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단 입장- 멀리서 바라 본 주 경기장내 선수단 모습 / 1988. 9. 17.ⓒ연합뉴스

1988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한국시각), 전 세계의 시선은 잠실 주경기장 100m 트랙으로 쏠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자리를 놓고 미국의 칼 루이스와 캐나다의 벤 존슨의 세기의 맞대결이 펼쳐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88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 잠실 주경기장은 8만 명의 관중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영부인 김옥숙 여사도 세기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현장을 직접 찾았다. 출발의 총소리가 울리기 직전 잠실 주경기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토요일 12시에 수업을 마치고 혹시라도 세기의 대결을 놓칠까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 필자도 숨을 죽이고 가족들과 함께 텔레비젼 중계방송에 집중하였다.

한국어로 '제자리엣', '차렷'의 준비자세 구령이 끝나고 '탕'하는 총성과 함께 잠실 주경기장은 8만 관중들의 함성소리로 뒤덮였다. 6번 레인의 벤 존슨이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3번 레인의 칼 루이스, 바로 옆 레인의 영국의 린포드 크리스티 등이 뒤를 이었다. 한번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한 벤 존슨은 좀처럼 뒤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오히려 레이스 종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경이로운 레이스를 펼쳤다. 골인지점을 5m 정도 남기고 승리를 확신한 벤 존슨은 3레인의 칼 루이스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승리를 확신한 듯 한손을 불끈 들어 올리면서 들어오게 된다.

"9초 79!" 중계를 진행하던 아나운서의 외마디 함성과 화면에 표시된 숫자 9.79를 보면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 마의 벽으로 여겨지던 9초 8의 벽이 깨지게 된 것이다. 박빙의 레이스를 예상했고, 그래도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칼 루이스가 우세하지 않나라는 예상이 더 많았는데, 벤 존슨은 모든 예상을 깨는 압도적인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다. 올림픽을 앞두고 김포공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오만한 자세로 일관하여 빈축을 샀던 칼 루이스는 예상치 못한 완패에 할 말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세기의 탄환대결은 불과 10초 이내에 모든 상황이 깨끗이 종료되었고, 벤 존슨이 9초 8의 벽을 깨뜨리면서 육상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권불십년도 아니고 벤 존슨 천하는 불과 3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약물 도핑검사 결과 벤 존슨에게서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3일전 벤 존슨의 세계 신기록 수립현장을 목격했던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 올림픽 개막이래 최대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벤 존슨이 복용한 것으로 판명된 약물은 근육강화가 주 목적이며, 레이스 후반부에 근육이 이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거라고 추정되었다. 9월 24일 100m 결승에서도 벤 존슨은 초반의 속력을 레이스 마지막까지 거의 똑같은 상태로 유지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벤 존슨은 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 3개월 동안 부상을 이유로 각종 국제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각종 의혹을 키운 바 있다. 88 올림픽 100m 예선 및 준결승에서도 저조한 기록으로 한때 탈락위기에 몰렸었던 그는 결승에서 신기의 레이스를 펼치면서 결국 예선에서 힘을 아낀 것임이 판명되었는데, 한편으론 약물의 힘을 등에 업은 결과였음이 드러나면서 충격파는 상당하였다. 결국 벤 존슨은 도망치듯 서울을 빠져나갔고, 그의 금메달은 자동 박탈되었다. 2위로 골인한 칼 루이스가 금메달을 이어받게 되면서 칼 루이스는 84년 LA 올림픽에 이어 남자 육상 100m 2연패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벤 존슨은 더 이상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쓸쓸히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지금은 우사인 볼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결승에서 9초 58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하면서 남자육상 기록의 패러다임을 갈아치웠다. 24년전 벤 존슨이 9초 8을 넘어섰을 때만해도 모두들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당시만 해도 100m 9초 8의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제 볼트로 인해 남자육상 100m는 9초 4대까지도 가능하다는 각종 학술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얼떨결에(?) 남자육상 100m 2연패에 성공한 칼 루이스는 자신의 주종목이라 할 수 있는 멀리뛰기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선보인다. 당시 칼 루이스가 멀리뛰기 결승에 참가하던 날,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이 열리고 있는 잠실 주경기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워낙 경기장 규모가 크고 관중석이 상단에 있던 터라 1m90이 넘는 칼 루이스가 개미 만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멀리서도 칼 루이스를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아닌 공중에서 불꽃이 튀도록 교차하는 그의 다리들이다. 칼 루이스는 공중에서 다리를 힘차게 교차시키면서 자신의 거리를 계속 늘려 나갔다. 최종 8m 72를 기록한 칼 루이스는 2위를 차지한 미국의 마이클 포웰이 기록한 8m 49보다 무려 0.23m 나 앞서가는 여유있는 기록으로 LA 올림픽에 이어 대회 2연패를 성공하게 된다.

약물로 얼룩진 세기의 인간탄환 대결은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해프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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