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지지철회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14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전면 철회했다. 어제 오후부터 열린 제13차 중앙집행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재석 표결권자 39명 중 27명이 찬성한 결과다. 신당 창당에 대한 지지나 집단 탈당에 관한 결의로까지 나가지는 않았으나 통합진보당 문제에서 ‘혁신파’에 힘을 실어준 결의로 평가받고 있다. 한 혁신파 관계자는 “애초에 그 이상의 행동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며 “민주노총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젠 우리 몫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상황을 살피자면 권영길, 문성현, 천영세 등 전직 당대표 3인이 강기갑 대표의 노선에 합류함으로서 통합진보당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세는 매우 줄어든 상태다. ‘구당권파’로 불리는 경기동부연합 외에는 어제 민병렬 최고위원 인터뷰에 합류한 울산연합 정도만이 ‘분당’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들이 분당을 반대하는 상황에선 당원결의를 통한 당해산은 불가능하지만 혁신파 쪽이 애초부터 당해산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이미 참여계가 집단 탈당하는 상황에서 표결을 통한 당해산은 어려운 일이었다 볼 수 있다.

다만 ‘신당 창당’의 주체가 되는 참여계와 인천연합,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간의 온도차는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참여계는 가장 적극적으로 탈당에 나서는 반면, NL정파의 하나인 인천연합의 경우 심사가 복잡한 상황이다. 진보정당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갭’이 있다고 들었다. 중앙에서는 분당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지만 지방에서는 반발이 있다는 얘기다”라고 전했다. 혁신파 관계자 역시 “그들로서도 ‘자민통 대오’(NL정파 내 최대 분파로 3개 연합은 모두 이에 속한다)를 이탈하는데 부담이 없겠는가. 특히 지방에서야 다른 ‘동지’들과 부딪힐 상황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중앙이 지방을 설득하는 단계이고 반나절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통합연대의 경우 가장 세가 미약하기 때문에 신당창당이든 당내 잔류든 다른 주체들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 지지철회를 신당파에 유리한 정국으로 보는 시선에 대한 일말의 우려도 존재한다. 진보정당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결국 신당파의 전략은 냉정하게 볼 때 현재의 통합진보당 틀에서는 야권연대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민주당과 협력하여 연립정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라 전제한 후 “그러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굳이 진보정당 쪽을 경유해서 만나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문재인과 손학규, 김두관 등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각 노동조합을 방문하며 ‘스킨십’을 높이는 상황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돈주고 표주고 얻은 거 없다’는 민주노총의 진보정당에 대한 불신이 이번 결정의 기저에 깔려 있다면, 향후 뜻밖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통합진보당이 ‘신당 창당’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진보신당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한 진보신당 관계자는 “통합진보당의 탄생으로 ‘진보’란 이름도 뺏겼는데 이제 ‘신’도 뺏길 지경이다”라고 한탄한 후 “신당의 틀로 진보신당도 들어오라는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 전망했다. 진보신당 합류를 고민하던 노동계 비주류의 경우도 통합진보당 혁신파의 신당창당의 틀에 들어가야 할지, 참여계와 함께 당을 하는 상황을 반대하며 진보신당을 포괄하는 노동자 정당 건설을 주장해야 할지에 대한 내부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진보신당 관계자는 “현재 남은 진보신당 당원들은 대부분 더 이상 다른 곳에 갈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참여계나 NL에 대해 일정 부분 거부감이 있고 독자노선을 하더라도 쉽게 당을 떠날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후 “그러나 지지층의 확장을 위해서는 다른 영역에 대한 공략이 필요할텐데 신당창당과 관련해서 그 영역이 협소해지고 통합에 대한 주변의 압박도 강해지는 한편 유권자들에게 존속의의를 설명하는 일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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