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공천헌금 파문의 당사자 현기환 전 의원이 3일 오후 부산지검에 출두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에서 필사적으로 축소보도 하려 하겠지만 현영희 비례대표 의원과 홍준표․현기환 전 의원의 수사로 시작된 ‘공천헌금’ 논란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수사가 계속 이어지고 방송이든 보수언론이든 이를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도, 아직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를 추격하려는 비박 대선주자들이 친박계 의원들의 비리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영희와 현기환 두 사람은 대표적인 친박계열로 분류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대한 감정의 격류와 그것을 희석시키려는 온갖 시도를 보기 전에 우리가 이 사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문제와의 비교

한 정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에 부정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이것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 비슷한 수준의 정치적 문제로 취급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이 일어났을 때 어떤 지지자들은 이것은 정당 민주주의가 작동하다가 나타난 문제라는 점에서, 공천과정에서 전혀 정당 (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새누리당 등이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정당 내부의 운영의 민주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과 평가의 잣대가 가능하다. 가령 후보 공천의 방법을 진성당원의 투표, 오픈프라이머리를 적용한 모바일 투표, 여론조사, 공천심의위원회의 결정 등으로 택할 경우 이중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공심위 결정을 따르는 정당에서 통합진보당의 ‘부정’을 비판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르다. 다만 각각의 방법이 잘 작동할 수 있고 또한 부정이 저질러질 수도 있는데, 통합진보당 내에서 일어난 일은 진성당원제에 고유한 부정인 당원 명부 왜곡 및 대리투표였고 새누리당 안에서 벌어진 일은 공심위 결정을 쉽게 왜곡할 수 있는 금품수수였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새누리당 공천헌금 문제는 남한 사회의 모든 언론이 석달 동안 분개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문제와 비슷한 수준의 문제다. 또 각 당을 지지한 시민들의 숫자의 차이와 획득한 권력의 양을 고려한다면 새누리당의 문제가 훨씬 크다고도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 전혀 익숙치 않아 통합진보당 대의원들이 표찰을 들고 표결하는 당내 문화까지 ‘북한식’으로 몰아간 한국 보수언론들이 새누리당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부정을 어떤 방식으로 비판할지 기대가 된다.

차이가 나는 부분은, 금품수수 문제는 법적으로 처벌가능한 것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선거명부왜곡 및 대리투표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므로 새누리당의 문제가 통합진보당의 문제 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어떤 측면에선 새누리당에게 더 유리한 지점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이 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법적으로 명백한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하고 그 해결을 거부하는 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반면 새누리당의 경우 검찰수사 결과 공천헌금을 주고 받은 이들이 처벌되기만 하면 당 차원에서의 쇄신이 일어난 것으로 포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검찰수사가 철저했다고 믿을 국민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진보진영은 새누리당에게, 통합진보당 문제에 흥분한 만큼은 진심을 기울여 쇄신을 하라는 요구를 충분히 할 수 있다.

▲ 통합진보당 1차 진상조사위 보고서 발표 다음날인 5월 3일자 조선일보 1면. 보수언론들이 검찰수사 발표 이후 이 정도의 '패기'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차떼기’와 천막당사를 환기하는 공천헌금

또 이 사건은 색깔과 이름을 바꾸고 야심차게 출발한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의 정치문화를 탈피하지 못한 집단임을 보여준다. 지금 드러난 액수는 3억 정도지만 수사가 확대되고 금액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차떼기당’과 천막당사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차떼기당’은 2002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나온 조어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중앙선관위에 226억을 썼다고 신고했고 민주당은 274억을 신고했다. 법정한도액에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2004년 3월까지 전개된 검찰 수사 결과 한나라당은 823억원을, 민주당은 113억원을 주요 대기업들로부터 추가적으로 불법 모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 역시 대선자금의 전부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며, 당시의 정치평론가들은 민주당은 500~600억, 한나라당은 1천억이 훌쩍 넘는 금액을 사용했을 거라고 예측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재벌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수수하는 과정에서 ‘차’가 동원됐다고 해 ‘차떼기당’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당시 한나라당은 불법 정치자금 모금 및 재벌과의 유착, 그리고 대통령 탄핵안 가결 등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천막당사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리고 2004년의 이 천막당사라는 이벤트는 오늘날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차떼기당’으로 몰리는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해낸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박근혜의 지도력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천막당사는 당시 고진화 공천자 등 쇄신파들이 주도한 것이었지만 어떤 제도적 쇄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 수혜자는 박근혜가 되었다.

천막당사, 당명 변경, 색깔 및 로고 변경으로 과거 한나라당 및 이명박 정부와의 관련을 부인한 박근혜에게 ‘공천헌금’ 의혹은 치명적이다. 당연하게도 이 사건은 박근혜가 절연했다고 믿었던 과거의 질서가 여전히 온존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박근혜는 다만 이 사건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과거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으로 몰리게 된다. 민주당 및 야권으로서는 논점을 명확히 잡고 비판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 2004년 2월 열린우리당원들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모금을 풍자해 '차떼기' 당비를 모금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자금의 문제

그러나 또한 이 문제는 박근혜 문제를 넘어 한국 보수정당이 정치를 함에 있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공천헌금’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차떼기’ 문제까지 환기한다면 다시 대선자금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수사에서 밝혀진 것만으로도 823억원을 불법 모금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70억원 정도는 희망돼지와 ARS 등으로 모금했고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을 경우 사퇴한다고 공언했으나 113억원이 밝혀지는 등 불법 모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2012년 대선이라고 이때와 다른 상황이 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공정한 선거를 보장하면서 불법 모금을 통한 정경유착을 줄일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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