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변상욱 YTN 앵커가 지난 8일 세 번째 에세이집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이란 에세이집 출간 이후 5년 만이다. 이 책엔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데 우리는 누구고 우리라는 공동체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란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 YTN 사옥에서 변상욱 앵커를 만나 새 에세이집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변 앵커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이란 에세이집 이후 5년 만에 <두 사람이 걷는 것에 대하여>를 8일 출간하셨잖아요. 소회가 궁금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글로 써내는 것이 아직도 좀 서툴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 작업을 접고 지냈는데 이번에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책을 쓰게 되는 동기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데, 출판기획자가 끈질기게 요청하면 씁니다. 어느 출판기획자가 요구하든 다 먹히는 건 아니고 영세 출판사, 막 창업한 1인 출판사에만 글을 내놓게 되네요. 그동안 사람들에게 뉴스를 전파만 했지 제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못했는데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설득에 달리 변명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책의 맨 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전하기만 했지 손을 내밀지도 다가가지도 위로하지도 못했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쓴다’고 적은 겁니다.”

40년 글쓰기 하셨잖아요. 그런데도 아직 어려우세요?

“어렵습니다. 멋지게 쓰려는 사심과 허황됨이 남은 탓인가 싶기도 합니다. 주제에 대해 검색하고 분석해 쓰라면 쓰겠는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느낌과 사유에 대해, 그리고 나를 헤집어 들춰보며 글 쓰는 작업은 어렵네요. 젊을 때는 약간 치기 어린 감성적 글을 쓰기도 했고 그것들이 책으로 엮어져 나오기도 했지만, 나이 들고 보니 훨씬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를 출간한 변상욱 YTN 앵커 (사진=이영광 기자)

책 나온 지 1주일 되었는데 주변에서 책 읽어보고 뭐라고 하나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평 말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작가 지인들, 후배들이 책을 읽었다며 ‘잘 읽었다. 좋더라. 밑줄 칠만한 구절들이 많았다’라고 얘기하던데 인사치레가 절반은 되겠죠?”

앞서 1인 출판사에서 책 제안이 오면 수락했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책을 함께 만들자고 출판사에서 메일들이 종종 옵니다. 공들여 만든 멋진 기획안을 받아 읽다 보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다며 돌려보내죠. 1인 출판사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 살다 맺어진 인연이고 소중히 여기다 보니 나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진정을 담아 제안하는 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두 사람이 걷는 것에 대하여>란 책은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관한 책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겁니다’ 또는 ‘제 생각은 이런 겁니다’라는 걸로 시작해 ‘당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런 것들이군요’로 이어지고요. 숱한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데 우리는 누구고 우리라는 공동체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걷는 것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저렴하니까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걷는 것이죠. 가장 가치와 효용이 큰데 가장 저렴하고 유익하니 꼭 알리고 싶고 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외로울 때, 무기력할 때, 건강으로 걱정이 클 때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걸으면 됩니다.”

자주 걸으시나요?

”’양화대교’란 노래가 있던데, 걷는데 어디냐고 물으면 ‘양화대교’라고 답할 때도 있습니다. 종종 걸어서 건너죠. 경험으로 보면 만 보로 건강해진다는 건 어림없어 보입니다. 훨씬 더 많이 걸어야 합니다. 체력이 허락할 때 2만보 3만보 걸어두어야 합니다. 나이 들면 1시간 넘기면 발의 뼈들이 힘들다고 소리칩니다. 걷기와 운동은 성취감을 주면서 일으켜 세웁니다. 그게 반복되며 자신감, 자긍심으로 바뀌죠. 그리고 궁극엔 ‘존재의 자유’가 기다립니다.“

원칙이 하나인데 ‘나의 날들을 나의 날들로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것’이라고 나오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가슴이 뛰면 되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가슴 뛰는 삶은 많아요.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해 지지자의 환호를 들으면 가슴이 마구 뛰겠죠? 당선되어도 뛰고. 금메달 따거나 사업으로 대박이 나도 뛰겠죠.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가슴 뜀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것, 늘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손주의 작은 손을 쥐어보거나 멋진 저녁노을을 바라보거나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얻는 환희 같은 겁니다. 그래서 충만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충만한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하나요?

”글을 엉덩이로 쓴다고 하죠. 끈기와 집중이요. 결국 행복도 훈련입니다. 세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관심을 갖고 그 아름다움을 알아차려야 해요. 아름다운 작품은 미술관 가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바로 보고, 바로 느끼고, 바로 알고, 사랑하는 것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 거기서부터가 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변상욱 에세이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표지 (사진= 멀리깊이)

이전 책과 달리 이번 책에는 가족, 특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데요.

”이전에야 당장 살아갈 날들이 까마득히 남았으니 그랬지만 이제는 기억이 더 지워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내 삶도 고비가 많았는데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식민지와 전쟁, 경쟁과 불평등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셨고 무엇이 그 ‘동력’이 됐을까 이해하고 싶어졌습니다. 한국사 속에서 내 부모님, 내 부모님 속의 한국사를 함께 보려 했던 겁니다.”

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던데,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요.

”거의 50 무렵에 저를 얻으셨습니다. 산골에서 서당에 나가 글공부를 하고 훗날 서당을 세워 글공부를 가르치신 분이셨는데 어떤 꿈과 어떤 좌절이 있었는지 듣고 기억하는 게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니 글로 남길 것도 없었고요. 3.1운동 때 10살 즈음이셨으니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만주와 한반도를 떠도셨을 텐데 그때 젊은 가슴에서 뛰던 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요. 이건 역시 문학의 영역인 듯합니다.“

아버님께서 몸져눕게 되신 탓에 고향에 그냥 남으면 어떻겠냐 의중을 떠보시는 대목도 있던데요.

”고3 때인데 갑작스레 꿈을 바꿀 수는 없더라고요. 어디서건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삶을 꾸려가는 거지만 이건 생각해 봤습니다. 중앙 언론사로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내게 가르침을 주신 청강 장일순 선생, 이현주 목사, 리영희 선생, 송건호 선생, 신영복 선생 같은 분들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요?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사회의 어른이라 할만한 분들이 점점 없어지는 거 같아요.

”그분들의 세상도 변화 속에 놓여 있었겠지만, 시대사조 자체가 많이 변한 겁니다. 합리주의가 실용주의가 되고 자본주의가 폐해가 깊어지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지식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거겠죠. 저널리스트도 지사 형에서 지식인 형으로, 다시 직업형으로 바뀌어 가는 거고요. 부인하고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신 이제는 함께하고 플랫폼을 만들고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풀어야죠. 훌륭한 스승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여럿이 진정을 모아 과제해결에 나서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기자님은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얘기해 오셨는데 지금 2030세대의 젠더 갈등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갈등이 심하다는 건 이전과 달리 여성에게 발언권이 주어지고 서로가 대등하게 논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아직은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요즘의 페미니즘 이슈는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저널리즘 작업 속에서 교차인식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농촌 여성, 다문화 여성, 이주 여성 노동자 등 페미니즘 이슈에서조차 소외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책 속에 아랍권의 페미니즘이나 중국의 페미니즘이 간간이 담기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선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도 나오는데.

”여가부 폐지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가부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야 할 과제들을 제대로 발굴하고 그럴 권한을 부여해 해결토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성가족부가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독립된 부처로 활동하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사각지대가 아직 꽤 있습니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거나 높은 데 오르잖아요. 언론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나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언론이 기득권 카르텔의 한 부분으로 전락하면서 어려운 사람들 처지에 무감각해지는 겁니다.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건 어렵습니다. 옐로우 저널리즘과 편파적인 언론들이 계속 힘을 쓰면서 불평등 타파를 외치는 목소리는 잦아들 겁니다. 의미 있는 언론들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다양하게 나와야 하고 거기에 시민사회가 힘을 실어주는 방법밖에 없죠. 대형신문 방송에 정부 광고가 흘러 들어갈 게 아니라 농민신문, 노동자신문, 장애인 신문 등에 정부 예산이 지원돼야 합니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저자 변상욱 인터뷰 (출판사 멀리깊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교회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도 나오더라고요. 가톨릭과 개신교가 혐오와 차별 문제에 다른 입장인 것 같던데 이유는 뭘까요?

”주말에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17개국 의식조사 내용에 나옵니다.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복수 응답을 했는데 가족과 직업, 친구 관계라는 답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데 한국인의 답은 오로지 부유함과 풍요로움, 즉 돈이었습니다. 이어서 미국에선 ‘신앙’을 꼽은 사람도 15%나 됐습니다. 개신교 신도만 15%에 이르는 한국에서 ‘신앙’을 자기 삶의 원동력으로 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종교가 여럿이지만 교회만 놓고 생각하면 교회의 정체성은 잘살게 해달라고 빌거나 보험 들어 놓는 거로 전락했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누구는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누구는 들어올 수 없다면 그게 교회의 모습이겠습니까? 배제하고 격리시킨다고 여기겠지만, 교회가 이미 사회로부터 배제당하고 격리당하고 있는 겁니다. 책에 소개한 구원의 대상이 ‘모두’냐 ‘많은 사람’이냐 벌이는 논쟁도 그걸 담고 있죠. ‘모두’는 싫은 겁니다. 왜냐하면 내키지 않는 인간들은 교회에 들이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은 독점하고 싶으니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고 성경을 번역해 사용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나마 가톨릭에서 벌어지는 논쟁이고 한국의 개신교는 아무 생각 없습니다.

하다못해 신학대학 함께 들어가고 신학대학원에서 학위를 함께 받고 능력을 발휘하고 헌신해도 여성은 사제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게 기독교입니다. 불교에도 그런 차별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기자님이 매일 보는 매체 중에 <비마이너>,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의 소수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인데 거기 나오는 부고 기사를 읽으신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비마이너>라는 작은 언론사의 부고란을 읽다 보면 우리 사회의 그늘과 무너진 곳이 응축되어 나타납니다. 우리 사회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현실은 얼마나 차가운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그 부고란을 읽으러 들어가는 것은 나를 일깨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꿈이 정치 외교가였다고 하셨잖아요. 정치권에서 러브콜도 받으실 것 같은데 언론인으로 남은 이유가 있나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정치권을 바라보고 논평하는 것도 나름의 정치죠. 그래도 몇 명쯤은 언론계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요? 저렇게 언론 생활을 하는 방식도 있다는 작은 표식처럼 자리를 지킬까 합니다. 할 줄도 모르면서 뭐하러 거기에 가 초년병 노릇을 하겠습니까?“

이 책으로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다투고 부족했던 과거에 묶이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미래로 나아가자고, 미래를 준비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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