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는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를 먹지삼아 쓰여진 책이다. 디킨스는 혁명에 찬동하지 않지만, 그 재앙의 원인이 억압과 착취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칼라일이 그러했듯이.

 

"2천 5백만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굶주림, 추위, 가차없는 억압,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즐기는 변호사나, 돈 많은 장사꾼이나, 지방 귀족의 금간 허영심이나, 대립적인 철학 같은 것보다도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이었다. 동일한 이치는 국가 여하를 막론하고, 그러한 모든 혁명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 토마스 칼라일, <프랑스 혁명사> -

“다시 한 번... 인간성을 망가뜨려 보라. 그러면 인간성은 똑같이 일그러진 모습으로 뒤틀리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똑같은... 억압의 씨앗을 뿌려보라. 그러면 확실히 심은 대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 찰스 디킨즈, <두 도시 이야기> -

 

베인은 대거트가 불러들인 악마다. 아니, 거짓 평화로 쌓아올린 교만과 억압이 초혼한 재해다. 세계를 불길하게 덮어 쓴 암운. 이것은 월가의 축재와 위선이 발사한 부메랑이다. 억압과 지배가 재난의 마스크를 쓰기 전까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발밑에서 굴착해오는 균열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고난의 풀섶을 뚫고 전진할 수 있는가.

 

“이 용감해야 한다는 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영원한 의무이다. 용기(Valour)는 여전히 가치(Value)이다. 사람의 첫 번째 의무는 여전히 공포를 정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포를 제거해야 한다.”
- 토마스 칼라일, <영웅숭배론> -

브루스 웨인은 다시 한번 추락하지만, 끝내 절망의 원형감옥을 기어 올라오고 만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트라우마. 죄의식과 두려움. 웨인은 라즈 알굴을 통해 죄의식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는 희망이란 독극물을 선사한 베인을 딛고 두려움마저 직시한다. 그리하여 삶의 의지란 용기를 포착해내고 상승한다. 웨인이 지옥의 출구를 마침내 밟고 서자, 쏟아지던 환호와 열광의 스콜. 희망을 통해 절망을 보던 죄수들에게 웨인이 제시한 건, 끝끝내 관철되는 희망의 승리였다. 클린 슬레이트. 가난에서 비롯된 이 과거의 연쇄는 희망으로써 삭제해야 한다. 이 시대의 영웅은 누구인가. 놀란은 왜 이 히어로 서사를 준비했고, 어떻게 현실과 연동시키고자 했는가.

“즉 영웅숭배의 근절이 아니라, 오히려 온통 영웅들로 가득 찬 세계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 준비되고 있다. 영웅이 ‘성실한 사람’을 의미한다면,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토마스 칼라일, <영웅 숭배론> -

칼라일에게 영웅은 ‘광명의 원천’이었다. 그 빛은 수많은 작은 영웅들에 의해 반사되고 뿜어져 나가 세상을 비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전례 없이 많은 조력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고든 청장이, 셀리나 카일이, 존 블레이크가, 맨손으로 월가를 가로지른 이들 모두가 이 시대의 영웅이다. "부모 잃은 아이에게 외투를 걸쳐 주는 남자도 영웅이지".

희생과 순교. 브루스 웨인은, 그리고 다크 나이트는 시드니 카턴처럼 자신을 버리며 더 값지고 본질적인 생명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전부를 고담시에 바치며 자신을 극복해냈다. 진주 목걸이는 동반자를 찾았고, 배트맨은 웨인의 가면을 이해하는 로빈에게 전승됐다. 웨인가가 기부한 고아원에서 자란 블레이크가 또 다른 수호자가 된다는 설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놀란이 말하는 희생과 희망이 거짓 시혜와 은총은 아니란 것이다. 음식값을 따로 지불하며 수익금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자하는 파티에서 셀리나 카일이 얘기하지 않던가. “여기 모인 사람들보단 내가 훨씬 더 세상에 도움이 될 걸요.” 그리고 그 기부하는 투자자 미란다 테이트가 고담시를 습격한 악의 본령이었단 사실을 미루어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트맨을 미국을 움직인 시대적 결정의 외화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단호한 희생과 헌신일지 모른다.

 

“만물은, 심지어 신들마저 죽는다. 그러나 모든 사멸은 불사조가 불에 타서 다시 살아나듯이, 더 위대하고 어진 것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시간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희망의 땅에 살고 있는 생물의 근본적인 생존법칙이다. 모든 진지한 사람들은 이것을 보았으며 앞으로도 볼 것이다.”
- 토마스 칼라일, <영웅숭배론> -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며, 세계는 부침을 겪는다. 잎사귀가 앙상한 겨울을 지나고서야 생명이 무성하듯, 날아오르기 위해선 먼저 추락해야만 한다. 브루스 웨인은 죽었지만 자신의 삶을 찾았다. 다크 나이트는 사라졌지만, 희생과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배트 수트를 상징하던 공포와 불멸. 두려움을 극복한 박쥐는 이제 불사처럼 재생한다. 영화의 마지막, 새 시대의 배트맨 존 블레이크는 가장 낮은 곳에서 부상한다. 역사는 무수한 이름 없는 영웅 (Unsung Hero. 베인이 ‘트리거맨’을 일컫는 말이다. 악마의 입에서 굴절되어 다가오는 이 희망의 이름을 보라!) 들의 의지와 희망으로 거듭나고, 한 시대의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날개를 편다. RISE. 즉, 솟아오른다.

- 끝 -

 

필자> 일상과 세상의 경계를 모로 걸으며, 조심스레 두리번대고 글을 쓴다. 사회, 문화, 정치의 단층을 채집하여 살펴본 이면의 수런거림들을 블로그(blog.naver.com/yke0123)에 편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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