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서울 관악을 재경선 방침을 밝히며 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여론조사 경선과정에서 보좌관이 연령 조작 문자를 보낸 것으로 20일 알려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거취를 두고 범진보진영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한겨레와 경향신문 두 진보언론은 사실상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겨레는 <야권연대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먼저 이정희 대표는 진보정당, 나아가 한국 정치의 앞날을 위해 어떤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를 심사숙고했으면 한다”라고 주문하였고 “지금 당장은 아프고 억울하더라도 자신을 내던지는 통 큰 결단이 장차 더 큰 열매를 맺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로 사실상 사퇴 결단을 종용했다. 경향신문 역시 <경선 조작 의혹과 진보정치의 미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공동대표는 재경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수준에서 봉합될 사안이 아닌 듯하다”라고 제언했고 “지금 이 공동대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문제, 장기적으로는 진보정치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의원 이정희’나 ‘변호사 이정희’가 아닌 ‘정치지도자 이정희’의 관점에서 더 넓게, 멀리 보고 결단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로 사실상 사퇴 결단을 종용했다.

▲ 22일자 한겨레 1면

그러나 양 진보언론은 이정희 선본의 행동을 심각한 것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한겨레 사설은 제목에 ‘경선 조작’을 명기하지 않았고, 사설 내용에서도 “물론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응하라’고 권유한 행위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고, 경선 결과를 뒤집을 만큼 결정적인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이 사안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는 형태의 선거가 아니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 과실이 경미한 것처럼 기술한 것은 무리가 있다는 시선도 있다. 트위터의 몇몇 법학 전공자들은 이 사안이 업무방해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경향신문의 경우는 사건 이틀차인 어제 신문에서 8면 우측에 사건에 대한 조그마한 기사를 배치하며 같은 날 1면에서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에 비해서도 기민하지 못한 대응을 보였다.

보도에서도 양 신문은 김희철 의원 측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조작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함께 기사에 남았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김희철 의원 측의 문자 메시지 조작에 관한 증거들은 조작되거나 해당 맥락이 거세되어 나온 오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행자 시의원이 발송했던 문자에서 가려진 부분이 ‘은혜마을 집사님’으로 드러나, 문자를 받는 사람들이 애초에 교회의 젊은 신도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름도 아닌 부분을 가려서 그림파일을 공개한 것 자체가 김희철 측도 함께 ‘진흙탕’에 빠뜨리려는 ‘물타기’였던 것이다. 물론 기사 작성 시점이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일 수는 있다. 하지만 세계일보 같은 신문은 오늘자에서 이미 검증한 가짜 문제제기를 여전히 ‘의혹’으로 남겨둔 것은 미심쩍다.

▲ 22일자 경향신문 1면

이런 부분에서 진보언론이 스스로 의혹제기의 설득력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지 않으니 독자들로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노회찬·심상정 등에게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도 함께 의혹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으론 민주당 고연호·이동섭·박준 후보 등이 제시한 의혹 역시 제대로 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보도는 ‘물타기’를 하려다 오히려 통합진보당을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다.

논평가들의 시선도 엇갈렸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의 경우 “(경선 여론조사 연령 조작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지만 이정희 대표가 후보를 사퇴할 정도로 책임질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의 파트너이고 이정희는 그 상대편의 수장인데 사건이 터졌을 때 사태를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아니라 이정희 대표를 코너에 몰았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어진 대규모 경선불복 사태는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승리한 통합진보당 후보를 ‘우리 후보’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몰고 있다. 이는 야권연대 정신의 부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민주통합당에게 “이 사건이 통합진보당 전체가 타격을 입었어야 하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한명숙 대표가 나서서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 이정희 대표가 당의 중심인 통합진보당의 처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범야권 시민사회 원로들 모임인 `희망2013ㆍ승리2012원탁회의'는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연 긴급기자 회견에서 "국민들은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향한 헌신괴 희생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러한 자세야말로 야권연대의 감동을 되살릴 기초"라고 말하며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강하게 촉구했다. 원탁회의의 좌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그 외 참여자는 김상근, 이창복, 오종렬, 함세웅, 청화스님, 이선종, 박재승, 임재경, 김윤수, 이해찬, 이김현숙, 윤준하, 정연주, 최영도, 황인성, 박석운, 권미혁, 백승헌 등이다.

한편 트윗믹스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이정희’라는 키워드로 가장 많이 공유된 링크는 김희철의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 대한 뉴스페이스의 기사(311회), 오보로 밝혀진 이정희가 후보직을 사퇴했다는 미디어 다음의 기사(224회), 그리고 <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나온 이정희의 발언을 정리한 오마이뉴스 기사(111회) 등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김희철의 처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이정희의 사퇴를 바라는 복잡한 감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혹은 이정희의 사퇴에 대한 찬반양론이 그만큼 팽팽하다는 시각도 가능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