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에 앞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관람하고 순국선열추념탑을 참배한 뒤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만이 미래가 있다'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미디어스
1. 출발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대권 판세 전체를 압도할 스케일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민주통합당 대권 레이스의 ‘대세’가 자신에게 있음은 충분히 보여줬다.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거의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강원에서 왔다는 한 지지자는 “다시,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바람’은 모든 야권 대선 후보의 숙원이다. 김두관의 바람이 아직 영남권에 머물고, 손학규의 바람이 불확실하다면 문재인의 바람은 확실히 그 보다는 세고 넓어 보였다.

물론, 전국에서 모여들긴 했지만 ‘문풍지대’ 깃발 아래로 얼마나 확실한 지지층이 모여 있는지는 정확치 않다. 하지만 그의 조직망이 전국적이란 점은 최소한 당 내 경선에 있어서는 타 후보를 압도하는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문재인의 ‘바람’은 새누리당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조직력이 무서운 건, 실제 대통령을 한 번 만들어봤던 ‘바람’이란 경험치 이다. 02년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던 바람이 노무현의 친구에게도 다시 불어줄 것인가는 이번 대선 전체를 관통하는 관전 포인트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뒤를 따르던 어떤 얼굴들이었다. 참여정부 5년의 집권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 될 것이다. 그는 확실한 ‘친노’주자이지만, 여전히 ‘친노’주자이기도 하다.

▲ 정치인 문재인의 스킨십은 아직 원숙해보이진 않았다. 이 소탈함은 그의 큰 매력이지만 때론 미숙하다 공격당할 것이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미디어스

2. 스킨십

재미난 장면이 연출됐다. 우연과 의도성이 겹쳐져 기자들이 좋아하는 한 컷의 사진이 만들어졌다. 출마 선언을 위해 이동하는 길에서 문 의원은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공원에 나들이 온 지지자와 그녀의 아이였다. 기자들의 셔터가 한류스타의 레드카펫 행렬 때처럼 작렬됐다.문 후보의 표정은 참 밝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어색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를 한 번 안아 주세요”라는 주문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문 후보는 아이를 안지 않았다. 어색해서였을까, 문 후보는 덥다며 넥타이를 풀었다. 보좌관은 “넥타이를 풀면 한 3도쯤 체감 기온이 내려갑니다”고 말했다.

만약, 노무현 후보라면 어땠을까? 아니, 최소한 손학규 후보라면 어땠을까? 더 적극적인 스킨십, 인상적인 농담을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넥타이 색깔도 주요한 이미지 전략, 메시지의 자산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디테일까지는 고려되지 않은 것일까? 물론 잠시 후, 문 후보는 다시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3. 기획과 조직

문 후보의 출마 선언은 동선이 다소 복잡했다. 후보가 이동할 때마다, 수백의 지지자들이 그를 따라 함께 이동했다. 이 동선에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공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던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전반적으로 좀 산만했다. 주최 측 추산, 천 명이 함께하기엔 출마 선언의 장소도 좀 좁았다.

후보의 뒤를 따르는 열성적 지지자들의 모습은 다소 이중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 집단에 존재감이 이입될 수 있다면 흥미롭고 감동적인 체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함께 하기에 좀 진입장벽이 있던 그래서 어떤 이들은 멀찍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식이기도 했다. 열린 선언문을 준비하고, 트인 공간에서 행사를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인지 다소 닫혀있단 인상도 받았다.

문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한 번도 노무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에서 역시 친노와 비노의 구도로 읽히는 대선 레이스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확실히 언젠가 본 듯한, 누군가의 형식인 것만 같은 어떤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같았다. 친노는 3김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 브랜드이지만 강한만큼 닫힌 정치 언어이자 정치적 형식이란 점 또한 분명하다. 문 후보의 부담은 결국 이것이다. 문 후보의 모습에선 여전히 노무현이 읽힌다. 그는 아직 노무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 문 후보의 지지세는 탄탄해보였다. 하지만 이 조직세는 이미 10년 전에 구축된 통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무현의 최대치 구현이 문재인의 목표가 될 순 없다. 그는 노무현을 넘어설 수 있을까?

4. 열정과 냉정

열기는 인상적이었다. 문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불비불명(不飛不鳴)'을 말했다. “남쪽 언덕 나뭇가지에 앉아,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지만 한번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한번 울면 천지를 뒤흔드는 새"에 자신을 비유했다. ”국가비전 역시 국민의 마음 속에 있다"는 그의 말은 사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왠지 믿음이 가고 두텁게 들렸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자니, 그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원론적일수도 있는 그의 메시지에 힘을 불어넣는단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게 들리진 않을 것이다. 사실, 문 후보의 출마 메시지는 좀 실망스러웠다. 문 후보는 ‘4대 성장 전략’(△분배와 재분배를 강화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포용적 성장,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 실현,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생태적 성장, △인터넷와 SNS 등 소통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력적 성장)을 내놓았는데, 기존의 성장 담론에 약간의 색깔을 입히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고집 역시 경직되어 보였다. 많은 이들이 참여정부의 실패는 총론이 아닌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불안한 것은 그도 오늘 디테일을 보여주지 않았단 점이다.

▲ 토목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시대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를 거꾸로 메달았다. 이 전반적인 과정은 '불통'으로 점철됐다. 문재인은 이걸 다시 뒤집을 수 있을까? 그의 도전이 시작됐다. ⓒ미디어스

5.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

대신, 그의 연설은 많은 시간 기존의 ‘반MB’ 전선이 함유하고 있던 문제의식들을 강조하는데 쓰였다. ‘공평’, ‘정의’, ‘원칙’과 같은 ‘반MB’적 어휘들이 자주 등장했다. 확실히 문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공평할 것 같다. 정의로울 것 같다. 원칙적일 것 같다. 그럼 될까, 그것만으로 그가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이명박과 싸우는 게 아닌데도.

출마 선언을 계기로, 15~20% 사이에서 정체되어 있는 그의 지지율이 주목할 만한 확장성을 보여준다면 그는 민주당 경선에서 확실한 ‘1강’의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대권 레이스에서 그가 가장 앞서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많은 한계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조건에 놓여있다. 어떤 이들은 그의 ‘권력의지’가 여전히 대권을 쟁취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그가 ‘노무현의 듬직한 친구라는 것 외에 무엇을 보여줬느냐’고도 말한다. 총선 실패도 그에게 부담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불의한 시대가 자신을 불러냈다”는 소명의식으로 답하고 있다. 정답이겠지만, 인상적이진 못하다.

그는 출마선언을 통해 ‘역사의식’, ‘민주주의’, ‘공평함과 정의로움’등의 가치에 있어 현재까지 대선에 뛰고 있는 모두를 비교 대상으로 하더라도 강점과 우위를 보여줬다. 문재인의 바람은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그의 강점과 비교우위가 과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을까? 노무현의 시대를 뒤집었던 이명박의 시대를 과연, 그가 다시 뒤집을 수 있을까? 당신이 바라는 것은 이명박 시대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인가? 문 후보는 그 모든 질문 앞에 이제 막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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