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동차 부품을 던지며 노조원들을 진압한 컨택터스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며칠 동안 올림픽 보도를 제외하고 일간지를 수놓고 있는 이슈 중에 ‘중국 공안 김영환 고문 논란’과 ‘컨택터스 노동자 폭행 건’이 있다. 전자는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김영환씨가 고문을 당했다는 것으로, 조선일보에서 1면에 크게 보도하는 등 주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보도가 이루어졌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인 김영환씨를 중국 정부가 고문했다는 점에서도 인권 문제가 되지만, 북한 인권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과도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후자는 민간 경호전문업체인 컨택터스가 SJM 등의 노사분규 현장에 난입하여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경찰에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사건으로, 후속취재를 통해 컨택터스가 이명박이나 박근혜 경호업무를 한 전력이 있다는 의혹, 대표가 새누리당 당직자로서 로비를 담당했다는 의혹, 폭행으로 미약한 벌금과 영업취소를 당해봤자 대표와 회사만 바꿔 다시 등록하면 된다는 법률적 허점 등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노동조합 탄압 문제는 물론 폭력의 민영화 문제와도 연결되고, 특정한 폭력만 처벌하고 나머지는 방관하는 국가 권력의 불공정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으며, ‘폭력의 독점’이라는 근대국가의 특징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권 침해 사안이면서 엮이는 문제가 많다는 점에서 보도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보세력이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항변이 무색하게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은 김영환의 증언과 조선족 출신 중국 공안의 양심선언 등을 비중있게 보도하는 반면, 조중동에서는 ‘컨택터스’나 ‘SJM’이란 키워드 어느 쪽으로도 단신기사 하나 검색되지 않는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장하나, 은수미 의원 등이 거듭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건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검색에 걸리는 건 만도기계와 SJM의 주가추이를 비교하는 ‘조선비즈’의 기사 두어 개 정도다.

▲ 2일자 한겨레 4면에 실린 조국 교수의 김영환 인터뷰 기사

김영환의 고문이 인권문제라면 SJM 노조원들의 폭행 문제도 인권문제다. 그런데 남한의 보수세력은 남한의 과거와 현재 인권문제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북한인권 및 그에 관련된 인권문제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김영환의 고문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만약 그가 전직 주체사상파이며 최근 새누리당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크나큰 문제다. 그들이 북한인권에 무심하다고 질타하는 진보언론들은 최소한 그런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다. 인권은 내가 임의로 정한 ‘착한 편’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북한문제에 대고 인권문제의 보편성을 역설하는 보수언론은 ‘불법파업’이나 ‘불법시위’의 딱지를 붙인 이들의 인권은 몰수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대북지원은 반대하면서 북한 인권운동은 부각시키고 남한 독재정권의 행적을 미화하려 하는 그들의 논리를 이 세상에 반영한다면 북한인들은 밥 없이 자유만으로 살 수 있는 천상의 존재들이며 남한인들은 자유엔 별 관심없고 밥만 먹여주면 독재자에게 고맙다 말해야 하는 천상 속물들일 것이다.

그런데 보수언론의 편견이 그렇다고 해도 이번 컨택터스 관련 무보도는 심한 면이 있다. 보통 노사분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조중동은 침묵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길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파업이 불법이었음을 강조한다든가, 그 노조는 연봉 1억이 넘는 귀족노조였다는 식의 ‘대응’보도를 한다든가, ‘노노갈등’을 부각시킨다든가, 노조의 폭력성을 부각시켜 물타기를 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예전과는 다르게 지면에서 철저히 이 문제를 외면하는 상황에 대해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한 기자는 “정말 보도가 없었나”라며 되물은 후 “노동문제이니 만큼 작게 보도하는 건 그 매체들의 생리에 맞는 일이긴 한데 전혀 보도가 없었다는 건 이해가 안 간다. 경제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어느 정도 다루는 문제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조중동에게 아킬레스건이라서 도저히 보도하면 안 되는 사안이냐 하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다 자기들 나름대로 대응하는 방식이 있다. 그러다 보니 뒷 배경도 짐작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자 역시 “이 사건이 미래권력(=박근혜)에 해를 끼친다고 보기도 어려울 텐데 이렇게 행동한다면 뭔가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 근데 아예 안 쓴 건 좀 ‘오바’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굳이 해석한다면, “전반적으로는 주류언론이 정치권력보다는 자본권력에 더 눈치를 보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대기업 광고를 받아야 하는 종편사업을 시작하면서 자본권력에 대한 자율성이 더 줄어든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화 이후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특히 조선일보의 공안정국 조성 등으로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세한 것이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의 일이었다면, 뉴미디어의 성장으로 신문 산업이 퇴조하고 재계의 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언론권력이 자본권력의 ‘시녀’가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 참여정부 때의 상황이다. 조중동은 그간 종편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종종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태도도 보여주었으나, 종편사업을 하면서 광고주의 눈치는 더 보게 된 상황인만큼 재벌그룹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사안에서도 반노동적인 기조를 더 강화하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선이다.

물론 이런 해석도 과잉일 수 있다. 컨택터스와 조중동의 관계에서 어떤 필연성이 느껴지지는 않고, 그 사이의 다른 연결고리도 쉽게 추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중동과 몇몇 경제신문에서 이 이슈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비상한 일이 아니라 원래 그들에게 관심이 없던 사안인데다 올림픽 보도를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시선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우연의 다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가 그간에도 국가의 ‘폭력 독점’이 공고하게 이루어진 곳은 아니었고, ‘용역’들이 노조탄압에 동원된 것도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수천 명의 인원과 경찰에 준하는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자칭 ‘민간군사기업’이 출연한 상황을 이렇게 범상하게 넘길 수 있는 주류 언론의 풍토는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임무를 ‘외적으로부터의 보호’ 정도로 한정하고, 해적이나 중국 정부에 의한 상해에만 길길이 뛰는 이들을, ‘보수’라 부른다면 그것이 수호하는 가치는 근대 이전의 것일 게다. 북한 인권의 ‘보편성’으로 진보진영을 압박하는 이들의 후안무치함과 무신경함을 보면, 이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유능함 때문이 아니라 어떤 부분의 인식이 텅 비어 있어 문제를 제기받아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모른다는 황당한 상황 때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진중권의 말을 빌어,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는 상황이 이런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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