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환노위 쌍용차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 ⓒ연합뉴스

지난 20일 열린 국회 환노위 쌍용차 청문회에선 새누리당 의원의 상당수도 쌍용차 문제에 대해 현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물론 대부분 참여정부 시절 상하이차의 ‘먹튀’와 이를 허용한 참여정부의 잘못을 부각하는 전략 속에서의 현 정부 비판이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처럼 “전 정부와 현 정부가 공모하여 노동자가 버렸다”라거나 이런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을 위합니까, 아니면 노동자를 위합니까?”라고 쏘아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또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처럼 정리해고의 위험성을 환기하고 회계업체의 보고서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든 이도 있었다. 이종훈 의원은 코넬대에서 노동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명지대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노동문제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식견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 현장에서 새누리당과 야권을 가르는 뚜렷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시위진압 문제였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이나 심상정 무소속 의원 등이 쌍용차 문제를 기술유출, 회계부정, 기획부도, 부당 정리해고, 시위 과잉진압 등으로 정리해서 순차적으로 제기했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앞의 네 쟁점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시위진압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거나 침묵했다. 청문회만 본다면 과잉진압 문제가 현재 새누리당과 야권을 가르는 중요한 견해차이로 생각될 정도였다.

청문회 논란의 중심에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이 있었다.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경기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 씨는 진압 직전 상급자인 강희락 경찰청장이 작전취소를 지시했음에도 청와대에 직보하여 압력을 넣어 작전에 들어갔다. 관련한 한겨레 보도를 조현오 씨는 ‘거짓말’이라 부인했으나 일관성 없는 진술을 반복하며 경찰 지휘계통의 혼란이 사실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청와대 참모에게 연락한 점과 강희락 경찰청장이 작전에 반대한 점 등에 대해선 순간적으로 시인한 후에 다시 또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 경찰의 진압 전 교섭 상황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왼쪽)과 조현오 전 경기 경찰청장(오른쪽) ⓒ연합뉴스

조현오 씨 사례를 비롯해 현 정부 들어 경찰 간부들이 유난히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섰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명박산성’으로 이름을 떨친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금 청와대 경호처장을 하고 있다. 어청수에 이어 경찰청장을 역임했고 조현오의 청와대 직보에 밀려서 쌍용차 파업 진압작전을 승인한 강희락의 경우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에 휘말려 현재 복역 중이다. 시위진압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의 ‘주폭’ 척결 프로젝트가 조선일보의 특집 기사로 발전한 것도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2008년엔 경찰대 1기 동기인 경찰서장 2명(이중구 서울 동대문 경찰서장, 황운하 대전 중부 경찰서장)이 장안동․유천동 집창촌 해체 작업에 들어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최근에는 경찰 간부 출신들의 정계 진출까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용산참사에 책임이 있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총선에 경주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지탄을 받았다. 총선에 출마하기 직전까지 김석기 씨는 오사카 총영사였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했으나 노회찬 의원에게 패배했다.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대구 달서구을에서 당선되어 경찰대 출신 첫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들 경찰 간부들은 보통 정계에 입문하기 전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조현오 역시 이미 책을 출판했다.

경찰 간부들의 활동이 최근 두드러진 이유는 민주화 이후 권력기관들의 분화에 따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문민정부 때부터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가 논의되었고 이를 통해 경찰이 검찰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군사정권 시절 군이나 검찰에 종속되어 활동하던 경찰이 이제는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찰대 출신들이 '엘리트' 경찰 간부가 되면서 양상은 더 극적이 되었다. 앞서 언급된 경찰대 1기 황운하의 경우 1999년 수사권 독립을 명분으로 검찰에 파견된 경찰 인력을 철수시키는 ‘사건’을 일으키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 2008년 유천동 성매매 업소 집중 단속 의지를 천명하는 황운하 당시 대전 중부경찰서장의 모습.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경찰 내에서 이름이 높다. ⓒ연합뉴스

그러나 수사권 독립을 주장한 이들은 그것을 검찰권력 견제와 수사의 민주화를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11월 경찰에게 수사개시권을 부여하자 경찰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되면서 정권에 대한 과잉충성 내지는 실적과시를 위한 수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이런 간부들이 정권에서 중용되어 높이 승진하거나 정치인이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부산 경찰청장으로 APEC 시위를 진압했던 어청수가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경찰청장이 된 상황이나 쌍용차 파업을 진압한 조현오가 경찰청장이 된 상황이 대표적이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민주법학 제37호(2008.9.)에 실린 “법질서정치와 형사사법의 왜곡”이란 논문에서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있었던 ‘법질서정치’가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법질서정치는 행정부와 정당과 언론이 공모하여 범죄에 대한 증오심을 증가시키고 형사사법의 엄벌주의 경향을 강화하는 행태로, 범죄억제의 효과는 별로 없지만 사회를 보수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한국에선 그간 검찰이 공안사건을 통해 치안을 정당화했기 때문에 이런 조류가 나타날 이유가 없었지만, 최근에는 공안사건 대신 강력범죄가 치안강화의 명분이 되고 있다. 본지 역시 성범죄나 강력범죄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높아지고 여기서 발생한 치안담론이 경찰국가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기사 링크).

MB 정부 이후 경찰 간부들이 유명인사로 부상한 이 세태를 이와 같은 사회문제의 흐름과 연동하여 파악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일단은 경찰이 인사권을 통해 권력의 제약을 받는 상황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김한균 위원이 말한 것처럼 행정부-정당-언론이 합작하는 법질서연합에 맞서는 법연구자-인권시민단체-대안언론이 참여하는 인권연합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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