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공천의 기획자' 현기환은 누구인가?

“손수조, 문대성 등 새누리당 공천에 대한 지역 여론이 안 좋다. 그런데 이 비판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향하는 것은 전혀 온당치 않다. 부산 지역을 보면 새누리당 공천은 봉건군주가 영토를 나눠먹은 형국이다. 부산의 군주는 현기환이다.”

지난 총선 당시 문대성 의원의 논문표절 의혹을 취재하며 들었던 말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던 문 의원은 별다른 과정 없이 현기환 의원의 지역구였던 사하갑을 승계 받았다. 당시 현 전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하며 친박계의 희생과 새누리당의 19대 공천 쇄신을 상징하고 있던 터였다. 그 빛나는 자리에 문 의원은 무혈입성한 셈이었다. 이 과정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만난 한 부산 지역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부산 공천이 현기환 전 의원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단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기환 입장에선 전혀 밑질 것 없는 장사다. 문 후보의 사무실은 사실상 현 의원 사무실이나 다름없다. 현 의원이 선대위원장이고, 사무국장은 현 의원 보좌 하던 사람이다. 정치 신인인 문 후보를 완전히 수렴청정하고 있는 셈인데, 불출마로 명분을 세워 부산 지역 전체를 이렇게 주무르고 있다. 문 후보만 하더라도 애초에는 문재인 대항마로 간다, 북구로 보낸다 말이 많더니 결국 손수조를 데려오고 사하갑을 주는 걸로 정리됐다. 이 엄청난 조정을 현기환 맘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 지난 19대 총선에서'PK공천의 기획자'로 불리며 문대성 당선자의 멘토 역할을 했던 친박계 핵심 현기환 전 의원(좌)은 그러나 문 의원이 당선된 이후 논란이 커지며 박 의원을 향해가자 "오늘까지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라"며 문 의원의 탈당을 압박했었다. ⓒ연합뉴스

결국, 터질게 터진 셈이다. 선관위는 지난 7월 30일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현기환 전 의원과 홍준표 전 의원을 수사의뢰 조치하고 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현영희 의원(새누리당, 전국구)을 고발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현영희 의원은 지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지역구 예비후보자로 등록 후 공천을 받지 못하자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3월 중순 당시 공천심사위원이던 현 전 의원에게 3억 원을 주었고, 3월 말에는 홍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관위의 이번 조치는 대선을 불과 4개월 여 남겨둔 시점에서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을 ‘공천헌금’이라는 치명적 스캔들로 몰아넣었단 점에서 단박에 정치권을 초긴장 ‘멘붕’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은 박근혜 의원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으로 총선 이전부터 ‘PK 공천의 기획자’로 불렸다. 유독 새 얼굴 공천이 많았던 부산 지역에서 현 전 의원은 문대성, 손수조 등 당시 바람몰이를 하던 후보들의 ‘멘토’로 불리며 부산 지역 선거를 총괄했다. 이후 문대성 의원에 대한 표절 논란이 거세지자 문 의원을 당 밖으로 내쫓은 것도 사실상 현 전 의원이었다.

혁신한다며 당명까지 바꿨던 비대위가 국회의원 자리 매관매직?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건이 “공천 헌금 사건이 아닌 국회의원 매관매직 사건”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진두지휘한 공천과정에서, 새로 거듭나겠다면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이 국회의원직을 사고파는 망국적 부정부패사건을 저지른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공천헌금 사건이 아닌 조선시대 매관매직에 버금가는 조직적 부패사건으로서 현대판 국회의원 매관매직 사건"으로 규정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새누리당 당시 비대위원회가 몰랐을 수 없고 그렇다면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의원 역시 알았을 거란 입장이다. 박 대변인은 “이번 공천장사는 새누리당의 구조적 조직적 문제이며 당시 당을 장악하고 총선공천과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후보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당시 최고지도부인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이 일을 몰랐을 리 없고, 설령 이일을 몰랐다고 발뺌을 한다면 공천혁명을 부르짖으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것“이라고 책임을 추궁했다.

민주당의 주장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은 현 전 의원이 받은 돈이 3억 원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이 돈이 정말 공천헌금이라면, 이른바 ‘시장 가격’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이미 구속된 이상득 전 의원이 받은 ‘당선 축하금’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은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이미 확인된 임석 회장으로부터만 3억 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도 각각 3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돈들은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일괄적으로 3억이란 금액이 전달된 것인데 이를 두고 여의도 정가에서는 “당선 축하금 성격이 분명하다, 정황을 볼 때 당시 당선 축하금이 3억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돈을 건넨 이는 더 많았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들어서지 말았어야 할 '회로'에 올라간 박근혜의 운명은?

박근혜 의원의 대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이다. 1인칭을 사용한 대단히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묻어나는 슬로건이다. 이러한 전략은 박 의원의 이미지가 ‘원칙’과 ‘신뢰’에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천 헌금 파문은 이러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흔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박 의원이 주도하고 최종 책임자였던 공천에서 헌금이 오고갔다면 이는 ‘악재’라는 표현으론 부족한 엄청난 파문이 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이 벌써부터 “당내 경선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은 설령, 이번 사건이 정치적 수사로 ‘별 것 없음’의 판정을 받더라도 두고두고 박 의원의 대선 레이스에 부담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가장 치명적 부패, 가장 고약한 민심 이반의 상황 앞에 서있는 셈이다.

▲ 이번 공천헌금 파문은 결국, 박근혜 의원을 향할 것이다. 결과 여하에 따라 그녀가 쌓아왔던 이미지와 전략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박 의원 입장에선 결코 오르지 말았어야 할 '회로'에 들어선 셈이다. ⓒ연합뉴스

그리고 더욱 심란한 것은 이번 사건의 정황이 현재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실체에 부합하는 양상이란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현영희 의원은 애초 부산에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떨어졌고, 이후 전국구 자리를 얻기 위해 돈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부산 지역 공천을 현기환 전 의원이 좌지우지했단 사실은 부산 지역에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박 의원 입장에선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최태원 구명 서명을 계기로 안 교수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하려했던 시점에 상상할 수 없던 최악의 상황이 닥쳐온 셈이다. 만약, 선관위의 조사가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의 파장은 현기환 전 의원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TK에도, 서울에도, 충청에도 공천권을 사실상 행사한 또 다른 현기환들이 있었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고, 결국 이 의혹들은 박근혜 의원의 ‘대선 자금’을 겨냥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이 결코, 오르지 말았어야 할 ‘회로’에 들어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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