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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떠밀린 공영미디어 논의의 출발점은 재원?[세미나] "민주주의 원칙으로 공공성 논의해야"…여전히 약탈·방치의 대상
송창한 기자 | 승인 2021.10.18 10:00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디지털미디어 시대는 미디어 시장의 공적 영역 축소를 야기한다. 기술발전에 따른 방송·통신 융합환경을 법과 제도로 따라잡지 못한 한국에서 특히 공영방송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공공성 영역은 플랫폼 다변화와 규모의 경제에 밀려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공공성과 공영미디어의 역할을 담보할 구체적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미디어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절차와 목표설정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영국·독일 등 공영방송제도를 운영 중인 유럽국가들은 일찍이 관련 논의를 시작해 실행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다. 

15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CA가 후원하는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규범과 가치'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한국 공영미디어, 약탈 아니면 방치 대상"

15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CA가 후원하는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규범과 가치' 세미나가 열렸다. 첫 발제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전파매체는 사회적으로 공적 역할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고,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적 성격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디지털화 이후 공영방송도 시장경쟁 압박을 받으면서 공적가치는 상당히 형해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과거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방송은 공공재를 사용하면서 독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허가 사업으로 관리되면서 높은 수준의 공적책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케이블TV, IPTV, OTT에 이르기까지 기술발전에 따른 신생 미디어의 출현이 이어졌으며 디지털화로 방송과 통신의 경계, 미디어 시장의 국경은 허물어졌다. 공영방송은 시장경쟁에 내몰려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 교수는 "미디어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망하는 기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정부의 공영미디어 정책이 '약탈과 방치'로 이뤄져오면서 미디어 규범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금 우리는 공영미디어를 방치하고 있다. 그 전에는 약탈했다"며 "말이 공영이지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게 정치적 약탈이다. 이제 약탈하는 게 눈치가 보이고 (공영방송)힘이 빠지니까 방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입 안 하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수신료는 논의 자체도 안 한다"고 덧붙였다. 20년 넘게 방치된 현행 방송법은 뉴미디어를 포섭하지 못하는 문제에 더해 미디어의 공·민영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추천 관행에 따라 구성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도 그대로다. 

최 교수는 "디지털 시대는 레거시 미디어의 공적시스템을 재구성하고, 지역매체와 시민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호할 것인가가 공공성 과제로 남을 것"이라며 "정부가 정책 과제를 집중적으로 추진해야만 국민들을 보호하면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른 것은 거의 시장으로 가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공영미디어 '지속 가능성' 고민하는 유럽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디지털시대 공공서비스미디어(PSM, public service media) 제도 개선을 진행 중인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콤(Ofcom)은 PSM의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인 '스몰스크린:빅디베이트(Small Screen:Big Debate)'를 발간했다. 오프콤은 영국 정부에 공영미디어 중심의 미디어법 개정을 주문했다. 모든 주요 플랫폼에서 실시간·주문형 PSM의 중요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오프콤은 영국 공영방송의 중요성과 성과가 입증됐지만 글로벌 미디어산업 추세와 이용자 시청습관의 변화로 공영방송 체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제도 정비를 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영국 시청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의 뉴스와 교육·교양 프로그램 소비를 희망했고 이를 공영미디어에서 찾았다는 게 오프콤의 진단이다. 

지난 7월 오프콤의 전국 규모 포럼 '스몰스크린 : 빅디베이트(Small Screen : Big Debate)'는 <공공 서비스 미디어의 미래에 관한 대정부 제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프콤은 PSM의 목표를 ▲사회적 가치와 폭넓은 고품격 프로그램 제공 ▲국민통합 경험 공유 ▲다양성 반영 ▲TV·온라인을 통한 보편적 접근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 창의산업 진흥 등으로 설정했다. 

오프콤은 PSM의 바람직한 재원으로 기금과 광고를 제안했다. 이 중 기금과 관련해 스트리밍 서비스 부담금 신설, 디지털세 확대, 수신료 모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온라인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기존 TV광고에 대한 규제가 역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2007년부터 밤 9시 이전에 어린이 TV프로그램, 아동 시청자가 많은 TV프로그램에서 지방·당분·염분 함유량이 높은 식품이나 음료수 광고를 금지시키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시청자들이 온라인으로 이동 중인 현재 인터넷 미디어 서비스에서 해당 상품들에 대한 광고금지는 적용되지 않는다. 

상당수 OTT의 수익 구조인 구독모델은 PSM에 적합하지 않다. PSM은 보편적 서비스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심 교수는 오히려 영국이 공공서비스를 온라인과 TV플랫폼에서 누구에게나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가정은 6%로 대부분 저소득층이며 이들에겐 실시간 TV플랫폼이 중요한 미디어다. PSM 의무제공과 동시에 기존 지상파 수신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2017년 독일에서 언론학자·미디어종사자·규제기관이 공영방송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바뀌어야 할 10가지 혁신테제를 발표했다. 해당 선언은 PSM의 무료 보편적 접근을 강조해 온라인광고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국과의 차이가 있지만, 공영미디어를 온라인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온라인도 공영방송의 기본공급 대상이다 ▲방송사에서 정보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공영방송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경영 투명성을 강제하라 ▲시청률이 아닌 공적평가를 통해 성과를 평가하라 ▲인터넷서비스와 함께 TV서비스도 유지되어야 한다 등이다. 

심 교수는 "정책은 도달 목표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며 한국에서 영국·독일과 같은 보고서가 나오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로 미디어정책기구의 분산을 지적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각 정부기관이 경합하는 형태의 미디어정책 추진이 행정비효율을 유발할 뿐 아니라 정책목표 설정도 저해한다는 진단이다. 

미디어 공공성, 민주주의 논의로부터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선욱 전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미디어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연구자들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의아하다. 아무리 찾아도 원리나 원칙에 대한 문제를 국문으로 접하기 참 어렵다"며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빼놓고 공익성과 공공성을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전 소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미디어 규범과 가치 문제를 놓고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느냐'이다. 목표로서의 민주주의를 얘기해야 한다"며 "마치 공공성이 다른 무엇인 것처럼, 민주주의를 얘기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정책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래는 무엇이냐는 것"이라며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합의를 만들어 나가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특히 불확실성과 불규칙성이 높아지는 디지털 시대에는 통치가 아닌 협치로써 정부-시장-시민사회가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만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시대 미디어 정책은 적은 수의 사업자를 대상으로 원칙만 세워 규제하면 됐지만 온라인 플랫폼과 빅데이터, AI알고리즘 등이 융합하는 환경에서 정치권력이 홀로 정책을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최선욱 전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왼쪽), 정영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정영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디지털 시대에 들서면서 오히려 공공성에 대한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수직적인 규제 담론을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연구원은 "현재 미디어가 아닌 산업영역에서도 공공성 요구는 커지고 있다. 카카오 골목상권 침해, 쿠팡 노동환경, 택배노동자 배달앱 수수료 논란 등"이라며 "메시지와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는 사회 인식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만큼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환경에서 미디어 규범과 가치는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연구원은 "공공성이 곧 규제나 산업방해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동안의 정책과정이 통치적이고 수직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이라며 "과정으로서의 정책·거버넌스를 얘기해야 한다. 미디어의 범위가 애매해지고 공공성이 확장되는 현재 어느날 갑자기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오프콤의 '스몰스크린:빅디베이트' 보고서 발간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이 보고서도 전문가, 1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 4000명 이상의 설문응답자 등의 참여와 영국 17개 지역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런 절차적 정당성이 공공성을 정립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우리 미디어 규제기구가 이런 과정을 사업자, 시민단체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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