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동아일보 3면 기사

새누리당의 내분이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의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사퇴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자신과 이한구 원내대표 사이의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고,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도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국민대통합위원장 내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종인과 안대희 두 사람은 벌써 닷새째 당무를 거부하는 중이다.

새누리당 내분의 원인은?

조선일보 사설이 정리한 것처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3대 핵심 집권 공약인 ‘국민 행복’ ‘정치 쇄신’ ‘국민 대통합’의 과제를 담당할 3개 특위의 책임자들을 둘러싸고 내홍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친박과 친이의 갈등보다 훨씬 심각한, 박근혜 후보의 대선전략을 뿌리채 뒤흔드는 심각한 분란이라 하겠다.

그간 새누리당은 야권에 비해 지지층의 결집도와 충성도가 커서 후보의 ‘전략적 유연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평가받아 왔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한국 극우파들의 정서적 구심점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이기에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걱정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중도층 공략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는 식으로 복지국가 담론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했고 총선 전에 당 색깔을 빨간 색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워도 문제가 없었다. 이는 야권이 흉내낼 수 없는 새누리당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새누리당의 내분은 이제 지지층이 아닌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이러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인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유는 박근혜가 ‘쇄신' 및 ’중도층 공략‘ 등 승리를 위한 전략적 행보를 거듭하면서 당내에 이질적인 성향의 인사들이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새누리당 내부엔 이질적인 조류들이 공존했으나 그들은 권력을, 특히 국회의원 뱃지를 목적으로 한 공동체라는 결속력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쇄신’이나 ‘중도층 공략’을 말하며 직접 견인한 인사들은 본인이 작정하고 새누리당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며 들어왔기 때문에 명분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김종인이나 안대희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유는 더 결정적인데 새누리당의 ‘기본 지지율’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최근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샅바 싸움’에 여론이 쏠리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째 이유가 첫째 이유를 보강해 주는 면이 있다. 가령 김종인은 안철수 후보의 컨밴션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한구와 거듭 기싸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양자택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의 지지율이 위기에 몰리고 비박들이 이 상황을 ‘쇄신’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그도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김종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박근혜를 위해 일하는 이유를 ‘야권 후보들보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기 때문’이라 말해야 한다. 실제로도 김종인은 박근혜만이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없다면 그로서는 그런 무리한 논변을 취하지 않고 ‘한때 그렇게 믿었으나 실제로 하는 것을 보고 기대를 버렸다’란 식의 출구전략을 꾀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보여야 현재의 난국을 뚫고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느 쪽 설명방식을 택하든 그의 ‘도박’은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서야 맥락을 가지게 된다.

드디어, 새누리당의 '파이'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개혁세력의 지지자들이 지난 십여년 간 기대했던 것처럼 드라마틱한 수준으로는 아니지만, 지역과 세대에 기댄 새누리당의 고정지지율이 조금씩은 내려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정지지율은 여전히 단단하지만 그 절대값만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한국 극우파들의 지지를 가장 안정적으로 끌어내고 여기에 쉽게 ‘플러스 알파’를 더할 수 있는 박근혜 후보조차도 중도층에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선거에서 지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면 그간 새누리당이 야권에 비해 누렸던 ‘전략적 유연성’의 우위도 앞으로 조금씩은 줄어들어 갈 거라고 볼 수 있다.

1998년에 이회창의 권고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래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란 상징성으로 획득한 한국 극우파의 ‘고정지지율’을 바탕으로 ‘남이 만들어낸 위기’를 타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선거의 여왕’이란 찬사도 그래서 생겼다. 그러나 이제 그가 대권을 쥐기 위해선 고정지지율 바깥의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해 무언가를 버릴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야만 한다. 지금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러한 리더십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를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

▲ 오늘자 동아일보 3면 기사. 사람을 믿지 않고 소수 측근만을 신뢰하며,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가지지 않는 박근혜의 용인술을 이해한다면, 그녀가 '자기 사람'인 이한구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상황은 어렵다. 김종인을 버린다는 것은 중도층 공략을 포기하는 것이고 이한구를 버린다는 것은 ‘친이’에 탄압당하며 똘똘 뭉쳐온 친박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다. 안대희를 버리는 것 역시 중도층 공략의 동력을 잃는 길이고 한광옥을 버린다는 것은 리더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자인하는 길이다. 그러나 대선이 정치인을 잡아야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라 유권자를 잡아야 승리하는 게임임을 이해한다면 이기기 위한 선택은 분명하다. 이한구를 버린다고 고정지지층이 이탈하지 않고 한광옥을 버리지 않는다고 호남에서 큰 성과를 올릴 수 없다. 명분과 실리 모든 측면에서 이상돈과 이준석 등 전 비대위원들이 요구하는 바가 옳다. 리더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 역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그간엔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충고도 많이 해왔건만 이번 사안에선 이상돈과 이준석의 합리적인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새누리 內紛, 일의 우선순위 정해 풀어야>를 보면 “이런 분란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박 후보의 비밀주의 인선 때문”이며 “박 후보가 주변과 상의 없이 혼자 인선을 하다 보니까 박 후보와 당사자 간 1대1 대화는 되지만, 영입된 인사끼리, 영입된 인사와 당내 인사들 간엔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박근혜 후보의 의사결정 스타일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갈등에 대해선 “박 후보가 이들 중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줘 다른 한쪽을 포기하기는 어렵다”라 말하며 섣불리 한쪽의 손을 들지 못한다.

▲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동아일보에 비해서는 박근혜 후보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길을 택했으나 조선일보 답지 않게 판단이 명확하지 않고 조언이 '황희 정승' 식이다.

동아일보 사설 <자기희생 없는 새누리 사람들의 각개약진 비극>은 아예 박근혜 후보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분란의 원인이 “이명박(MB) 정권을 탄생시킨 친이 주류 인사들의 비협조와 몽니”와 “대의(大義)를 보지 못하는 좁쌀 웰빙 체질의 사람들이 자기희생 없이 서로 잘났다고 각개약진(各個躍進)을 펼치는 상황”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용해(溶解)해 하나로 묶어내야 할 책임은 바로 박 후보에게 있다”고 말하긴 했으나 사실상 박근혜 후보의 리더십이 아닌 쇄신을 요구하는 이들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동아일보 3면 기사가 조선일보 사설과 마찬가지로 지적한 박근혜의 용인술의 문제도 반영하지 못한, 지극히 '친박근혜적'인 사설이라 볼 수 있다.

공은 야권에 넘어 왔다

보수언론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들 역시 새누리당의 ‘고정지지율’이 낮아지는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새누리당은 집권을 위해 기득권과 내심을 바꿔야 할 정도의 쇄신을 요구받은 적이 없다. 그나마 가장 급박한 위기상황이 대통령 탄핵 이후 역풍 속에 맞이한 2004년 총선이었는데, 그때에도 쇄신파의 ‘천막 당사’와 박근혜 후보의 활약에 힘입어 일패도지의 위기를 벗어났다.

물론 당시에도 뉴라이트의 결성 등 보수 혁신의 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역사투쟁’의 측면은 지워지고 밥그릇 다툼만 남았다. 또한 뉴라이트의 견해는 보수세력의 내심을 바꾼다기 보다는 그들의 논변을 좀 더 세련되게 바꾸는 쪽에 가까웠다. 중도층에겐 오히려 인기가 없었던 뉴라이트와 구별되는 쇄신책이 극우 블록에도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여전히 새누리당의 ‘고정지지율’은 두텁고, 중도층 역시 박근혜가 어떤 판단을 내리냐에 따라 움직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리더십이 요구되는 이러한 상황은, 지금껏 야권 후보들이 겪어 보지 못했던 호조건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이러한 정국에서 박근혜 후보와 구별되는 리더십과 비전을 어떻게 제시하면서 상호경쟁할 수 있을 것인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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