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으로 출근한 안철수 원장이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 원장은 이번 1천500억원 상당의 기부는 당연한 일일뿐이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 연합뉴스
안철수 원장의 1,500억 기부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개인이 기부한 액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금액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는 안철수 원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사건의 다음을 예고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더욱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뉴시스와 모노리서치가 차기 대선 주자의 지지율에 대해 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33.7%의 지지율을 얻었는데 이는 지난 달과 비교하면 무려 14.2%가 급등한 것이다. 더군다나 주목할만한 것은 다자 간 대결의 여론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표와 공동 1위로 같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안철수 원장이 아직까지 정치권의 링 위에 본격적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안철수 원장이 이슈의 중심에 서기만 하면 대권을 바라볼만한 위치에 놓여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여론조사의 다른 수치들을 보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박근혜 전 대표가 연령별로는 50대, 60대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안철수 원장은 20대, 30대, 40대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세대별 개혁/보수 구도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지역별 득실인데 박근혜 전 대표가 경남, 경북, 충청권에서 높은 지지를 획득한 반면 안철수 원장이 서울, 경기, 전라권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호남과 수도권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대권주자가 이를 기반으로 다른 지역에서 추가적인 지지를 획득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역대 개혁 정권 성립의 모델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구도이다.

즉, 이 여론조사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안철수 원장으로 표현되는 '비정치의 정치'가 결국 야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대중의 열망은 지금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상황이 펼쳐지려는 것일까? 최근의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신당'논의들은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을 피해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박세일 선진화재단 이사장의 '보수신당 창당설'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는 단계까지 이르고 있는 것 같고 법륜스님 등이 총선 전 창당을 언급하기도 해 실질적으로 이것이 '안철수 신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는 상황이다. 한편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대통합 논의도 새로운 당의 창당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신당 창당의 열풍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비정치의 정치'에 환호하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야권의 신당 창당 논의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세대와 수도권 시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세력'의 신선함을 보여줌으로서 어필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지지를 온전히 획득하기만 하면 정권교체는 시간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일 것이다.

두 번째는 정당 내부의 기득권을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시도이다. 이는 여권의 신당창당론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박세일 이사장의 보수신당 창당이 청와대의 기획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정치권 풍문은 이러한 맥락을 반영한다. 즉, 당 외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를 흔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박근혜 전 대표와 그 지지세력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권 인사들을 모아 여권의 선수교체를 이루어 내겠다는 것이다. 최근 김문수 지사가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고 보수적 가치에 대한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과 야권에 각각 위에 설명한 것과 엇갈려 나타나는 요소는 없는가? 물론 있다. 이것은 한미FTA 정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합의 처리를 외치는 남경필 외통위원장을 비롯해 이에 호응하는 소장파들은 정치권 밖에서 정치를 평가하고 있는 층의 눈길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의원들로 이렇게 해서 중간층, 무당파, 부동층의 지지를 획득해야 차기 총선에서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야권의 경우 민주당 내 소위 온건파들의 움직임은 야권 통합에서의 기득권을 둘러싼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혁신과 통합, 진보정당 등과의 통합을 시도하며 정치권에 새롭게 나타난 대중들에게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어필할 수 있으려면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 공천 등을 필수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때문에 민주당에서 활약해온 현역 의원들이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려면 되도록 민주당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흘러가도록 속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FTA 반대'는 야권통합에서 주도권을 좌측으로 조금 더 옮겨주는 것이므로 최대한 이 국면을 빨리 끝내고 다른 의제를 중심으로 야권통합을 도모하자는 것이 이들의 계산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야권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존재 때문에 민주당의 대권 주자들이 민주당을 사수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에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손학규, 정동영 등의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어쨌든 야권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에서는 한미FTA 반대 이슈를 총선까지 끌고 가는 데에 함께할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사실 이것은 다소 시기상조인 예측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적 요소로 다룰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중들은 결국 2012년 선거에서 정권교체의 키를 안철수 원장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안철수 원장이 신당을 창당하든,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든, 아니면 야권의 누구를 지지하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이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비는 어쨌든 내놓을 카드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대선 레이스가 벌어졌을 때 야권의 누군가는 안철수 원장 지지율의 반 이상 정도는 잠식하고 있어야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던 때처럼 전국적인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화를 하든지 박원순 시장 때처럼 양보를 하든지 하는 이벤트가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민주당 내부의 온건파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밥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또 쉽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나저러나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의원은 황새를 쫓아가는 뱁새처럼 다리가 좌우로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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