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창을 열었더니, 포털 사이트 메인에 기사 제목이 몇 개 떴다. 눈에 보인 차례대로 읊어 보면 임수정은 "파격 하의 실종"을, 김아중은 "아찔 착시 의상"을, 손담비는 비키니를 입고 "오일 범벅"을 했다고 한다. 김효진은 롱드레스를 입었는데 "가린 다리 사이…"를 상상케 한다고 한다. 그 옆 검색어 순위에는 여전히 "분당선 대변녀"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재미있다. 여자의 다리와 똥으로 26일 포털의 장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이 풍경.” (기사링크)

▲ <프레시안> 주말판에 실린 ''압구정 가슴녀'와 '분당선 대변녀', 공통점은…' 기사. 이 기사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 대한 서평 기사였다.

2012년 4월 27일 금요일, 프레시안 북스 안은별 기자는 위와 같이 시작하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서평을 올린다. 제목 확정은 북스 팀장 강양구 기자의 몫이다. 강양구 기자는 내용을 훑어보더니 근 며칠 간 세간의 화제가 된 ‘분당선 대변녀’를 떠올린다.

하지만 제목을 그것 하나만으로 정하기엔 성에 차지 않았다. ‘분당선 대변녀’와 대구를 이루는 다른 존재가 필요했다. 강양구 기자의 머릿속에 갑자기 압구정 거리를 가득 메운 성형외과 간판들이 떠오른다. ‘압구정 XX녀’라고 적어 본다. 그러나 지극히 구체적인 ‘분당선 대변녀’와 짝을 이루기엔 다소 추상적이다. 몇 개의 구체적인 단어를 적어본다. ‘압구정 성형녀’와 ‘압구정 가슴녀’ 등 몇몇 후보가 떠오른다. 혼자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사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잠깐의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압구정 가슴녀’가 호응이 제일 좋다.

큰 고민하지 않고 <'압구정 가슴녀'와 '분당선 대변녀', 공통점은…>이란 제목을 확정짓는다. 안은별 기자도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 중 누구도 주말 동안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다.

프레시안 기사는 네이버 메인화면에 걸린다. 네이버 메인화면에 걸린 그 제목을 보고 네티즌들은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한다. 검색어 순위가 올라간다. 검색어 순위에 뜬 '압구정 XX녀’라는 조어를 보고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낸 강양구 기자가 ‘진실’을 밝히는 기사 (링크) 를 쓸 때까지 온갖 매체에서 43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네티즌의 검색과 쏟아지는 기사가 밀고 댕기기를 하면서 아무런 실체가 없는 이 인물은 주말 검색어 1위에 등극한다.

▲ 프레시안의 기사 이후 생산된 낚시성 기사들의 리스트, 관련 기사가 총 43개나 쏟아진 가운데 '압구정 가슴녀'는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강양구 기자는 “이런 결과를 결코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지나고 나니 너무 ‘쎈’ 단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은별 기자는 “가슴에 대한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느끼고 놀랐다”고 촌평했다. 주말 내내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며 강양구 기자는 어이가 없어 실소했고 안은별 기자는 이게 무슨 일인가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헤프닝이 까발린 건 두 가지다. 첫째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가 우리의 관심을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트래픽을 낚아채기 위해 쓰여지는 수많은 언론매체 기사에 ‘검증’의 절차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은별 기자는 “검색어가 기사를 만드는 것인지 기사가 검색어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는 지경”이라 평했다. 물론 네이버에 뜬 프레시안 기사 제목을 보고 ‘압구정 가슴녀’가 누군지 궁금해 검색해본 네티즌도 부지기수였을 거다. 하지만 이 어휘에 동한 기자들이 그렇게 기사를 쏟아내지 않았다면, 프레시안 기사의 힘만으로 이 어휘가 검색어 1위에 등극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은별 기자는 “원래 여론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이런 것 같다. 내가 프레시안 북스 기자이다 보니, 문화부 기자라 생각하고 종종 기획사에서 이메일을 보내온다. 사실상 이미 완성된 기사를 자기들이 써서 보낸다. 소속사 연예인 누구가 트위터에 셀카를 올렸는데 그게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사다. 우리 매체가 다루는 영역이 아니라 나는 그냥 지나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포털에 가보면 아까 그 이메일 기사를 Copy & Paste한(긁어다 붙인) 기사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그렇게 기사를 쓰면 포털이 메인에 편집하여 검색어 순위를 올리고 순위가 올라가면 또 기사가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포털 비판자들이 많이들 지적했던 그 문제의식이다. 안은별 기자는 “일본 야후만 봐도 이렇게 메인 편집의 기사 광고가 심하지 않다. 한국은 기형적이다.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양구 기자는 이 검색어로 기사를 만든 수많은 매체와 기자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인터넷에서 담론이 만들어지고 유통이 되는 방식이,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해서 그렇지, 기이하고 이상한 방식인 것”이란 게 드러났다고 설명한다. “직접 ‘압구정 가슴녀’로 기사검색을 해보시라. 그저 지난 며칠 간의 기사가 뜰 뿐이고 마지막 페이지에 뜨는 가장 오래된 기사가 바로 프레시안 기사다. 여기까지만 검색을 해보면 이 상황은 쉽게 짐작이 간다. 네티즌들이야 사실확인을 못한 걸 이해할 수 있다. 검색만 해보고 실체가 없으면 흥미를 잃고 떠나갔을 게다. 그런데 기자 이름 걸고, 매체 이름 걸고 기사를 쓰는 이들이 무엇을 하는 건가. 검색 좀 해본 후에 가장 먼저 기사가 나온 프레시안에 확인하고, 네이버 관계자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 그런데 그것을 안 했다. 중앙일보 정도만이 ‘프레시안 기사 때문인 것 같다’는 네이버 관계자 답변을 보도했다. 언론의 수준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강양구 기자의 기사가 나간 후 ‘압구정 가슴녀’의 실체가 무엇인지 캐물으며 자기 회사 트래픽을 챙기고 네티즌들의 검색을 유도했던 그 언론들은 인터넷 매체의 선정적인 낚시를 비판하는 중이다. 강양구 기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대꾸했다. “적반하장이다. 매일경제나 조선일보는 ‘해명’이란 표현을 써가며 이 상황을 비판했는데, 사실 내 기사는 해명이 아니었다. 정말로 제대로 낚시를 하려면 프레시안은 장막 뒤로 숨어버리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잠깐만 뒤져보면 뻔한 일인데, 며칠 동안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 않았나. 그러면 계속 몰랐을 거란 얘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도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언론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까지 여기다 떠넘기려 해서야 되겠는가. 정말로 웃기는 상황이다.” 이쯤에서 강양구 기자의 조언대로 실제로 검색을 해본 기자는, 정말로 기자들이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혹시 상황을 쉽게 짐작했음에도 트래픽을 낚으려고 그런 기사를 썼던 것은 아닌지가 궁금해졌다. 여러분도 검색해서 확인해 보시라.

▲ 압구정 가슴녀가 소비되는 방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 기사 이후 이른바 '홍대 글레몬녀'라는 이가 자신의 몸매를 뽐냈단 기사가 쏟아진 장면이었다. 이 기사는 전형적으로 소속사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Copy & Paste(긁어다 붙인) 홍보성 기사였는데, 내용은 전혀 상관없었지만 언론은 한결같이 제목을 '압구정 가슴녀'와 연결지었다. 결과적으로 '홍대 글레몬녀'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대로 몸매를 뽐낸 셈이 됐다.

그러나 강양구 기자의 기사는 프레시안 북스나 본인의 딜레마는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을 법도 하다. 내용없는 ‘압구정 가슴녀’ 기사를 양산했던 언론매체가 프레시안보다 더 큰 문제를 보여줬다는데엔 동의하지만,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한 네티즌들보다는 그들을 낚으려 했던 프레시안 북스와 강양구 기자가 더 잘못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가. 기자가 이 부분을 캐묻자 강양구 기자는 그런 부분을 선선히 인정했다.

그는 “당연히 낚시를 한 것이 맞고, 포털 사이트에서 경쟁하기 때문인 것도 맞다. 근데 우리의 경우는 컨텐츠가 있다. 정말 살벌한 제목들과 포털 사이트 화면에서 경쟁하는데, 평범한 제목을 써서 100명이 보는 것보다는, 좋은 컨텐츠를 1천 명이 보도록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도 ‘선’이 필요하다. 감칠맛나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어서 클릭을 유도하려고 고민하는 것이 에디터의 역할이라 보지만, 일정한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선은 나나 프레시안 북스가 독단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년 간 독자들의 지적을 수용하고, 반성해 나가며 ‘선’이 어디인지를 탐구하는 중이다. 제목이 자극적이라는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경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프레시안 북스의 ‘제목 낚시’에 대해 그는 이미 해명 기사 (이 기사는 ‘해명’이 맞을 것 같다)를 쓴 적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링크)

그렇다면 포털 사이트 중심의 뉴스소비 구조에서 일어나는 포털 사이트의 과도한 상업성과, 이에 편승하는 주류언론의 보도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진보언론인 프레시안 더러 네이버에서 기사를 빼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야 프레시안의 조회수와 수익기반 자체가 무너질 테니 말이다. 강양구 기자는 개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쪽이었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서 강요하는 연예기사들을 잘 클릭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러분은 물고기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강조하려는 바다. 그런데 그가 낚시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조언은 좀 넌센스다. 안은별 기자는 “참 말을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 포털과 언론의 문제가 외국 상황보다도 훨씬 심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조를 바꾸자는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타당한 분석이긴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답이 안 나와 좀 맥이 풀리는 분석인 것도 사실이다.

보수언론이 연일 SNS를 괴담의 온상으로, 검증이 없는 공간으로 호도하는 시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들이 내세운 SNS 괴담은 정작 트위터에선 별 영향력도 없는데 그들의 보도를 통해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2PM 박재범 사건이나 타블로 사건에서도 보였듯, 그들은 네티즌들의 신상털이 문제에 대해서도 그걸 보도해서 더 폭발적인 반응을 유도할 뿐 사안을 검증하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SNS 여론 중 검증이 부족한 부분도 있기는 있겠으나 포털과 주류언론이 유착해서 ‘낚시’를 하는 시대에 대해 그들이 제대로 된 비판 및 자기반성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검색어가 기사를 만드는지 기사가 검색어를 만드는지’ 묘연한 이 시대에, 우리들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프레시안 북스의 ‘역낚시’가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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