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정치적 위기 대응에 성공하는 정치인도 있고 실패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정치인 개인의 ‘스킬’이 상황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 조건이 강력하게 작용해 정치인 자신의 결단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원하는 지형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정치적 능력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 논란은 정치적 위기였다. 황교익 씨는 대중적 논란이 큰 인물이다. 상대 후보 캠프와 야당의 문제제기는 보은인사라는 등의 평가를 명분으로 하고 있으나 결국은 황교익 씨에 대한 대중적 비호감을 활용해 경기도지사직 사퇴 주장의 근거로 활용한 것에 가깝다.

예를 들면 황교익 씨가 이재명 지사의 욕설 등 처신을 옹호한 대가로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직을 얻어냈다는 설명은 대단히 부실하다. 이런 부실한 논리가 동원된 것은 애초에 이재명 지사와 황교익 씨 간의 접점이 없는 것에 가깝다는 점에 이유가 있다. 따라서 굳이 말하자면 이것은 보은인사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인사이다. 황교익 씨에게 경기관광공사 사장 지원을 권유하거나 인사를 추천한, 정치적 힘을 가진 중간고리가 되는 인물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대중적 반감의 핵심은 이런 맥락이 아닌 황교익이라는 인물이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사실 자체였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가 황교익 씨의 자질과 전문성, 직무적합성 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 캠프 측은 “관광의 반은 먹는 것”이라는 등의 논리를 들었다. 이건 오히려 황교익 씨가 자질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설명이다. 황교익 씨의 자질 및 전문성은 본인이 자신의 이력을 직접 설명하면서 그나마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 측이 “도쿄 오사카 관광공사사장”을 저급한 방식으로 언급해 황교익 씨의 대중적 비호감을 다시 끄집어 내고, 여기에 황교익 씨가 “정치생명을 끊겠다”고 맞서면서 이것은 수습 불가능한 문제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의 핵심은 이재명 지사의 리더십 문제다. 예를 들어 ‘이재명 정권’에서, 그러니까 이 정권에서도 수차례 그랬듯, 논란이 있는 인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례라는 거다. 인사청문회까지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은 이 정권보다 나은 대응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 준다. 때문에 이재명 지사가 직접 입장을 표명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결국 방송인 김어준 씨와 이해찬 전 대표가 나선 뒤에야 황교익 씨 인사 문제가 일단락 됐다. 여기서 김어준 씨와 이해찬 전 대표가 나서면 정리할 수 있는데 이재명 지사는 직접 나설 수 없는 이유가 뭔지도 의문인데, 아무튼 결과적으로 득이 될 수 있는 대응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나마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문제는 집안 싸움에 가까운 이슈였다. 그러나 ‘떡볶이 먹방’ 문제에 이르면 사건의 성격이 달라진다. 일각의 지적처럼 경기도 내에 화재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도지사가 모든 일정을 취소할 필요는 없다.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었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화재 사고의 상황에서 수행하던 일정이 경남도와의 협약이나 해외출장 등 도정과 관련이 있는 공무였다면 이런 설명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대권주자로서 이미지 관리를 위한 행보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떡볶이 먹방’은 취소 또는 중단했어야 한다고 누구라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재명 지사가 대응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나마 적절했다. 앞으로도 제기되는 논란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일리가 있는 지적은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상대에 대해 역습을 가하거나 배후의 의도를 거론하며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제한적 조건에도 불구 자신이 주도권을 잃지 않는 판을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여기에 달렸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이재명 지사에 비하면 윤석열 전 총장은 더 복잡한 조건 속에 있는 것 같다. 원희룡 전 지사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 대립은 두 사람 간 갈등이라기보다는 윤석열 전 총장의 대리전에 가까운 거였다. 이 갈등 구도가 해소되자마자 이번에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이 윤석열 캠프의 비대위 검토설을 제기하며 이준석 윤석열 대결구도가 다시 부활했는데, 비대위 검토설이 아니더라도 이건 예견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차원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는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총장 사이의 불신이다.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전 총장의 경쟁력에, 윤석열 전 총장은 이준석 대표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것만이 문제라면 두 사람의 결단을 통한 갈등 해소가 필요할 것이다. 치맥회동을 매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갈등의 두 번째 전선, 전당대회의 연장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윤석열 캠프 내에 반이준석 기류가 팽배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물론 이준석 대표의 언행과 앞으로의 경선 일정이 윤석열 전 총장의 경쟁력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선거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예를 들면, 이준석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는 미래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전 총장보다 윤석열 캠프가 문제라는 식의 언급을 해왔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윤석열 전 총장이 캠프 차원에서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을 확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실제 그러한 지시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인화물질이 있으면 불은 옮겨 붙을 수밖에 없다. 이준석 윤석열 갈등의 인화물질로 작용하는 것은 이미 이 문제가 각 대권주자들의 유불리와 직결되는 요인이 됐다는 것인데, 이게 세 번째 전선이다. 원희룡 전 지사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태도, 그리고 이런 구도에서는 반드시 끌려 나올 수밖에 없게 돼있는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의 대응이 이 조건을 방증한다.

선관위원장 지명, 역선택방지룰 도입, 비전발표회의 양상 등 앞으로도 이준석 윤석열 간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본격적인 경선 일정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이 조건은 상수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은 국민의힘 지지층의 분열을 촉발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

그런데, 뭐가 어쨌든 국민의힘 내에서 정권교체를 주도해야 할 인사는 결국 윤석열 전 총장이다. 그렇다면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미 존재하는 조건을 초월하는 정치적 행보를 할 필요도 있다. 가령 원희룡 전 지사가 녹취 공방을 시작할 때 윤석열 전 총장이 이를 공개적으로 적극 만류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준석 대표의 부족함을 지적하더라도, 지도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본인 위주로 중심을 잡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면 어땠을까?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전 총장이 선택한 것은 잠행이었다. 갈등회피형 리더십은 무능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 참여부터 지금까지 최악을 만드는 선택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 1위 후보의 책임을 피해선 안 된다. 정권교체 여부를 떠나, 적어도 최선의 경쟁을 위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잘 해내느냐도 결국 정치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