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훈토론에 참여한 박근혜의 모습 ⓒ연합뉴스


슬프게도 공휴일은 아니지만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제헌절이다. 제헌절 전날 5.16 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옹호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실 박근혜의 발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부정하는 수준이라 길게 비판할 필요도 없다. 새누리당 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의 발언을 인용하면 충분하다.

박근혜 발언이 헌법정신에 반하는 이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SBS 라디오에 나와 "대통령을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선거"이며 "아무리 불가피해도 탱크를 갖고 한강을 넘어 정부를 접수하는 것을 우리는 쿠데타라고한다"고 정리했다. 김지사는 이어 "5.16으로 등장한 박정희 당시 장군은 나중에 민주적인 여러 절차를 거치려는 노력도 했지만 유신도 했다"면서 "이후 산업혁명의 성공 때문에 5.16 자체를 잘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은 MBC라디오에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지만 역사에서 이건 왕위찬탈"이라며 "쿠데타는 쿠데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의 어떤 평가가 성과가 좋다고 해서 바뀔 순 없다"며 "역사에서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 이후에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스의 전화통화에서 연세대 법대 김종철 교수는 “정치적 의견이나 역사적 평가는 개별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헌법상 헌법수호 의무를 가진 국가원수가 되기를 바라는 대통령 후보로서, 국가 헌정질서를 부인했던 사건에 대해 최선의 일이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관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박근혜 발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런 발언이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나올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비평과 발언의 의도, 그리고 발언의 효과가 될 것이다. 이석기와 김재연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으로 규탄하는 이 시국에도 군사쿠데타에 대한 찬미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의 발언이 용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발언의 의도는 무엇이고 효과는 어떻게 나올까?

먼저 ‘종북주의자의 원내입성’을 우려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박근혜의 발언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순일 것이다. 김종철 교수는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하고 있고 이에 어긋나는 활동에 대해서는 헌법적 보호를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종북이란 것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어렵지만 민주적 질서를 부인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나, 쿠데타를 찬양하는 경우나, 둘 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헌법정신에는 반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석기와 김재연의 발언들은 뚜렷하지 않은 반면 박근혜의 발언은 뚜렷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박근혜일 것이다.

박근혜는 '5.16 발언'을 의도했다?

그러나 당위의 차원에서야 어떻든 한국 사회에서 박근혜의 발언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점은 박근혜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발언은 의도된 것일까, 아닐까. 이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는 “치밀하게 의도된 발언이다”라고 주장했고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의도가 없는 발언이다”라고 말했다.

이택광은 “그냥 조소하기에 앞서 관훈토론의 워딩을 자세히 봐야 한다.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판단하는 주체가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라는 것이다. 5.16 자체를 어떤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나쁜 것이지만 피할 수 없었던 것, 이란 발언 역시 역사적 접근이다.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말인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박근혜는 고유지지층과 중도층 사이에서 교묘하게 물타기를 한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5.16이 불가피했단 발언 이후에는 그렇지만 유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에겐 사과드린다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 발언이 나온다. 나머지 발언들은 왜 야당은 박근혜 때리기 밖에 안 하느냐는 지적이다. 야권의 공격포인트를 무너뜨리는 전략이다. 관훈토론 전체를 보면 야권의 박근혜 비판이 부당한 공격이란 생각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민하는 “의도도 없고 노린 효과도 없다. 그냥 이 부분이 박근혜가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인 거다. 아무리 필요한 게 있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있는 부분. 문재인 후보에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라고 하면 수긍하겠는가?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앞으로도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물어볼 것이기 때문에, 그냥 치고 나간 상황이라 생각된다. 살펴보면 최근에 다소 자제하긴 했지만 지난 세월 동안 박근혜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해설했다.

강한 남자, 엘렉트라엔 먹히지 않는다.

박근혜 발언이 의도적이라 본 이택광은 그 의도가 노린 효과가 문재인 캠프의 전략을 상쇄시키는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문재인이 ‘강한 남자’임을 어필하고 있는데 박근혜에게도 ‘강한 남자’가 있다. 바로 자기 아버지다. 그걸 평소에 강조하지는 않지만 한번 언급하면서 문재인의 전략을 무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의 발언을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 아버지를 두 개로 쪼갠다. ‘좋은 박정희’와 ‘나쁜 박정희’를 쪼개고 그에 대해 가치판단을 한다. ‘강한 남자’는 이미지인데 박근혜가 소유한 남성은 가치로 분열되어 있다. 그런데 정치영역에서 가치와 이미지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이미지라 대답하기 쉽지만, 사실은 가치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가치를 얘기하는 쪽이 내용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택광은 문재인의 전략이 겨냥하는 바와 그것이 박근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캠프의 ‘남자’ 운운은 진보냐 보수냐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정치공학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수사다. 대구경북 지역에 박근혜가 여자이기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는 층이 분명히 있다. 보수층이지만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그런 핑계를 댈 거다. 문재인 측이 ‘강한 남자’를 보여주면서 포섭하려는 측이 이들 아니겠는가. 어쩌면 ‘나꼼수’의 전략과 비슷한 거다. 그런데 이게 적절한 대응인지는 의문이다. 야권은 지금까지 ‘부드러운 리더십’을 말해왔는데 그것을 탈피하는 전략이 아닌가. 사실 박근혜는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엘렉트라와 같은 비련의 여주인공을 치장한다. 그런 여성 앞에서 자신이 강한 남성임을 어필해봤자 그녀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진보적인 후보가 오히려 남성성을 강조하는 이 역설의 전략이 실패할 경우 수도권 여성층을 박근혜에게 그대로 넘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위를 만들기 위해 현실을 바꿔야 하는 역설

김민하 역시 박근혜 발언의 효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을 했다. 그는 “박근혜는 굉장히 편한 입장이다. 박정희가 그녀의 아버지임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유권자들이 자신에게서 이탈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심을 한 번만 잡으면 그 다음에는 당 색깔을 빨간 색으로 바꾸든 경제민주화를 말하든 복지를 말하든 고정지지층을 획득할 수 있다. 고정지지층을 쉽게 가지고 중도층을 파고들 수 있으니 편리하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 오늘 대구를 방문한 후 팬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박근혜의 모습. '박정희의 딸'은 붉은 옷을 입고 세 배 빠르게 이동해도 색깔론에서 면제받는다. ⓒ연합뉴스

헌법을 무시하는 유력 대권주자의 행보가 그에게 해가 되기는커녕 플러스 효과를 줄 수 있는 현실이 슬프다. 모두들 헌법에 반하는 태도의 표명이 정치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세상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저 반헌법적 제스추어로 플러스 효과를 거두는 후보가 이기는 것을 막는 것이라는 역설적 현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