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방송통신 정책 전반의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입안되고 있는 법안들이 사회적 합의와 통일성 없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용자의 권익보호와 시민미디어 활성화 등 공공영역의 정책들이 최우선 정책으로 상정되면서 이 속에서 공정경쟁과 콘텐츠 활성화 등의 정책적 목표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방송학회와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주최하고 언론개혁시민연대가 후원한 '새 정부의 방송관련 법안 쟁점 토론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사회적 공익성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그와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면서 방송의 공익성을 배반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법와 IPTV법에서도 기업들의 규제완화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새 정부·방통위 미디어 정책 혼선…이용자 권익보호 등 '공공성' 정책 실종"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문효선 언론연대 집행위원장은 최근 방통위에서 논의하고 있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 시행령 제정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들을 분석했다.

우선 IPTV법 시행령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콘텐츠 동등접근권에 대해서는 "콘텐츠 동등규제를 IPTV 시장에 한해 제안하고 있어 현재 케이블 플랫폼에 공급하고 있는 콘텐츠사업자들이 IPTV콘텐츠 사업자로 신고 또는 등록하지 않을 경우 규제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모든 유료방송플랫폼 사업자와 수직 결합된 콘텐츠공급사업자로 확대해 실질적인 '부당거래행위'를 방지하면서 시청자들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제도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방송학회와 공공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지난 15일 프레스센터 18층에서 열린 '새 정부의 방송 관련 법안 쟁점 토론회' ⓒ곽상아
공정경쟁 환경 조정에 대해서는 "케이블방송사업자들은 IPTV의 자회사 분리 운영을 주장하지만 회계분리, 경쟁평가위원회의 엄격한 평가, 시장 점유율 규제 등으로 지배력 전이를 상당부분 막아낼 수 있다"며 "시민들이 보다 다양하고 차별화된 매체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공익적이고 양적 질적으로 높아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경쟁상황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방송 겸영규제 완화로 외국자본 개입, 시장독점력 상승 우려"

대표적인 졸속 법안으로 지목되고 있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서도 옛 방송위원회에서 사회적 논의와 의견 수렴 없이 결정한 내용들을 새로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충분한 검토없이 입법예고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구체적인 문제점으로는 우선 지상파,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 소유를 금지하는 대기업 집단의 기준을 현행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 조정'한 근거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또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겸영규제 범위를 '방송구역의 5분의 1'인 사전 규제체계에서 '총 케이블 가입자의 3분의 1'인 사후규제로 변경을 시도하는 것도 SO간 대규모 인수합병(M&A)이 발생해 거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시장 독점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문효선 집행위원장은 "방통융합 기구 개편 이후 신문·통신·대기업 등이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방송시장의 진입 규제를 폐지 완화하자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며 "이럴 경우 방송시장은 사업자 책무보다는 자본 투여를 통한 이익 회수가 중요시되는 '머니게임'의 혼탁한 경쟁시장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고 수용자들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공급받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집행위원장은 또한 "유료방송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인 케이블방송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전제돼야 한다"며 "시장에서의 공정경쟁과 방송의 다양성·지역성 확보, 콘텐츠 활성화 등 종합적인 측면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PTV와 동일하게 '규제 형평성' 맞춰달라"

그러나 IPTV 법안을 둘러싸고 규제의 형평성과 공정경쟁 환경을 강조하는 방송사업자들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엇갈렸다.

토론자로 참석한 스카이라이프 최영익 전무는 "IPTV를 도입할 때 역차별적인 사업규제가 해소돼야 한다. 케이블과 IPTV는 대기업 지분제한이 없는데도 위성방송만 49%로 묶여있는 것이 대표적인 역차별 조항"이라며 "지분제한 완화와 함께 프로그램 접근 규칙(PAR)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MBC 김종규 뉴미디어 부장은 "방통위가 출범하면서 종합편성 PP의 허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규제완화와 산업화 정책 추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10조 자산의 대기업이 종편PP로 들어온다면 지상파 종편PP의 수신환경 개선이나 디지털 전환 제작비, 광고문제가 일거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충분하고 다각적인 논의 없이 왜 갑자기 10조로 완화했는지 의문이다. 방송법 시행령에서도 SO의 겸영규제 완화를 위해 '가입자 3분의 1'로 정한 기준이 무엇인가. 특정 업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케이블TV협회 성기현 사무총장은 "머니게임을 우려하지만 역기능보다 순기능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SO의 겸영규제 범위를 '3분의 1'로 완화하는 것은 IPTV와의 공정경쟁 차원에서 맞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기업 진출 기준을 10조로 완화한 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케이블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업자가 차별적 콘텐츠를 가지고 방송시장의 정상화를 꾀했는지를 자문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반박했다.

IPTV의 공익적 콘텐츠 구현 어떻게? "실질적 조치 미흡"

IPTV를 둘러싸고 각 방송사업자들의 서로 다른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지만 정작 IPTV에 공익적 콘텐츠를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조치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 제공 방안, 이용자 권익 보호, 시민미디어 활성화 등의 공공 정책들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나 있고 규제완화와 산업화 등 기업들을 위한 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미디액트 박채은 연구원은 "IPTV법은 사업자들을 어떻게 진입시킬까만 고려한 법이 돼 버렸다. IPTV의 큰 목적인 방송 공익성과 공공복리 증진이 구체적으로 시행령에 담겨져야 한다"며 "공익적 콘텐츠 활성화는 단지 시장에 맡겨서 담보될 수 없다. 소비자들이 내는 이용료의 1%를 공익적 콘텐츠 활성화에 투자하는 등 직접적 지원을 법에 명시해야 하고, 초기 메뉴 구성과 채널 편성에서도 공익 채널이 반영될 수 있는 규제 방안을 시행령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신규 미디어에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IPTV 리모콘 조작의 어려움 등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사업자에게만 맡길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용자 주권 보호가 정말 형식적이다. 통합적인 이용자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처음부터 사회적인 논쟁과 토론 속에 IPTV의 도입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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