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체제’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교수의 호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백 교수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도래한 정치 계절의 지상과제가 누가 ‘2013년 체제’를 점령할 것이냐는 점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이 오랜 이름을 버린 것은 결국, 다가올 ‘새로운 세상’이 박근혜 체제로 귀결되길 바라는 염원의 표현이었다.

‘2013년 체제’의 제안자인 백 교수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백 교수는 “현 집권 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2013년체제 만들기는 불가능하며 87년체제의 말기 현상이 더욱 극심해져 대혼란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2013년 체제를 위한 백 교수의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4월 총선에서 야권이 이긴다면 정권 말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다양한 일을 추진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대선에서도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백 교수의 제안은 다른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2012년 선거 승리를 통해 2013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다른 것을 제쳐두더라도, 우선 의회 내 다수당이 되어야만 사회 개혁의 근원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단 얘기다. 백 교수의 제안은 당연한 지적이며 체제론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평면적인 얘기지만, 시기적 요구와 맞물리며 매우 강력한 주문으로 진보 진영 전체에 환기되고 진보 매체들을 통해 증폭 되고 있다.

백 교수의 제안은 진보진영 전체, 특히 한겨레를 중심으로 한 진보 매체에선 이미 확정적 프레임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는 야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우리 편이 선거를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또 다시 강력한 정치적 지배력을 발휘하는 상황의 도래이다. 아시다시피 지난 87년 이후 정치적 진보주의가 끊임없이 실패해 온 이유는 ‘우리 편이 이겨야 한다’는 단일 대오론 때문이다. 매우 유효해 보이는 ‘2013년 체제’론은 어찌 보면 ‘비지론’의 익숙한 재판일 수 있다.

‘비지론’을 시대정신으로 띄운 백 교수의 제안 이후, 야권 연대에 임하는 민통당의 태도가 변했다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백 교수의 제안이 총선을 앞둔 시기적 요구에 의해 증폭된 것이라면 백 교수 제안이 공공연히 유통된 이후 민통당이 보이고 있는 패권적 모습 역시 매 선거 시기마다 민주당 세력이 보였던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물론, 백 교수의 제안 이전부터 2013년 체제를 준비하는 민주당의 시대정신은 선거 승리를 위한 ‘통합’에 있었다. 당 이름에 아예 ‘통합’을 넣을 정도였다. 민주당의 통합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됐다. 우선,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결국 ‘폐족’이 되었던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민주통합당은 명실상부한 산개해있던 친노의 구심이 됐다. 민주통합당은 이를 ‘시민과의 통합’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이에 동의했다. 친노의 상징적 이름이던 문성근은 시민의 대표성을 띄고 민통당의 최고위원이 됐으며 참여정부에 호의적이었던 시민사회 인사들이 대거 시민의 이름으로 민통당에 흡수됐다.

또 다른 축에서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다른 야권을 굴복시키는 작업이 진행됐다. 백 교수의 제안이 나온 즈음, 민통당은 이를 ‘연대’라고 불러 달라 했다. 기본적으로 연대는 서로 어깨를 거는 것이고, 차이를 인정하되 한 걸음을 같이 내딛는 것이다. 하지만 민통당의 연대는 좀 달랐다. 어깨를 걸기엔 덩치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는 과시욕부터 앞섰다. 함께 걸음을 내딛는 다기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엄포가 먼저였다. 민통당은 이를 ‘승리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판단과 선택’이라고 불렀다. 민통당은 물러서지 않았고, 통합진보당과 민통당의 연대는 결렬됐다.

진보신당 같은 정당은 오래 전부터 민통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를 야권 연대가 아닌 ‘두당 연대’라고 불러왔다. 물론, 진보신당이 먼저 가치 지향과 연대의 원칙에 있어 민통당과 같은 그룹에 묶이길 거부한 것이만, 민통당은 진보신당 같은 정당과는 애초에 연대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는 점은 중요한 지점이다. 민통당의 연대는 오로지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흡수로 전개됐다. 민통당은 자유선진당 출신을 품을 수 있지만 한국 정당 중에 가장 원칙적인 야당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애초에 이는 정치적 연대라기 보다는 선거 승리를 지상과제로 놓고 나머지를 당선 가능성으로 재배치하는 공학적 전술일 뿐이었다. 이 공학적 전술이 ‘2013년 체제’라는 세련된 이름을 얻고 강조될수록, 공학의 전개는 단순해졌다. 오래도록 누적되어 온 ‘반MB'의 정서가 부각될수록 민통당의 패권주의 역시 현 상태라면 공고해질 수 밖에 없다.

언론은 언젠가부터 야권의 승리를 곧 민통당의 승리로 바꿔 읽었고, 민통당의 존재를 야권 전체의 움직임으로 대체했다. 야권 연대라고 쓰고 민통당이라고 읽는, 왜 연대해야 하는 질문은 ’선거 승리‘의 당위성에 오롯이 흡수된 형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민통당이 오만해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2013년 체제’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아닌 오로지 민통당 승리 이후의 정치적 설계도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어찌되었건 승리해야하는 민통당은 견제도, 질책도 없는 단독자의 지위를 거머쥐었다. 진보진영은 이를 방조했고, 특히 진보적 매체를 지향하는 곳조차 이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민통당이 왜 이러느냐고, 당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야권 연대’의 이유와 틀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언론을 향해선 민통당 중심의 ‘야권 연대’ 프레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 의지가 민통당에 메시지를 접수될 때, 그때 비로소 ‘2013년 체제’를 향한 ‘연대’와 ‘통합’의 의미는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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