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국에서 인터넷이 상용화된 이후부터 제기된 (혐오)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전혀 키워지지 않았던 것이 두 젊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비극을 만들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17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방치된 혐오-온라인 폭력,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트렌스젠더인 김기홍 활동가, 이은용 작가,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김인혁 배구선수와 1인 방송 진행자 조장미(BJ잼미)가 온라인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었다.

17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공동주최한 <방치된 혐오 : 온라인 폭력,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 (사진제공=민언련)

토론자들은 혐오표현을 제대로 정의·규제하지 못하는 사이 피해가 확산됐다고 입을 모았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고 조장미 씨의 경우 악플이 괴롭힘의 사유가 됐고 온라인상에서의 사소한 행동, 손가락을 가지고 ‘페미사냥’이 진행됐다”며 “그런 방식의 괴롭힘이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정확히 언어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누구나 혐오의 언어를 공급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가 편향되고, 공격적인 말이 돈벌이가 되는 증오비즈니스가 확산되고 있다”며 “7, 8년 전에는 ‘일간베스트’로 대표되는 특정 온라인 사이트 중심으로 온라인 폭력이 나왔지만 이제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혐오를 확산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온라인 혐오를 청소년이 학습하고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가장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금준경 미디어오늘 기자는 특정 커뮤니티에 머물던 이슈를 언론사들이 기사화하며 혐오확산에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 기자는 “언론이 온라인 대응팀을 별도로 만들어 검증 안 된 허위정보, 따옴표 저널리즘, 커뮤니티의 일방적인 주장, 선정적인 외신 기사 인용을 통해 조회수를 늘리고 광고 수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체 기자들은 온라인 기사는 닷컴 기자가 쓰는 것이라며 선을 긋지만 독자는 해당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로 인식한다”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에 종사자들이 노력하지 않는 사이 혐오와 차별 문제를 넘어 저널리즘 기반을 무너뜨리는 자율적 규제 노력이 이미 늦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권김현영 소장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혐오를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권김 소장은 “김 선수와 BJ잼미를 향한 '너 페미지?' 공격은 호주의 온라인 폭력·안전법이 있었어도 법적 제재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호주의 온라인 폭력법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불링을 막기 위해 만들어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학대에는 더 높은 기준으로 따져 온라인 폭력을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폭력의 경우 젠더화, 맥락화돼 특정 단어를 금지한다고 해도 가해자가 피해나갈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다.

자율규제를 넘어선 ‘디지털 권리 보호 기구’, ‘공동규제’

권김 소장은 디지털 권리를 보호하는 별도의 종합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 디지털 성범죄 소위원회로는 디지털 성폭력, 온라인 폭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김 소장은 “디지털 권리와 안전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디지털 권리와 안전을 총괄하는 기구를 만들고, 이에 대한 근거법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제안했다.

김민정 교수는 플랫폼, 이용자, 정부, 법이 함께 노력하는 ‘공동규제 모델’을 구상했다. 플랫폼 업계는 자율규제를 통해, 정부는 자율규제 활성화를 위해 관리 감독하며 이용자는 불법정보 게시물을 신고하는 등 혐오표현 대응 노력에 동참하고, 법 집행기구는 불법정보 대응 입법, 망법상 임시조치제도 보완 등을 통해 공동의 노력을 하자는 제안이다.

또한 김 교수는 “온라인 혐오표현 규제 관련해 이야기할 때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이 있는데 제가 찾은 답은,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펼치라는 것”이라며 “가해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소수자를 침묵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 총량이 줄어들게 되니, 제도적으로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교수가 제안한 공동규제모델

유승연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특임교수는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유 교수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은 기업 비즈니스 관점을 우선하는 원칙이 반영돼 실제 이용자 보호는 뒷전이며 자율규제가 있지만 규정은 규정으로만 존재하는 느낌”이라며 “해외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시행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대안으로 ‘협력적 자율규제 체계’를 제안했다. 협력적 자율규제는 국가기관 승인 아래 재정적으로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제3자가 관여하는 형태로 형식적 자율규제보다는 높은 수준, 공동규제보다는 낮은 수준의 자율규제 체계다.

이와 더불어 ▲플랫폼 사업자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규정 또는 가이드라인 강화 ▲정보 필터링을 통한 고품질 콘텐츠 제공 및 콘텐츠 분류 기준 공개 ▲온라인 폭력, 온라인 혐오표현 등 유해 게시물에 적극적인 삭제조치 및 대응 ▲유해 게시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익 중단 정책 마련 등을 같이 제언했다.

최진응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혐오표현은 현행법상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강제적으로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또한, 아동뿐 아니라 성인 플랫폼 이용자들도 보호될 수 있게 사이버 폭력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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