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조선일보 6면 기사

안철수 측으로부터 언론보도에 대한 최초의 해명이 흘러나온 사건이다. 신문지상을 런던 올림픽 소식이 뒤덮은 가운데 조중동과 한겨레․경향은 2003년 안철수 원장이 최태원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대해 안철수 원장이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사안이 뻔했기 때문에 내용도 비슷비슷했고 조선일보 6면, 중앙일보 5면, 동아일보 6면, 한국일보 6면, 한겨레 6면, 경향신문 5면 등 실린 곳도 일정했다.

다만 한국일보와 한겨레만이 이 사안을 박근혜 측의 동정과 함께 엮어서 배치했다. 한국일보는 박근혜의 5.16발언과 엮어 대등하게 배치했고, 한겨레는 지지율이 흔들리는 박근혜 측의 당혹을 담은 기사를 크게 배치하고 그 아래에 안철수 논란을 다뤘다. 한국일보의 편집이 양 진영의 상황을 감각적으로 배치한 것이라면, 한겨레의 편집은 안철수 검증논란을 다소 희석시키려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 신문들은 같은 면에서 주로 민주당 경선 상황을 다루었다.

▲ 31일자 한겨레 6면 기사. 한겨레는 이 기사를 '안철수 논란' 기사 위에 크게 배치했다.

평소 재벌중심 경제구조를 강하게 비판했고 최근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경제사범을 엄벌할 것을 강조한 안철수에게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재벌그룹 총수의 구명 활동에 나선 과거를 들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안철수 측의 해명도 납득할 만한 수준인 것으로 여겨진다. 참여한 단체의 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정도였고, 당시의 일이 잘못이었다 시인하고 비판과 지적을 수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언론들 역시 1-2면 정도에서 '조질'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굳이 상대평가를 해봐도 현재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여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2003년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재벌에 관대한 경제정책을 펼치거나 지지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철수의 반듯한 이미지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일종의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기존 정치인에게는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그에게는 큰 타격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는 무단횡단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하다못해 언제 어디서 무단횡단했다는 것만 밝혀도 실망하는 지지자들이 나올 것이다. 김종인이 “성인인 척 하는 게 곧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수 있다.

따라서 안철수가 정치적 행보를 계속한다고 할 때에 그를 향한 검증의 칼날은 주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집중될 공산이 크다. 안철수에겐 정치인으로서의 과거 행보가 없고 박근혜 등 현역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위협적으로 보이는 건 이미지이기 때문에 정치권은 그 이미지를 깨뜨릴 수 있는 팩트를 긁어모으려 할 것이다. 이는 주로 그의 재산형성 과정, 기업운영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및 여러 강연에서 나왔던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발언의 나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철수가 대표적인 벤처사업가였고 벤처산업의 성장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 새누리당의 행동을 돌이켜 볼 때 두 사안을 엮어 모종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그것이 조선일보 등을 통해 확산되는 상황 역시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 31일자 한겨레 2면의 한겨레 그림판. 안철수의 행보를 꼬집는 시각을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대중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를 적확하게 뽑아내는 탁월한 만평이라 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예측들은 안철수에 대한 가장 흔하고 효과적인 정치권의 비판인 “정치경험 없고, 정책역량 부실하다”에는 심하게 배치되는 것들이다. 어찌됐든 정치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안철수에게 정치경험이 없는 것이 분명하고, 막 국가비전에 대한 총론을 밝히는 수준인 <안철수의 생각>이 각론의 차원에서 부실한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안철수의 정치적·정책적 역량에 대해 기성 정치권이 질문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안철수가 그것들에 대해 별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공학적으로야 ‘공개된 것이 없어 질문을 받지 않는 상황’이 유리할 수 있지만, 이는 검증의 차원으로 보자면 자꾸 검증을 미루는 상황이다. 그리고 안철수가 검증을 미루는 문제에 대해선 정파를 떠나 많은 이들이 그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역으로 기성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은 안철수가 입장을 밝혀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대중에게 그들의 언어로 구체적인 설명을 해준 바가 없다.

비유하자면 안철수가 숙제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정치권과 언론이 “네가 내지 않은 숙제가 이거저거그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안철수가 정치권에 입문하기 부족한 사람이란 점을 충분히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이 안철수의 총론에 부족한 각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면서 “너는 아직까지 숙제를 하지 못했어! 그러니 수업에 들어올 수 없어!”라고만 닦달한다면, 어쩌면 이는 그들 역시 직업적 정치인이며 정당 소속이라는 핑계로 마땅히 해야할 숙제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추기 위한 텃세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정치권은 ‘기성정치인’의 실력을 보여줘야할 그 부분에서 안철수의 약점을 구체적으로 물고 늘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나오는 것이 김종인의 말처럼 “CEO 출신은 국가를 운영하면 안 된다”는 종류의 비판인데 이는 너무 추상적이다. 조선일보 류근일 주간은 오늘자 조선일보에 <안철수의 생각>에 나름의 문제제기를 하는 칼럼을 썼지만 이 또한 정책역량 검증이라기 보다는 조선일보 특유의 ‘이념 검증’에 그치고 있다.

▲ 31일자 조선일보 34면 류근일 칼럼.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비판적 리뷰이지만 조선일보식 낡은 이념 대립구도의 적용이 아쉽다.

안철수에 대한 비판의 양상이 이렇게 밖에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를 경계하는 진영들이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식 역시 정책검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 기자는 “사실 박근혜 측의 정책만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안철수의 모호한 언급보다는 훨씬 탄탄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책은 탄탄할지는 몰라도 대중들에게 내건 슬로건과는 지향이 다르다 볼 수 있다. 즉 박근혜가 안철수를 정책적으로 공략하다가는 ‘경제민주화’라는 과도한 구호 속에 감춰진 그 경제정책의 문제점들이 외려 드러날 수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성인군자가 아님을 밝혀내겠다는 둥, 거짓이 있다는 둥 박근혜 측이 안철수의 이미지를 발가벗기려는 시도밖에 할 수 없는 정황이 이해가 간다. 물론 안철수에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결함이 있어 이 전략이 성공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상황은 안철수를 ‘정치초짜’로 비판하는 ‘정치OB'들 역시 그 ’정치초자‘와 구별되는 정책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하면서 이미지 정치에 매달리는 실정을 드러낸다고 이해될 수 있다.

다른 기자는 “안철수에 긴장한 여권만 아니라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야권 후보들 역시 손학규 정도 제외하고는 아직 제대로 된 정책의 상이 없는데, 물어보면 ‘안철수와는 달리 우리는 정당이 있으니 (나중에 정당이 만들 거라서) 괜찮다’라 반응한다. 근데 안철수가 끝까지 무소속으로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면 민주당이나 야권의 정책역량을 안철수는 활용하지 못하고 문재인이나 김두관은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미심쩍은 건 마찬가지다”라고 평했다.

대선을 다섯 달도 남겨두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출마의사를 표시하지도 않은 비정치인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실정 뒤에는, 이처럼 남의 나라 얘기로 듣는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정이 있다. 안철수가 한국 정치를 우습게 본다는 비판은 당연히 가능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의 한국 정치가 우습게 보일만한 꼬락서니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검증을 담당하며 그 수준을 평가해야 할 언론의 자성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안철수의 생각>이 일분에 수십 권이 팔린다는 호들갑만 보일 뿐, 그의 출사표를 의도했던 바대로 통치의 측면에서 꼼꼼하게 뒤집어본 언론이 없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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