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발표 후 반응이 뜨겁다. 박영선 최고위원이 한명숙 대표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라디오방송에 나와 말한 것도 화제이고, 유종일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KDI 교수)이 비례대표 공천에서마저 낙마한 것도 이슈가 되었다. 트윗믹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박영선’이란 키워드로 링크를 공유한 트윗은 288건이고 최다 공유횟수는 337회였다. ‘유종일’이란 키워드로 링크를 공유한 트윗도 77건에 달했고 최다 공유횟수는 22회였다.

비례대표 명단 공개, "민주통합당, 재벌개혁할 수 있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명단에서 주목할 부분을 발견한 이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법대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비례대표 1번 전순옥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그는 트윗에 “전순옥, 16살에 오빠의 분신을 접하고 노동운동 투신. 35살에 유학 가 <They Are Not Mchines>로 워릭대 최우수 박사논문을 썼다. 귀국후 대학이 아니라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진보의 거울이다”라고 썼다. 전순옥 여사는 고 전태일 열사의 누이로 유학을 다녀온 후 사회적 기업 등을 운영하며 활동해 왔다.

▲ 13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안병욱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심사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한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 선대인은 비례대표 4번에 내정된 홍종학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에 주목했다. 선대인은 트윗에서 “민주당 210여 명 공천자 가운데 관료 출신 빼고 경제전문가는 홍종학 교수 단 한 분. 한나라당에는 이한구, 유일호, 이종훈, 안종범, 나성린, 강석훈, 유승민, 최경환 등 경제전문가 즐비. 민주당, 새나라당에 맞서 새 경제 패러다임 만들 수 있나?”라고 지적하면서 홍종학 외에 유종일 같은 사람이 탈락한 민주통합당의 공천 현실을 비판했다.

트위터의 일반적인 여론도 민주통합당의 공천자 명단을 볼 때 그들이 재벌개혁이나 복지정책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유종일 탈락을 두고 민주통합당의 재벌개혁 의지가 없다고 추론하는 건 무리가 있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박권일은 전화통화에서, “그렇게 치면 홍종학은 유종일보다 재벌문제에 대해 훨씬 더 세게 발언했던 사람이다. 뒤에 무슨 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을 가지고 어떤 정책적 흐름을 관철한 게 아니다. 오히려 계파별로 나누다 보니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홍종학은 시민사회 진영의 몫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반면, 유종일은 정동영계로 읽혀서 배척받지 않았나 하는 혐의를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권일은 “물론 그 전에 김진표의 문제라든지, 민주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넘어오면서 인적 쇄신을 하는 모양새라든지, 전체적인 맥락에서 재벌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얘기는 할 수 있다”며 “재벌개혁을 할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계파 나눠먹기’ 속에서 재벌개혁 같은 정책적 문제는 후순위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순번이 ‘자리 나눠먹기’로 인식되고 민주당 내 많은 세력들이 자신들도 모두 배제되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주목해봐야 할 것은 ‘혁신과 통합’과 시민통합당을 경유해서 민주당으로 건너온 시민사회 세력의 부상이다. 경실련으로 인지되어 쉽게 4번을 받은 홍종학뿐 아니라, 9번 남윤인순은 여성운동계 사람, 10번 김광진은 YMCA 출신, 14번 김기식은 오랫동안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했던 저명한 활동가에, 19번 최민희는 민언련에서 오래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 외에 시민단체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지만 11번 한정애는 한국노총 출신이며 12번 김기준은 금융노조 위원장 출신 등 민주통합당에 선을 댄 많은 단체들이 비례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상황이다.

▲ 김기식과 최민희의 모습 ⓒ연합뉴스

시민단체, 의회에 입성한다면?

물론 정당과 사회운동 단체, 정당과 노동계가 연합하는 것을 반드시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비례대표의 취지 중 하나가 직능대표성의 강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은수미가 3번에 배정받고 한국노총 출신이 11번에 배정받은 것만으로 노동계의 발언권이 세질 거라고 우려하는 보수언론 보도를 보면 이러한 비례대표 순번 배정에 조금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각 단체나 영역을 제대로 대표하는 사람인지를 따져보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대표적 시민운동가들이 정당정치에 대한 아무런 비전과 전문성 없이, 시민단체 성과로 비례대표를 받는 정치 문화 자체가 후진적인 것이며, 시민운동에겐 문제적 상황”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이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리 차지하기 형태로 정치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이나 현장성에 대한 검증없이 그저 그 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보수야당의 당선권 순번에 배정받는 현실은 사회단체와 정당의 교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개인적 차원의 참여라는 것이 이원재 처장의 설명이다.

특히 김기식이나 최민희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들은 참여연대나 언론운동의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정치권에 입문하게 되는데, 이들이 정치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시민운동의 위상 전체가 하락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냐고 그는 분석한다. 즉 이들은 성과는 개인의 것으로 가져가고, 손해는 단체와 사회에게 떠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 단체 차원의 논의나 공론이 전혀 없이 이러한 개인적인 정치참여 경로를 인정해서는 결과적으로 시민운동 진영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왜냐하면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면 시민사회 운동이 평소에도 정권과 밀착해서 활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공천을 주는 상황에서 해당 단체의 유명활동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결국 정치권과의 스킨십 및 친밀도에서 결정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운동 진영에서 선호한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인 신학림은 낙마하고, 참여정부 시절 중앙일보를 조중동에서 제외하자고 말하며 정부와 코드를 맞췄던 최민희가 당선권에 포함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방식의 시민사회세력의 정치참여는 정당과 시민운동 진영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악영향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 작년 12월 26일 나꼼수 멤버들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송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운동권의 종언'과 '나꼼수 현상',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 이택광의 진단도 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사실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 단체나 정당에 참여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세대들이라 볼 수 있다. 흔히 ‘민주화 운동을 해봤다’고 얘기하는 그들은 대부분 386이거나 그 전후 나이라도 386들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영역에 있는 이들은 ‘시민사회 단체’ 소속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정당에 제 삶의 요구를 투입하려는 시민사회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87년 체제의 활동가’라는 집단이 있고 그 바깥에 시민사회가 존재하는데, 그 활동가 집단 내부에서 ‘시민사회 단체’ 소속을 ‘정당 소속’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로 부르는 관성이 정치개혁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설명이다.

이택광은 이러한 식의 ‘정당정치로의 이동’이 내부적으로는 단일화란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틀에서 본다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정당정치로 가버리는’ 결말을 낳게 된다고 설명한다. 시민사회 운동이 지금 지녀야 할 문제의식은 일종의 근본적 문제, 즉 민주화 세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고, 일상정치의 맥락을 복원하며, 일상정치의 공간 내에서 시민들의 정치성이 스스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시민들을 포섭할 수 있는 시민운동을 해나가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송두리째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사회 활동가들 역시 일상정치의 문제를 끌어안기보다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준비된 일꾼’임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택광은 민주화 운동 진영이 대의하지 못하고 버려진 이 영역에서 ‘나꼼수 현상’ 같은 것이 출몰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른바 ‘운동권의 종언’이라 진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택광은 활동가들이 정당으로 몰려가는 것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것이 ‘정당정치의 복원’을 말하는 이들과 대립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정치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활동가 몇몇이 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요구가 조직화되어 정당에 투입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시민사회 단체가 시민과 만나는 일을 포기하고 정당에 포섭되는 상황에서, 그간 민주통합당은 기술진보의 산물이 미조직된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모바일 투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 논란은 ‘전자민주주의’의 이상에 치명타를 입혔고 기술진보가 정치적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영역이 갈수록 협소화되고 시민운동도 시민들과 만나지 못하는 이 때에,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선수'들의 피난처로 전락한 고립된 정당이 어떻게 시민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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