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경비대원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금요일 이명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정부 당국은 이 방문의 배경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상황에 대한 항의라고 설명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해결을 언급했고 몇 달 후 3.1절 기념사에서도 "군대 위안부 문제만큼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 문제"라고 강조하는 등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작년 정상회담, 올해 3.1절 기념사와 연결 짓기엔 좀 상황이 띄엄띄엄하다. 일본 측의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뜬금포’라는 느낌이 있다.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은 “3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말하고 "지난해에도 독도 휘호를 갖고 가려고 했는데 날씨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기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일전 전날 방문한 것이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이렇게 가볍게 결정될 사안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기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송민순 전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고 우려했다.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은 mbn 인터뷰에서 ”독도 방문을 하기 위한 준비와 기타 여러 가지 누적된 명분 만들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왔다갔다하는 방식, 또 깜짝 정치쇼 하는 방식으로 독도 희화화시키면 안 됩니다“라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은 트위터에서 ”제 청와대 경험으로 보면...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언제고 지지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혹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그 유혹에 빠져든 셈이다. 러시아 메르베데프 대통령의 2010년도 쿠릴열도 방문을 본땄다는 얘기가 있지만, 쿠릴열도는 엄연한 분쟁지역이다. 러시아 측에서 4개섬 중 2개 반환을 고려했을 정도로, 한국의 독도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정부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 위험을 감수하면서, 실효적 지배를 위해 추진하겠다던 종합해양과학기지와 방파제 건설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강한 엠바고를 걸어 한국인들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일본인들보다도 늦게 알게 만들었다. 마치 포털 사이트가 누리꾼들의 트래픽을 낚아채는 것과 비슷한 인위적인 여론의 집중이었다.

이어진 토요일 새벽 올림픽 동메달과 선수단 병역특례 문제가 걸린 운명의 한일전이 2대0 승리로 끝나자 신문사들은 실제로 트래픽을 낚아채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여론을 장악하는 사건은 경기가 끝난 지 18시간 가량 지난 자정 무렵 터졌다. 올림픽 대표팀 박종우 선수의 세레모니가 문제가 되어 그가 동메달을 받지 못하고 귀국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동안 기사는 갱신되었고 조회수는 폭증했다. 한 유력일간지의 인터넷뉴스 담당 기자는 “박종우 동메달이 보류됐단 기사의 조회수는 35만을 넘었다. 올림픽 기간이라도 스포츠 관련 매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대부분의 스포츠 기사 조회수가 수천 정도에 머물고 포털에 걸려야 1만을 넘는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다”라고 설명한다. 해당 기자는 “비교할만한 수치로, 신아람 오심 관련 한 기사는 140만을 넘었다”며 귀띔했다.

▲ 올림픽 대표팀 박종우 선수가 11일 새벽 3-4위전 승리 후 관중석에서 건네받은 "독도는 우리 땅" 피켓을 들고 세리머니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다보니 조회수를 낚기 위한 경쟁으로 제목과 기사가 동떨어진 보도도 나왔다. 제목에는 ‘박종우’와 ‘욱일승천기’를 함께 넣어놓고 막상 기사를 클릭해보면 “일본 선수가 관중들의 욱일승천기를 들여온 것은 아니기에 상관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또 올림픽 대표팀 경기력과 관련해 화제가 되었던 병역문제를 엮어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설령 IOC 측에서 메달을 박탈하더라도 박종우에 대한 처우는 한국 측의 정책문제로 따로 남는데도 그렇게 했다.

상황을 따져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란 구호가 IOC 입장에서 정치적인 구호란 것은 이해될 수 있다.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 부르는 것이 무슨 정치구호냐는 반론이 있지만, 한국인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친다는 것은 당연히 일본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가령 한일전 축구경기에 “제주도는 우리 땅”이란 피켓이 등장하는 것은 유머나 패러디가 아니라면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그 전날엔 한국의 대통령이 그 섬을 전격 방문하면서 일본 측의 항의를 받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일부 누리꾼들도 지적하고 분개하듯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방문이 “독도는 우리 땅”이란 구호를 훨씬 더 정치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런 차원을 떠나서라도 이 구호가 세리머니 현장으로 끼어드는 것이 IOC가 금지하는 행위임은 납득해야 한다. 오히려 이 구호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걸고 넘어지기가 좋다. 가령 대표팀이 택한 ‘만세 삼창’ 세리머니가 곧 다가올 광복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납득하려면 외국인으로서는 한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믿는 이들은 기성용이 구자철에게 했던 말처럼 “당연히 우리 땅인데 그걸 왜 세리모니로 표현하냐”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또 박종우를 돕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지금 대한축구협회가 하는 것처럼 고의성이 없는 우발적인 행동임을 강조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 오늘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과 박종우 선수 세리머니 문제를 적극적으로 연관지었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욱일승천기를 활용한 일본 체조선수 복장에 훨씬 더 큰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성에 대한 IOC의 판단이란 것에도 당연히 정치성은 개입되어 있다. 그런데 외부의 맥락을 본다면 욱일승천기는 현대 일본에서도 자위대 깃발로 쓰이는 등 나치 독일의 상징들과는 달리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 따라서 욱일승천기 문제는 박종우 문제와 별도로 보고, 해결을 원한다면 스포츠 내외적으로 사용금지 여론을 조성하고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뜬금포’ 독도 방문에 대한 지지율이 87%라는 보도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10%가 넘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문제에 대한 감정적 흥분의 강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정도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이명박의 처신을 문제삼는다면, 그 비판을 거울삼아 박종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문제를 섞지 않고 그를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만일 동메달이 박탈된다면 그에게 돌아갔을 혜택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정도가 우리가 박종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MB의 독도 방문처럼 ‘뜬금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