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8일 스타벅스가 세계 공정무역의 날을 앞두고 스타벅스 공정무역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얼마 전 통합진보당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당게시판에 유시민과 심상정 전 대표를 겨냥해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 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물론 백승우의 문제제기는 긍정적으로 볼 때는 정치인과 수행비서 사이 관계의 권위주의 문제를 지적했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며칠 후 유시민 전 대표가 다시 당게시판에서 해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아메리카노 커피’를 ‘노동자․민중’과 인연이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백승우의 어법은 시대착오의 전형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한편 ‘커피’를 둘러싼 논란은 트위터에서도 종종 전개된다. 가령 “청년층이 돈이 안 모인다고 말하지만 커피값이라도 줄이면 돈을 모을 수 있다”라는 조언이 나오는가 하면 이에 대해 “왜 하필 커피를 예로 드는가?”라는 반박이 나온다. 물론 조언을 한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줄일 수 있는 생활비’의 대표적 예시로 커피전문점의 커피를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류의 조언이 보편적이라는 데에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커피 재무설계’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꽤 많은 뉴스가 나온다. ‘하루 한잔의 커피 값을 아껴’ 라는 조언은 한 두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재무설계사들은 커피 소비를 줄일 것을 충고하는 조언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라 설명한다. 한 재무설계사는 통화에서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라떼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내용이 줄줄이 나온다. 말하자면 매일 먹던 4천원 짜리 카페라떼를 한잔만 줄이고30년 동안 모으면 2억을 모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설명했다. 왜 술이나 담배에 대해선 그러한 접근이 없는지 물었더니 “술은 인간관계에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줄이기가 어렵다. 그리고 담배는 중독성이 크기 때문에 고객에게 끊으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재무설계사들 역시 이 조언이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화한 재무설계사는 “커피 얘기는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가는 조언”이라며 “별다른 의식없이, 일상생활에서 새는 돈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상생활 속의 사례로 “가령 커피숍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상황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 커피숍에서는 십분 이십분 사람을 기다리는 경우 굳이 커피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냥 커피 한잔 시켜놓고 마시고 있는 여성들도 많다”며,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의식없이 지출되는 돈을 줄이자는 취지로 말할 때 커피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기자가 “그렇다며 다른 성별이나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비슷한 예시가 있느냐?”라고 묻자 재무설계사는 “그런 건 없고 더 구체적인 조언은 개별 고객들의 사정을 들어보고 하게 된다”고 답했다.

인류학자로서 대학강단에 서며 저술활동을 하는 엄기호씨는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토의를 해본 내용을 귀띔해 주었다. 그는 “사실 커피 소비자의 대부분은 여성이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소비주의 문화’=‘여성’=‘메트로폴리탄의 이미지’라는 도식이 있다. 그런데 학생들과 얘기를 해보면 여학생들 역시 실제로 그런 걸 인지하고는 있다. 가령 브런치를 먹을 때 뉴요커가 된 기분이었다는 얘기 같은 걸 들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유시민과 심상정의 모습 ⓒ연합뉴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는 <서울 36.6>이란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고 있는 김경씨는 재무설계사들의 조언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재무설계사들은) 기본적으로 기호품을 줄이라 말한다. 기호품은 먹고 사는 문제와 상관없는 잉여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기호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술, 담배, 그리고 커피다. 그런데 술과 담배는 오랜 역사 동안 우리 사회에 있었는데, 커피는 아무래도 2천년대 정도부터 널리 전파되었기 때문에, 줄이라는 조언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호품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무시하는 부분이 있다. 오히려 돈을 모으기 힘든 이들에게 가능한 ‘작은 사치’가 있고, 거기서 행복감을 누리는 부분이 있는데, 생존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니까 미래를 위해선 줄이라고 한다. 즐기는 이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고 첨언했다. 실제로 재무설계사의 조언에 반발하는 젊은이들 중 일부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예측되지 않는데 무슨 ‘미래’를 대비하라 그러냐”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가 생기면 기호품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경씨는 흔히 진보담론에서 분석하는 바 커피 소비를 신자유주의와 연결짓는 분석에 대해선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에서 봤을 때 스타벅스가 먼저 진출하고 프랜차이즈 매장이 번성하는 지역은 신자유주의가 발전된 지역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여의도와 강남이다. 사실 지식노동자에겐 당과 카페인의 공급이 필요하다. 커피의 번성은 단순한 기호품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노동의 강도와 사회적인 스트레스의 지수의 상승과 엮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줄이라는 말에 어떤 이들은 반발할 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커피의 모든 것>이란 책을 준비하고 있는 출판사 ‘따비’의 대표 박상경씨는 “술은 사회적 관계지만 커피는 개인적 관계”라는 분석에서 다른 얘기를 이끌어낸다. 그는 “나는 사실 커피숍에서 커피를 구매하면서 사는 것은 단순히 ‘커피’라는 물질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때 구매되는 것은 사실 시간과 공간이며, 그래서 자판기 커피로 대체하란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적은 비용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커피 구매의 본질이다. 그걸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본다면, 아마도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일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쉬는 시간을 구매하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과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문화비평가 최태섭씨는 커피숍에서 원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갈 데가 없어서, 공간이 없어서 오게 되는 곳이 커피숍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커피에 대한 사회적인 증오심은 ‘된장녀 논란’ 때부터 시작되었고 스타벅스 커피를 밥값과 비교해서 ‘밥보다 비싼 커피’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면 커피 한잔 사들고 그곳에 앉아 몇시간 동안 영어공부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이 가격으로 다른 곳에서 이런 일들을 하기가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비평의 대상이 되는 젊은 여성층의 시선은 어떨까. 인터넷을 뒤져보면 ‘라떼 효과’의 조언은 수긍하면서도 본인은 그것을 포기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 조언 자체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한 직장여성은 “커피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란 말도 못 믿겠다.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이 나보단 용돈이 많았는데, 그러면 그녀들과 놀기 위해 집에서 밥먹고 비싼 밥집에선 배 안고픈 채 안 시킨 후 커피만 따라가서 함께 마셨다. 물론 직장에서도 그 비슷한 일들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직장여성은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끼리 밥은 싼 백반집 가서 먹은 후 커피숍 가서 서너 시간씩 수다 떨면서 놀았다. 직장 들어오고 나서는 점심시간 때 테이크아웃 커피 찾아다 마시는 정도다.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소소한 사치도 못 즐기고는 못 살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 누가 턱없이 비싼 커피 마시나. 만만한 것에만 시비를 거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항변했다.

한편 과거 민주노동당원이었다는 한 직장여성은 "커피와 된장녀를 엮는 담론은 사실 2천년대 초반에 생겼다. 여성들이 소비주체로 급성장하고 외국자본 커피전문점이 들어오고 반미감정이 확산된 게 맞물린 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남자들도 커피를 많이 마시고 커피전문점을 가보면 남자들도 드글드글하다. 커피 들고 다닌다고 눈총 받아본 기억도 없다. 무엇보다 아메리카노 천원 이천원 하는데도 많다. 말하자면, 아메리카노는 소주만큼이나 대중적인 거다. 통합진보당 논쟁에 짜증이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실증이 없는 진보'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계층, 소득, 성향에 따라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커피나 커피숍이 위치한 문맥은 폭넓었고 생활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었다.

▲ 지난 7월 12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전남대 여수캠퍼스 도서관에서 일일 바리스타로 변신한 모습 ⓒ연합뉴스

그래서 이제는 커피 소비자에 대한 분석도 세분화 되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엄기호는 “홍대에서 살다 보면, 같은 커피 소비자라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는 이들과 바리스타가 하는 조그만 카페들에 가는 이들은 또 전혀 다른 양상의 사람들이라 느껴진다. 전자가 화이트칼라의 상징이라면, 후자 중엔 가령 녹색당원이라든지, 정치적으로 진보적 의식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경은 “프랜차이즈 매장은 생활 속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곳이고, 그중에서 브랜드 선호도가 작용한다. 맛은 다 비슷비슷하다. 스타벅스 커피 정도가 좀 구별되는데, 강하게 볶아서 그렇다. 사실 퀄리티가 낮기 때문에 강하게 볶아서 내는 건데 그 맛이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반면 바리스타가 하는 카페들에 찾아가는 이들은 자기 취향의 맛을 일부러 찾아가는 이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재무설계사의 시선으로 볼 때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가볍게 이용하는 이들이 더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까, 아니면 뚜렷한 취향과 기호가 있는 이들이 더 ‘낭비’하고 있을까? 답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무설계사의 조언에서나 어떤 진보담론에서나 ‘동네북’처럼 호출되는 커피 소비에도 다양한 결들이 있고, 이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라떼 효과’ 조언에 반발하는 젊은 여성들의 항변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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