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깔세, 1일 20만원, 모든 것 완비’

여수엑스포 주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보전단의 선전 문구다. 압도적 스케일의 국제행사장을 포위한 가장 지역적인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새 아파트를 ‘깔세’로 내놓는다는 것도 생소한데, 그 금액이 무려 1일에 20만원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다. 그리고 어떻게 원룸도 아닌 아파트가 모든 것을 완비하고 입주자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어쩌면 한철 대목을 겨냥한 이러한 ‘디테일’이야말로 지극히 한국적 풍경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생소하고 놀라운 의문은 그러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엑스포 주변 한 횟집 사장님이 시원하게 해결해줬다. “지금, 여수에 그런 방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옆집만 해도 집 비워서 세주고 친척집으로 나갔어요. 하루에 20만원씩 받는다고 합디다.” 사장님은 내심 집을 비워 세를 주지 않은 걸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서울에서 왔단 말에 푸짐하게 회를 싸주며 이렇게 덧붙였다. “원래는 10시까지 장사하다가, 엑스포 시작하고 나서는 폐장하고 오는 손님들 때문에 밤 12시 다 되어서 들어가, 잠깐 잠만 자고 나오는데 나도 집이나 내주고 돈이나 벌걸 그랬어요.” 사장님의 푸념에는 대목에 무얼 팔아야 하는지 미리 대비를 해놓지 못했다는 자책이 묻어 있었다.

▲ 언론이 관심을 갖는 여수엑스포의 모습은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룬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 장사진들을 맞이하는 이들의 '노동권'이나 행사 기간 중 '생활'에 대해선 전혀 무관심하다. ⓒ연합뉴스

여수는 웬만해선 주목받기 힘든 서울에서 멀리 있는 바닷가 도시다. 이런 도시가 엑스포를 유치하며 지금 거리엔 사람이 넘치고, 돈이 술술 흘러 다닌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1일 20만원을 주고도 방을 구할 수 없을 상황이라면, 단순히 대목이란 말로 설명이 부족한 지경임이 분명하다. 실제, 여수엑스포에 입주한 A사는 엑스포 기간 중에 한 달에 1080만원의 월세를 지출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 기준으로 30평대 신축 빌라와 아파트를 각각 640만원과 440만원에 빌려, 직원들의 숙소로 쓰고 있다. 엑스포 기간이 3개월이니, 3,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선지불했다고 한다.

하지만 A사의 직원은 “이 가격도 감지덕지”라고 했다. “엑스포를 겨냥해 지은 신축 아파트는 더 비쌌고, 엑스포장 도보 5분여 거리는 아예 방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시기에 워낙에 방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보니, 주인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아파트의 경우 아예 업체들이 틀어쥐고 있었다”며 방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사는 과연 여수에서 얼마를 벌고 있기에 월세를 천만 원 넘게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A사는 여수엑스포 국제관에 입주해있는 외국계 레스토랑이다. 이 업체의 매출은 그야말로 ‘억 소리’나는 수준이다. 이 업체는 주중 하루 매출 평균이 1,000만원에 이르고, 주말 매출은 이마저도 훌쩍 뛰어넘는다. 엑스포 후반 단체 관람객이 몰리며 매일 매출 기록이 갱신되고 있는 중이다. 워낙에 장사가 잘 되다보니 얼마 전부터는 본사 사장이 서울에서 내려와 상주하며 직접 매장을 챙기고 있다.

이 매장의 하루는 시쳇말로 불난 호떡집의 전형이다. 오전 11시가 넘어서면서 늘어서기 시작한 대기 손님줄은 오후 3~4시까지 이어졌고, 저녁 시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매장이 돌아갔다. 하루 평균 매출을 1000만원이라고 계산할 때, 엑스포 기간 중(5.12~8.12)에만 10억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이 매장에는 총 1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10평 조금 넘는 매장에서 하루 1,000만원을 판다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기 때문이다. 이 업체의 주방에서 8명이 일하는데 이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평균 임금은 150만원 정도 라고 한다. 홀에서 일하는 직원은 처음엔 3명이었다가, 하도 장사가 잘 되는 통에 2명을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로 채용했다. 이들의 임금은 모두 130만원에서 많아도 2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출근은 오전 9시 30분까지이고, 퇴근은 엑스포가 폐장하는 10시가 넘어서 이뤄진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근무한다. 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엑스포 개장 이후 딱 하루 쉬었다”고 말했다. 초과 근무와 야간 근무 그리고 휴일 수당에 대해 묻자 “그런 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사가 잘 되니 인센티브라도 받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는 “인센티브는 고사하고 하루만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 그저 어서 빨리 행사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여수엑스포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같은 처지다. 일용직 혹은 단기 계약직이 주를 이루고 일부는 서울 등 타지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다. 여수에서 고용된 인력은 거의 대부분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들뿐이다. 그래도 이들은 애초 국제행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설렘으로 여수에 왔지만, 살인적 강도의 노동에 하나 같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했다. 워낙에 사람이 몰리다보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갖가지 부당한 경우를 당하고 있고, 행사의 스펙터클에 취한 언론과 조직위는 이들의 노동 행태를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애당초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엑스포 행사장의 인프라가 부실하단 방증일 것이다. 언론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는 것만 스케치할 뿐, 그 실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엑스포의 한 입주업체 직원은 “사람이 이렇게 몰리는데, 식당과 숙소가 이렇게 밖에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하루하루 행사를 치르는 것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엑스포에서 일하는 이들은 행사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사람들이다. 많은 지자체들이 무수한 국제행사를 개최했지만 이 공과가 전혀 지역의 몫으로 남지 않는 악순환은 여수 엑스포에서도 여지없이 재현되고 있었다. 물론 악순환의 또 다른 희생양이라고 할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는 전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직위원회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기자들은 엑스포의 속살을 취재하는 데 둔감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엑스포가 끝나면 ‘깔세’로 깔렸던 새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지역 아파트들의 미분양 사태는 이제 바닷가 도시 여수의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그때에도 하룻밤 20만원의 숙박비를 거뜬히 받던 낡은 모텔들은 불나방처럼 또 다른 행사 유치를 요구하고 나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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