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맨날 보는 광경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자기들에 유리한 얘기가 나오면 침소봉대를 해 상대편을 공격하는데 써먹는다. 정치인, 기자, 교수, 평론가 다 마찬가지다. 그걸 근거로 자기 편이 상대편보다 낫다고 한다. 사건의 실체엔 아무도 관심없다. 실체가 뻔해서 그런 것인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제보자’ 조성은 씨가 SBS 인터뷰에서 한 말이 화제이다. 조성은 씨가 해명을 했는데 무슨 얘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인터뷰에 나오는 “9월 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거나 제가 배려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거든요”라는 문장은 그냥 보기엔 마치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 뉴스버스와 문제가 된 보도의 시점 등을 상의했다는 듯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인터뷰 전체 맥락을 보면 다른 의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문제의 발언은 박지원 국정원장을 뉴스버스 기자 접촉과 보도 시점 중간에 만난 일 때문에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입장이 뭐냐는 취지의 질문의 답으로 나왔다. 해당 발언은 보도 시점을 뉴스버스가 알아서 결정했다는 맥락 속에 있다. 이 발언 직후 윤석열 전 총장 등과 친분이 있는 박지원 국정원장과 내용을 공유할 수 없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이 맥락에 충실히 해석한다면 조성은 씨 발언은 ‘특정 보도 시점을 국정원장과 상의해 요구를 관철시킨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지만 그런 일은 없다’는 취지로 볼 수도 있다. 아마 SBS도 그렇게 판단해 편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조성은 씨의 발언을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말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성은 씨가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과 국정원장 공관을 방문했다든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전 총장 측 주장이 맞다고 전제해보자. 박지원 국정원장과 조성은 씨, 뉴스버스가 한패가 돼 보도 시점에 대해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면 큰 문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손준성 검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김웅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 원본까지 조작할 수는 없다. 이 메시지는 박지원 국정원장이 임명되기 훨씬 전인 2020년 4월에 보낸 걸로 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텔레그램 메시지에 등장하는 문서와 거의 똑같은 형태의 고발장이 실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고발에 활용된 걸로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타임머신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조작은 불가능하다.
일부에서는 4월 3일 전달된 걸로 보이는 채널A 사건 관련 고발장에 6월에나 보도되는 사실이 적혀있다는 걸 근거로 조작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뒤집어 말하면 6월에 보도가 될 사실을 검찰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근거, 즉 해당 정보의 원 소스가 검찰일 가능성을 가리키는 걸로 볼 수도 있다. 이게 이철 씨 대리인을 자처한 ‘제보자X’ 지모씨가 실제 이철 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다더라는 내용인 걸로 보면 이런 가능성은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제보자X’ 지모씨는 언론 보도에 지속적으로 등장해 검찰을 괴롭혀 온 인물이다.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보도에서 역할을 했고 ’조국 전 장관 사건 때도 등장해 여당에 유리한 주장을 했다. MBC PD수첩에 나와 검사 비위를 증언하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검찰은 채널A 사건 이전부터 지모씨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총선 직전에 불거진 채널A 사건은 ‘역습’의 기회로 삼기에 알맞았을 것이다. 고발장이 전달된 4월 3일 조선일보는 채널A 사건의 이철 씨 대리인이 지모씨라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해당 보도의 소스는 ‘법조계’이다.
이런 맥락에 맞춰보면 ‘고발 사주’는 있을법한 사건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당시 야당이 고발을 하면 오히려 수사를 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수사기관에 있어서 절차는 권한의 전제이다. 권한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당이 채널A 사건을 쟁점화 하고 검찰에 고발을 하며 수사를 촉구하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정권과 대립이라는 맥락에서 카드 한 장을 더 쥐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정권과 검찰의 대립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장관 수사를 강행한 것을 정권은 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인사 등의 수단을 통해 검찰 조직을 공격했다. 검찰 역시 자신들이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면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예상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 개시 직전 검찰총장 임명장 잉크가 말랐는지 만져봤다고 한 것에서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후 모든 상황은 서로간의 공격과 방어, 반격과 역습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위치하게 되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거대 괴수들의 싸움 같은 것이었다. 언론 역시 이 전쟁을 각자의 편에서 거들었다. ‘고발 사주’ 의혹은 바로 이 상황을 보여준다. 윤석열 전 총장이 출마를 결심한 이후 대선 전체가 이 맥락에 지배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비극적 결말을 안길 뿐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정권교체든 정권연장이든, 똑같은 일을 우리 사회가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러므로 이 사건을 두고 또는 이 사건의 어떤 부분을 떼서 ‘내가 상대보다 낫다’고 주장할 때가 아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검수완박’과 같은 제도적 대안이 해법은 아니다. 확신은 정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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