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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빌딩숲 깊어진 범죄의 그림자, 프로파일러란 시대적 요구[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2.01.16 00:14

[미디어스=이정희]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1화, 97년 서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늦은 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려 살인을 일삼는 '연쇄 살인마'가 나타난 것이다. 실마리라 봐야 빨간모자를 썼다는 것 정도. 그 단편적인 증거를 가지고 동부서 경찰들은 범인을 낚기 위해 여장을 하고 밤거리에서 잠복 중이다. 

피해자가 늘어나는 상황에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방기훈이라는 인물이 잡힌다. 지난밤 피해자가 죽은 그 시간에 애인의 집을 찾았다고 자백한 방기훈은, 경찰이 찾았을 때 포장마차의 영업을 잠시 접은 상태로 더더욱 의심을 산다. 피해자의 방에는 그의 지문과 혈흔이 남아있다. 동부서는 당연히 그를 범인이라 생각하며 수사를 진행한다. 

죽이지 않았다는 방기훈의 말은 범죄를 은폐하려는 수법이 되었고, 한때 폭력조직에 몸담고 처벌받은 그의 이력은 범죄의 충분조건이 되었다. 동부서 박태웅 팀장은 그럼에도 자백하지 않는 방기훈에게 권투 글러브를 사용하여 강압적 수사를 진행한다. 심지어 빨간모자를 썼던 그를 연쇄살인범 빨간모자로 몰아 성과를 올리려 한다.

SBS 새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SBS 새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이렇게 시작된다. 프로파일링 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국영수 범죄행동분석팀장(진선규 분)은 그 시대를 '빌딩이 높아진 만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고 정의 내린다. 즉 산업화 진행과 함께 기존 혈연중심의 사회 구조가 급격하게 해체되면서 개인은 원자화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범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앞서 동부서의 수사 방식은 이른바 면식범에 의한 치정 등 분명한 이유를 가졌다고 추정한다. 또한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강압적 수사 방식을 고수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국영수 팀장은 주장한다. 그런 '타당한 이유'가 없는, 무차별적 대상을 향한 범죄가 이제 한국 사회에도 등장할 것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1회 마지막 등장한 '빨간모자' 진범은 사냥을 하듯 그저 적절한 대상이 나타나면 목을 졸라 죽인다. 

이렇듯 새로운 양상의 범죄에 걸맞은 방식으로서 '프로파일링', 범죄행동분석팀의 등장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그려내고자 한다. 그저 애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다투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범인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보여주며 드라마는 '새로운’ 범죄 수사 방식의 시대적 요구를 실감 나게 그려낸다. 

프로파일러에 대한 시대적 요구 

SBS 새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그렇다면 누가 그 첫발을 내딛을까? 범죄분석팀 국영수 팀장은 눈 밝게 시대적 요구를 읽는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 수사에 헐떡이는 경찰 수사진에게 국 팀장의 청원은 자다가 봉창 두들기듯 엉뚱한 요구처럼 들릴 뿐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국팀장. 그는 자신이 아끼는 후배 송하영(김남길 분)에게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 한 권을 전하며 '프로파일링'의 미래를 함께하자고 독려한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동명의 책이 원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와 고나무 작가가 쓴 정통 논픽션이다. '1989년 순경 공채에 합격한 권일용 순경은 1992년 7월 동부경찰서 관할 파출소로 발령받아 처음으로 경찰 제복을 입었다'로 시작한 이 책은 대단한 사명감이나 책임감 없이 경찰이 된 권일용이 제복의 무게를 느끼며 프로파일러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수사한 사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실존인물 권일용의 전기와도 같은 이 책을 드라마는 우리나라 최초로 프로파일링 팀이 꾸려지는 서사로 변신시킨다. 이는 주인공 송하영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시작된다. 엄마와 함께 호수로 놀러 간 하영은 사고로 물속에 빠지게 된다. 물속에서 그가 본 건 젊은 여성의 시체, 물에 빠진 하영 덕분에 여성의 사건은 수면 위로 건져졌다. 

SBS 새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그런데 물 위로 건져진 시체로 달려간 하영은 차가운 그녀의 발에 시트를 덮어준다. 이 장면을 통해 드라마는 프로파일러의 '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극 중 송하영 역을 맡은 김남길은 이전 작품 <열혈사제>의 그가 맞나 싶게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사체를 마주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하영이 걱정된 엄마는 상담을 했고, 의사는 뜻밖의 말을 전한다. 하영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센시티브하여 외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프로파일링'이라 하면 떠올려지는 과학이나 지식에 앞서, 드라마는 프로파일러의 자격으로 인간적 연민에서 비롯된 의문, 그리고 그를 위한 열정을 내세운다.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연민이 깊은 사람, 그래서 죽은 자의 발을 덮어주려 한 어린 하영은 그대로 자라 ‘범죄자의 마음’을 묻는 어른이 되었다. 재미로 빨간모자를 쓰고 남의 집을 털었다는 모방범의 마음을 궁금하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과 한 학교여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 것 같은 눈을 가진 동창이 범죄자가 되는 수사적 관행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그는 당시 경찰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었다. 

SBS 새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그런 그를 눈여겨본 국영수 팀장은 그에게 ‘너야말로 프로파일링의 적격자’라 말한다. 의심을 덮지 않고 다시 범죄 현장으로 돌아가 숨겨진 범인의 지문을 포착한 열의, 그렇게 관행의 수사를 지양하며 열정을 가진 송하영을 통해 대한민국의 프로파일링은 첫발을 내딛는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기존의 수사 방식으로 더는 해결할 수 없는 '묻지마 살인'이 등장하는 시대를 말하고, 그런 시대에 새로운 수사의 길을 여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치도록 잡고 싶다'던 <살인의 추억> 속 형사들은 이제 프로파일링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묻지마 살인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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