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범죄의 재구성' 전국관객 2,129,358명 동원, 2006년 '타짜' 6,847,777명 동원, 2009년 '전우치' 6,136,928명 동원. 단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감독의 이름값을 웬만한 특급배우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 브랜드로 키운 감독. 현재 활동하는 한국 영화감독들 중 가장 재미있고 맛깔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 바로 최동훈 감독이다.

2004년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전국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범상치 않은 내공을 과시한 그는 2006년 허영만의 원작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타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추석 시즌에는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잘된다는 통념을 깨고, 질펀한 느와르 색채가 풍기는 '타짜'로 추석 극장가를 석권하였다. 2009년 '전우치'는 당시 전 세계 극장가를 석권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 과감하게 맞불 개봉전략을 택하면서 '아바타'와 더불어 쌍끌이로 극장가를 석권하였다.

맛깔나는 이야기와 연출을 버무릴 줄 아는 최동훈 감독이 이번에는 판을 더 키웠다. 홍콩 배우들을 대거 동원하고 홍콩, 마카오, 부산을 넘나들며 도둑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도둑들'이란 영화다. 개봉 전부터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라는 기대감을 키웠는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올스타 캐스팅 진용에 오달수, 김해숙 등 연기력이 탄탄한 조연진들 그리고 임달화, 이심결, 증국상 등 홍콩 배우들까지 가세하여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최동훈 감독의 주특기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이다. 2004년 '범죄의 재구성'에서 염정아를 섹시한 매력이 넘치는 팜므 파탈로 변신시키면서 그녀의 스펙트럼을 넓혀 주었고, 2006년 '타짜'에서는 정 마담 김혜수의 카리스마를 재구성해주었고, 그 유명한 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반면 2009년 '전우치'에서는 여주인공 임수정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대신에 '전우치'로 등장한 강동원의 개구쟁이 같은 천방지축 매력이 스크린을 장악하였다.

이번 '도둑들'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예니콜' 역을 맡은 전지현이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극장가를 석권한 이후 오랜 기간 침체기를 걸으면서 점점 대중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그녀는 '도둑들'에서 모처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 특유의 섹시함은 여전히 살아있고, 능청맞은 대사, 표정연기 등은 기존 전지현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준다. 여기에 걸쭉한 입담까지 가미되어 극 중 오달수 못지않은 재미를 유감없이 제공한다. 영화 초반부에 고가의 골동품을 터는 장면은 마치 영화 '인트랩먼트'에서 매력적인 도둑으로 등장한 캐서린 지타 존스를 연상케 하는데, 훨씬 더 매력적이다.

초고가 다이아몬드인 '태양의 눈물'을 훔치고 이를 홍콩 최대의 악랄한 보스인 웨이홍에게 되판다는 계획을 마카오 박(김윤석)이 제안하면서 한국의 도둑들 뽀빠이(이정재), 펩시(김혜수), 예니콜(전지현), 잠파노(김수현), 씹던껌(김해숙) 일행과 홍콩의 도둑들 첸(임달화), 한국인 앤드류(오달수), 졸리(이심결), 조니(증국상)이 한데 모여 '태양의 눈물'이 있는 마카오 카지노를 향해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최동훈 감독은 배우들의 특성에 맞게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물 흐르듯이 전개되면서 마카오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탕으로 극중 예니콜(전지현)이 빌딩 줄타기를 하는 장면을 담은 씬은 여느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과 영상미를 자랑한다. 배신과 배신이 연속되면서 도둑들의 최초 계획은 일그러지고 '태양의 눈물'을 둘러싼 마지막 한판승부가 부산에서 펼쳐지게 된다.

전반적인 액션장면은 80년대 후반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연상케 한다. 8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 주역 중의 한 명이었던 임달화의 총격 액션씬도 모처럼 예전 향수를 떠올리게 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임달화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부산 시내 건물에서 펼쳐지는 웨이홍 일당과 마카오박의 줄타기 액션씬이다. 홍콩 느와르 액션에 80년대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성룡의 아크로바틱 액션형태가 한데 어우러져 손에 땀을 쥐는 스릴감을 선사한다. 보기만 해도 느와르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 건물을 헌팅한 제작진의 치밀함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최동훈 감독 전작들의 장점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고스란히 반영된 느낌이다. '범죄의 재구성'의 트릭반전, '타짜'의 스릴 넘치는 느와르, '전우치'의 자유분방한 유머코드와 화려한 액션 등이 '도둑들'에 고루 조합되어 있다.

'스팅', '오션스 일레븐' 등과 같은 헐리웃 영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재미를 제공한 영화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혹자들은 내용이 스케일에 묻혀서 허술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들 중에서 스토리와 스케일 두 가지 토끼를 잡은 영화는 '도둑들' 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동훈 감독에 거는 기대치만큼 높은 기대치를 걸 수 있는 흥행감독이 과연 국내에 몇이나 있을까? 영화를 보고나면 ‘역시 최동훈’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리고 덤으로 '전지현의 재구성'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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