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와 홍철의 시시한 대결은 통곡의 벽으로 끝났다. 그들은 나름 감격스러웠겠지만 미안하게도 보는 사람은 그 눈물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어쨌든 동전줍기가 이토록 비장하고 처절할 수 있는 것도 무한도전이라 가능한 일이다. 아니 공중파 전파가 전혀 아깝지 않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것부터가 무한도전만이 가능한 일이다. 세상 누가 동전줍기나 캔따기로 방송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주에는 그저 24주 만의 방송이라는 점에 감격해서 미처 몰랐지만 이번 주에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무도의 품격인 무도만의 자막 센스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과거 1박2일의 나영석 PD만큼 직접 화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의 존재감은 언제나 자막으로 대신해서 늘 제 7의 멤버로 활약해왔다.

돌아온 무한도전의 자막은 무엇보다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패러디에 강점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자막의 희생양(?)이 된 것은 박명수였다. 6라운드 대결부터 객석에서 무대로 자리를 옮긴 시청자들과 인터뷰에 나선 박명수는 상황과 맞지 않는 엉뚱한 질문을 여성 시청자에게 던졌다. 카메라 앞에 선 시청자는 당황했는지 마찬가지로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결국 인터뷰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고, 민망해진 박명수를 카메라가 잡으며 자막은 큼지막하게 ‘나는 MC다?’라는 의문표를 넣어 최근 나는 가수다에서 일고 있는 박명수의 MC자질에 대한 패러디를 내보냈다. 묘하게 박명수를 디스하는 것 같으면서 잘 생각해보면 박명수 식 진행에 대한 PD의 애정 어린 물타기라 할 수 있다.

또한 하하가 동전줍기 후에 탈진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눈가에 다크서클을 CG로 넣으면 ‘다크서클 라이즈’라는 자막을 넣어 최근 개봉한 영화를 패러디해 웃음을 주었다. 일단 묵직한 웃음이 터질 만한 자막들을 소개했지만 군데군데 소소하게 감각 넘치는 자막들로 화면을 옹골차게 채워주었다. 역시나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았던 이나영 특집은 아쉽게도 다음 주로 다시 밀려났다. 다분히 낚시성 예고가 조금은 괘씸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나영 특집의 에필로그는 보여줬으니 뭐라 하기도 좀 애매하다. 게다가 이나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최고의 자막이 터졌기 때문에라도 괘씸한 마음을 포기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나영 특집에 이나영만 온 것이 아니었다. 데프콘과 게리 그리고 조권과 이태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이나영만 기다렸던 멤버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사게 했다. 어쨌든 게스트들마저 이나영의 등장만 애가 타게 기다렸고, 마침내 이나영이 스튜디오에 등장하자 달려가던 유재석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였다. 그 모습이 신호라도 되는 양 남자들은 우르르 이나영에게 몰려갔고, 그 모습을 본 PD는 기가 막힌 자막을 넣었다.

‘방송국 국격에 안 맞게...’라는 궁서체의 자막을 넣었다. 여기서 핵심은 말줄임표다. 느낌표가 들어갔다면 풍자도 뭐도 아닌 것이겠지만 말줄임표가 들어감으로 해서 이 자막에 비밀이 있음을 암시했다. 비록 6개월의 최장기 파업을 잠정적으로 그치기는 했지만 MBC는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김태호 PD가 말한 ‘방송국 국격’은 어디까지나 반어법적 자조가 섞인 토로였다.

그런데 그 자막은 마치 예언자처럼 망신살 뻗친 MBC의 토요일을 정확히 미리 풍자했다. 올림픽 중계 첫날부터 배수정 논란과 폴 매카트니 노래 편집 문제로 이만저만 망신이 아니었다. 거기다 박태환에 대한 무리한 인터뷰로 망신을 넘어 망조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 무한도전의 '방송국 국격에 안 맞게...'라는 자막은 얼마나 시의적절한가. 무한도전은 확실히 돌아왔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자기 식구 그리고 아직 바로잡지 못한 자기 방송국부터 풍자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러니 무한도전에 어찌 미치지 않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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