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71세 생일잔치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고, 내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 줄 생각이 없어요” → “건희가 어린애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 “내 얼굴을 못 보던 양반이다. 지금도 아마 그럴거다”

삼성가 재산분할 소송이 ‘막말 난타’로 전화되면서 세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사고 있다. 재산을 둘러싼 82세 노인과 71세 노인의 말싸움이라고 생각하면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으나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삼성그룹을 둘러싼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이맹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폭로전을 둘러싼 맥락과 향후 전망을 정리해 보았다.

황태자께서 왕국에서 추방당한 사연

이맹희는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의 3남 5녀 중에서 장남이다. 이건희는 원래 셋째 아들로 서열로만 보면 후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 아침 이건희는 형에 대해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이며 "그 양반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를 하고, 아버지를 형무소 넣겠다고 청와대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을 했던 양반"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군대는 군사정권을 일컫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물론 이 말에는 맥락이 있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경제 범죄 사건으로 기록된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 이병철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때 장남 이맹희가 경영 전면에 나선다. 이맹희와 함께 사카린 밀수 현장을 지휘한 차남 이창희는 모든 법적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감옥에 간 이창희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강했는지 풀려난 이후 삼성그룹의 모든 조직적인 경제범죄를 일목요연하게 써서 청와대에 투서한다. 이 투서는 당시 육군 중령이던 전두환과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을 거쳐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은 이창희에게 크게 분노했고, 이맹희 역시 이에 연루되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한다. 이건희의 발언도 사실상 이 사건의 책임을 큰형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맹희는 부인하는 사실이다. 그는 친구처럼 지냈으며 자신의 용돈을 타 쓰던 전두환이 투서를 자기에게 가져오지 않고 위에 전달한 것에 섭섭해 했다고 술회한 적도 있다.

이맹희가 아버지 이병철로부터 다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뺏기는 건 이로부터 5년 후인 1971년의 일이다. 이병철로서도 의심을 했을 뿐 장남이 이 일에 가담했단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병철은 자서전에 이맹희가 경영능력이 모자라서 그리 했다 적었고 이맹희는 자신의 책에 살아 있는 동안 절대권력을 유지하고픈 아버지의 뜻 때문에 그리 된 것 같다 적었다. 그 후 이맹희가 아버지와 불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계자 자리를 뺏겻을 뿐 관계가 완전히 끊긴 것도 아니었고 오늘날 CJ의 전신인 제일제당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1994년) 삼성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CJ는 현재 이맹희의 아들인 이재현 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이병철이 이건희가 자신의 사후 후계자임을 천명하는 자리에도 이맹희는 없었을지언정 손자 이재현은 함께 있었다. 더구나 투서사건의 주범인 이창희조차도 미국에서 머물다 그 후 아버지와 화해하여 자신이 세운 새한미디어그룹을 삼성그룹 차원에서 챙겨주는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이맹희가 아버지를 고발했기 때문에 집안에서 내쫓긴 사람이라는 이건희의 주장은 맥락은 있지만 설득력이 심하게 부족하다.

사실 이맹희가 설령 투서 사건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이건희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 봉건영주들의 다툼 같은 재벌가 싸움을 그 전근대성을 살려 접근해 본다면, 영주에게 내쫓긴 아들이 영주 사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러 영지에 돌아오는 것은 과거에도 흔한 일이었다. 또한 애써 정신줄을 잡고 근대법률의 논리로 보더라도 이건희의 주장은 무의미하다. 제사 한번 지내본 적 없다 형을 비난하지만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상속권이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회장님, '대문자 A'에서 건희가 되다

이건희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를 추정해 보는 것도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추측은 그가 아버지 사후(1987년) 누구에게도 이름을 불려본 적이 없을 거라는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회사 내부 문건에서 그는 결코 이름으로 표기되지 않고 대문자 A로 지칭될 정도였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의욕적으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부르짖기도 했으나 이젠 사람 만나는 일을 마다한 채 저택에 은둔형 외톨이마냥 쳐박혀 구두로 삼성을 통치한지 수십 년이다. 본인이 누군가의 자식이며 동생이기도 했다는 인간적인 감각이 상실될 수도 있는 시기인 것이다.

두 번째 추측은 과연 이맹희 측이 문제삼고 있는 예의 차명주식이 정말로 이병철이 물려준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삼성 특검 비자금 수사에 대한 삼성 측의 ‘공식적인’ 해명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그 특검수사의 결론을 믿지 않고 김용철 변호사의 고발을 신뢰할 경우엔, 예의 차명주식은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이윤에서 매순간 꼬박꼬박 꼬불쳐 모은 ‘장물’이라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 자신이 훔쳐 만든 보물창고를 뺏기기 싫어 아버지 핑계를 댔는데 형이란 작자가 아버지 거라면 나도 달라고 밥숟가락 들이미니 “이거 내가 훔친 건데?”라고 답할 수는 없고 성질이 뻗칠 법도 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만에 하나 사실일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법률전문가들은 이맹희의 소송이 승소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 상속권 침해 회복을 요구하는 이번 소송은 상속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를 상속권자가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성립한다. 그래서 차명주식 실명 전환 후 삼성 측이 작년 6월 CJ에 보낸 상속재산 분할관련 소명서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소송이 성립하는 기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삼성을 경영한 적도 있었던 이맹희가 차명주식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 소송이 진행되면 될수록 삼성측은 차명주식의 실체를 더 소상하게 밝혀야 하는 부담에 처하기 때문에 적당한 금액 선에서 양자의 타협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법무법인 화우가 노리는 것도 그쪽이라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두 형제의 완고한 태도를 보면 의외로 소송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이 소송이 설령 이맹희 측의 승소로 끝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려 혹은 기대하는 것처럼 삼성의 지배구조 변동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맹희가 요구하는 824만주를 모두 챙겨가더라도 이건희(4,151만주, 20.76%)와 에버랜드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40%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맹희는 만약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다른 주식들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변수도 존재한다.

왕정이 사라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군가의 싸움을 '왕족'들의 것이라 칭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일이나, 힘없는 서민의 입장으론 이들 재벌 왕족들이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싸움이라도 하는 쪽이 나은 일일 수 있다. 권력끼리 불화해야 서로를 제어할 가능성도 있고 그 권력의 실체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꼬고 또 꼬는' 연속극 보듯 관련 보도를 흥미롭게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서글프면서도 의미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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