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 사회의 종북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정몽준·김문수 등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이 북한에서 했던 발언들을 공개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 화제가 되었다. 논조는 다소 달랐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진영을 넘어 북한 논평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 오늘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사설과 4면 기사를 통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 자신의 체급을 올리려 했던 정치권의 관행이 이러한 사태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할 수 있는 지적이나 교류협력 과정에서 외교적인 덕담이 나올 수 있다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중앙일보의 경우 북한 선거개입을 비판하면서 종북 논란의 한계를 긋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종북’ 정치인들을 둘러싼 논란이 아무리 심각해도 실정법을 위반한 증거가 없다면 그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존중된다. 바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북한 당국자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누구라도 사소한 체제 비판 행위조차 걸핏하면 공개총살로 처벌하는 곳에서 말이다.”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역시 사설에서 북의 이념논쟁 개입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고 한겨레의 경우 1면과 6면 기사에서 새누리당이 종북 논란에서 한발을 빼는 정황을 보여주었다.

▲ 오늘자 한겨레 6면

새누리당 정치인 개개인을 지목하는 북한의 폭로 공세는 어떤 의도이며, 무슨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새누리당이 종북 논란에서 한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는 데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북한학 박사 출신의 전문기자인 SBS 안정식 기자는 북한의 의도와 남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이의 간극을 지적한다. 그는 “그간에도 북한은 새누리당, 과거엔 한나라당에 대해 비난 논평을 많이 했고,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도 종북이 아니라 종미가 문제다는 식의 논평을 했다. 나름대로 남한 정치에 대한 개입은 계속 해왔던 것”이라 지적한 후, “하지만 새누리당 대선 주자를 직접 거명하며 발언을 까겠다고 협박한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한 정치, 그러니까 대선 정국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개입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북한 당국의 의도와는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그는 “북한 입장에선 새누리당을 도와주고 싶진 않을 텐데, 이런 문제제기가 야당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진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자신의 시각에서 남한 정치를 파악하고, 그 시각에서 정세를 분석한 후 논평으로 남한 정세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남한 사회는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기엔 너무나 북한과 다르고, 복잡하다”면서 “다른 이슈는 나오지 않고 연말까지 종북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새누리당에 유리한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결국 새누리당이 종북 논란 관련해서 더 할 말이 없었던 상황에서 북한 논평은 또 한 번의 좋은 ‘불쏘시개’나 ‘떡밥’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이 논평을 충실하게 보도한 것도 ‘손익계산’에서 뒤지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안정식 기자는 정교하게 보자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북한 측의 행동에도 헐거운 노림수 정도는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북한의 행동은 남한 사회에 ‘이명박 정부가 남북화해를 가로막고 있고 긴장이 심화된다’는 인식이 심화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긴장 고조 국면을 만들어가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사고’를 친 북한을 탓하겠지만 결국에는 이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를 원망하게 된다. 남한 정부가 강경책을 내세우는데도 조용히 있으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존재를 잊을 것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사태가 호전될 소지가 없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다 보면 사람들이 남북화해 시대를 그리워하게 될 거란 게 그들의 계산일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가만히는 있을 수 없는 북한의 처지가 거듭된 개입을 만들고 그 개입이 야권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김종수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통일전문위원은 북한의 개입이 정치적 의도보다는 자존심 문제와 더 큰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결국 종북논쟁은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와 얽혀 있다”며 “북한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논란의 진원지인 새누리당의 유력 정치인들을 직접 타격하는 방법을 취했다 생각된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종북논쟁에 대한 불만표시이며 그래서 어떤 효과가 날 것인지를 세밀하게 계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의 문제제기가 새누리당에 미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북한 논평을 활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종북 논란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의 폭로가 무서워 발을 뺐다고 보기도 어렵다. 종북 논란만으로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다고 생각된다”라고 분석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대표 경선을 통해 다른 이슈거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새누리당에도 대선후보 경선이 있는데, 종북 논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란 진단이다.

▲ 오늘자 한겨레 사설

물론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종북 논쟁이란 카드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종수 위원은 “그들 입장에서 추정해 본다면 한 템포 쉬어가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다른 이슈를 만들어 내다가 대선 국면에서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는 카드 아니겠는가. 그런 것을 고민하던 찰나에 북한이 도발을 했고 발을 빼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말하자면 시간적인 우연성이 겹친 상황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겉보기에는 북한의 노림수가 먹혀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남한 정치의 역학관계의 반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반응을 보고 북한당국이 자신의 정치력과 영향력을 오판하게 될 경우 야권에 더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분석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일제히 사설에서 북한의 개입을 비판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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