빼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진보언론과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개입이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자로부터 단지 상대 후보를 전술적으로 띄우기 위한 기동으로 이해받을 만큼 신망을 잃은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한겨레가 누구 편이라 오해받고 시민사회 원로들이 누구 편이라 오해받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직접 토론이 정치적 공론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비록 ‘소통’에 대한 열망이 시민들 사이에서 주로 직접적인 접촉을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분출되고 있을지라도, 사회의 한 부분에선 그것의 제도화를 꾸준하게 고민해야 더 많은 구성원들의 요구를 정치권에 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그 긍정성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정치에 대한 희망의 조류로 포장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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