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여성 기자들이 연차, 소속 언론사, 부서와 관계없이 온라인 폭력에 노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폭력은 일상적인 수준으로 지속적인 괴롭힘은 저널리스트로의 ‘윤리적 동기’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언론사·언론단체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 방안 마련, 온라인 폭력에 대한 인식개선이 해결책으로 꼽혔다.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와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여성 기자 20명, 남성 기자 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향신문·한겨레·서울신문 등 신문사, MBC·SBS·YTN·TV조선 등 방송사, 연합뉴스·뉴스타파·오마이뉴스·미디어오늘 등 통신사와 인터넷매체 소속 여성 기자가 심층 인터뷰에 참여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연구팀은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폭력이 일상적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17일 열린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괴롭힘 경험은 기자 일의 ‘공기’처럼 존재한다”며 “연차가 높은 기자들은 여성 기자에 대한 괴롭힘이 양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늘었다고 증언했다. 특히 정치·법조 등 양극화가 심한 부서일수록 괴롭힘 경험이 많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폭력은 악성댓글, 욕설·성희롱 이메일, 전화, 얼굴 공개, 공개 모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같은 기사를 작성해도 남성 기자와 여성 기자가 경험하는 혐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처음 온라인 폭력을 경험한 여성 기자들은 불쾌감과 분노를 느꼈고, 이어 무력감과 두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무력감과 두려움은 노동 동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기사 작성 과정이나 취재원 면담 과정에서 자기검열을 일으켜 취재와 기사 작성에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콘텐츠제휴 언론사 소속 기자 사진을 공개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연구팀은 “기자의 신상이 공개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따라오는 부작용이 있다”고 했다.

대다수 언론은 여성 기자의 온라인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온라인 폭력 자체를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무시형·방임형 언론사가 다수였다. 한겨레·오마이뉴스·SBS는 ‘소극적 보호형’ 언론사로 분류됐다. 이들 언론사는 온라인 폭력에 대한 공식적인 창구와 심리적·법률적 조력 방안을 마련했다. 연구팀은 “온라인 괴롭힘을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을 마련한 ‘적극적 보호형’ 언론사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언론사 내부에 ‘온라인 폭력 문제는 기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가 존재했다. 이에 따라 여성 기자들의 직업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10년 뒤에도 기자를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대다수 기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연구팀은 “괴롭힘은 저널리즘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저연차 기자들의 정체성 형성을 방해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언론사가 ‘온라인 괴롭힘’을 ‘오프라인 괴롭힘’과 동일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구팀은 “조직이 괴롭힘에 대해 대처하는 것은 필수적인 의무”라면서 “온라인 괴롭힘을 보고하도록 장려하고, 비난받거나 희생당하지 않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온라인 괴롭힘을 폭력으로 인정하고 사내 공론화 실시 ▲사내 핫라인 개설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 연대 ▲의학적 ▲법률적 서비스 마련 ▲자가 진단 가이드 제작 및 공유 ▲악성 이메일 자동 차단 기능 도입 ▲댓글 및 이메일 창에 경고 문구 게시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신고양식 제작 및 최신화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전체를 아우르는 언론단체 대처 필요"

류란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은 “(온라인 폭력을 경험한) 기자들은 스스로를 비하하고, 위축된다"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번아웃을 겪게 되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번아웃을 겪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류 위원장은 “온라인 폭력이 물리적 폭력만큼 큰 피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기자들이 현재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며 “기자들이 나약해질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류란 위원장은 “(온라인 폭력에 대한) 담당 부서가 필요한 건 맞지만, 그 이면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언론사가 특정 조직에 모든 일을 몰아줄 우려가 있다. 구성원 전체가 고민해야 할 사안을 일부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했다. 류 위원장은 "모든 구성원이 여성 기자에게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의 특성을 잘 알고, 역할이 무엇인지 상시적으로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언론단체들이 공동의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데스크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며 "여기자협회, 언론노조, 기자협회 등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데스크는 온라인 폭력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언론단체가 회원사 기자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 기자들을 위한 창구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언론사 내부에는 큰 정의를 위해 개인이 강해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가 남아 있다”며 “여성 기자들은 대의를 위해 소의를 참아야 한다는 내부 문화, 일상화된 여성 혐오에 직면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언론사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 이사는 “이제는 강요된 논리가 아니라 기자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윤여진 이사는 언론사가 뉴스 댓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이사는 “뉴욕타임스는 체계적인 댓글 관리를 하고 있다”며 “인신공격이나 욕설 댓글은 애초에 승인되지 않는다. 한국 언론사는 이러한 조치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사자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성평등한 조직문화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조직, 여성 기자로서 괴롭힘 피해를 입었을 때 어려움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수진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남성 기자들도 똑같이 댓글 공격을 받는데 왜 여성 기자로 (연구를) 한정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면서 “동일한 상황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댓글 공격 형태가 나타나는 걸 말하고 싶다. 이런 문제를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찾는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류란 위원장은 “‘꼭 여성 기자만의 문제인가’라는 시각이 있다고 들었다”며 “여성과 남성의 민감도가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 기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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