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회당 출연료가 50만 원인데 촬영지가 전남 장흥이어서 4~5번 왔다갔다했다. 출연료에 숙식비, 교통비가 모두 포함돼 출연하고 나면 오히려 손해다”

지상파 아침드라마 단역 배우의 증언이다. 13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10개 드라마 ‘배우출연계약서’에 대한 불공정약관 심사를 청구했다. 제작사 8곳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소속 배우가 맺은 출연계약서로 제작사는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JTBC<괴물>, KBS<출사표>) ▲유비컬쳐(KBS<미스 몬테크리스토>) ▲하이스토리(tvN<스타트업> ▲스튜디오에스(SBS<엘리스>) ▲에이스팩토리(JTBC<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tvN<비밀의 숲2>) ▲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SBS<모범택시>) ▲스튜디오 태유(SBS<홍천기>) ▲스튜디오드래곤(tvN<더 페어>) 등이다.

13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주최한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하이스토리, 스튜디오드래곤 등 8개 제작사 불공정약관 신고 기자회견>. 왼쪽부터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 김종휘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 강신하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사진=미디어스)

10개 ‘배우출연계약서’에서 추상적인 계약기간과 함께 ▲저작인접권, 초상권 등 권리 귀속 ▲야외 촬영 시 교통비·제경비 등을 출연료에 포함 등의 불공정 조항이 확인됐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20년 넘게 조단역 생활을 해온 친구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비업 일을 병행한다. 하지만 드라마 계약서에 '방송완료 시', '본 드라마에 필요한 출연자의 모든 활동 제공이 완료될 때' 등 계약기간이 명확히 적혀있지 않아 어려움을 토로한다”고 전했다.

이어 “촬영을 완료하고 출연료를 기다리는데 방송이 안 나오면 출연료 일부를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도 굉장히 많다”며 “방송사 제작비 지급 기준이나 방송출연료 조항에 명시돼 있지만 일부 제작사들은 연기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출연료를 주지 않거나 일부만 지급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송 국장은 “기본적으로 최저 출연료는 보장해달라는 요구로 2013년에 나왔지만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방송표준계약서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것저것 다 포함한 출연료

가장 심각한 불공정 조항은 '출연료'다. 야외 촬영 및 식대, 숙박비 등 모든 비용을 출연료에 포함시킬 경우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김종휘 변호사는 “야외 촬영이 적지 않고 대기시간이 장시간 소요되는 드라마 촬영 특성을 고려하면 되레 제경비나 수당이 출연료보다 많아도 이를 받지 못해 출연료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는 제작자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일방적으로 연기자에게 전가하는 것”라고 지적했다.

출연료에 ‘장면 재사용’, ‘회상’, ‘사진·목소리 출연’을 포함시키는 조항도 문제다. 드라마의 특정 장면이 다시 사용되거나 연기자의 초상이 담긴 사진을 드라마 외에 사용할 때는 연기자에게 별도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목소리 출연을 위해 연기자가 추가로 시간을 투여한 경우 역시 별도의 대가가 지급돼야 한다. 출연료에 ‘방송출연료 및 일체의 권리 등에 대한 대가’를 포함하는 것은 연기자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부당하다. ‘드라마상의 서비스’라고 적힌 성명, 예명, 초상, 사진 출연, 음성, 회상(장면재사용), 축약방송 등은 연기자가 연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지급 받는 출연료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보상 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연기자가 실제 촬영했지만 제작사 및 감독 판단으로 방송분이 빠졌을 경우, 이에 상응하는 출연료를 지급해야 한다. 출연자의 초상이 송출된 방송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산정한다는 조항은 잘못됐다고 민변은 지적했다.

계약기간 명시 안 되고, 대부분 권리 제작사에 일임

제작사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가 JTBC <괴물> 연기자들과 맺은 계약서에 계약 기간은 ‘방송완료시까지’이며 출연료는 “저작인접권, 초상권(퍼블리시티권 포함) 등에 대한 대가가 모두 포함된다”고 적시됐다.

셀트리온의 KBS <출사표> 계약서에 계약기간은 ‘출연완료시’이며 출연료와 관련해 “방영분 기준 장면 재사용, 사진 출연 및 목소리 출연은 상기 금액에 포함된다”, “방송출연료 및 일체의 권리(2차적 저작물 관련 사업 권리 및 초상권, 성명권의 상업적 사용권)등에 대한 대가를 포함한다”는 문구가 있다.

스튜디오S가 지난해 맺은 SBS <엘리스> 출연계약서, 에이스팩토리의 JTBC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tvN <비밀의 숲2> 출연계약서 모두 비슷한 문구가 적시됐다.

김종휘 변호사는 “추상적인 계약 기간 조항, 권리의 귀속 조항, 출연료에 방송출연료 및 일체의 권리에 대한 대가를 포함시킨 조항은 연기자 일방에게 부당하고 불리한 조항”이라면서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되며 약관법 제6조 제1항 및 제1항 제1호 위반으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상생을 위한 대안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방송계 공정경쟁을 위해 상생협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영화 <국제시장> 제작 당시 100억 원 이상 프로젝트에는 공정상생협약을 맺게 해 최소 보수, 제작기간 등을 정했다”면서 “영화제작분야에서는 불공정 행위가 개선되고 있지만 방송은 제자리걸음”이라고 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춘 탓에 문화산업 내 불공정 문제를 돌아보지 않아 사실상 사각지대”라며 “문체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문화산업 불공정 문제를 담당하는 전문 부서 혹은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신하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변호사는 대안으로 불공정 조항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거나 문체부에서 불공정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특별사법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독일, 프랑스 등 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추가보상권을 저작권법에 규정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추가보상청구권은 저작재산권을 양도한 이후, 계약시 예측 못했던 수익의 현저한 불균형이 발생한 경우 일정한 수익의 분배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와 함께 강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을의 지위에 있는 이들이 방송사, 제작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상생협약을 맺고 이를 통해 드라마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수익의 혜택이 정당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 역시 상생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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