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판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포함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저자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제 책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사람 등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인터뷰 대상자 중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를 부정하거나 사회주의를 강조하지는 않는다"며 "도대체 불온서적의 선정 기준을 모르겠다"고 밝혔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연합뉴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14일 오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연결에서 "저는 책에서 그저 인간의 이야기를 한 것일 뿐"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하종강 학장은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책'이라고 지목받은 것에 대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대안학교에서 박봉을 받으며 교사생활을 하는 사람, 다큐멘터리 감독, 해고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공무원 노조를 만드는 데 열심히 한 사람 등이 인터뷰 대상"이라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혹시 이것이 군대 내에서 올바른 발언을 하고 용기있게 행동하는 것을 부추긴다는 위험성이 있다고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소금꽃 나무>가 2008년에 이어 2011년에도 불온서적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제 책의 경우보다 더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하종강 학장은 "그 책은 그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것이다. 제목 역시 노동자들이 조회를 할 때 쭉 서있으면 등에 소금꽃이 핀다, 작업복 땀이 소금처럼 하얗게 핀다는 뜻"이라며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절절한 자기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득권 세력이 보기에는 마음이 좀 불편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서출판 창비가 출간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최성각의 환경에세이 <달려라 냇물아>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서도 "그분이 일하는 곳은 정치적으로 과격한 성향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보았는데, 정말 순진한 환경주의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성각씨와 같이 일했던 정상명씨는 제가 인터뷰한 책에도 포함돼 있는데, 딸을 화재로 잃고 나서 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환경운동을 하는 분이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모여진 책인데, 아마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는 게 불순하다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며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화돼 있다 보니까 그것조차 과격하고 불순하게 본 모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 책에 나온 사람들의 성향을 굳이 따지자면, 아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정도의 성향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하종강 학장은 진행자인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2008년 (불온서적) 리스트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책들이 굉장히 잘 팔렸다고 한다. 그래서 저도 하종강 학장님께 축하드리려고 한다'고 말하자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책 많이 팔리면 밥 한 번 사라'고 한다"고 응대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국방부 차원에서 공문을 내려보낸 일은 없다'며 2011년판 불온서적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공군본부 정훈공보실 관계자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국방부가 지시를 내리지 않는 이상 공군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만들기는 어렵다"며 "다만 문서가 사실이라면 부대 차원에서 개념없는 담당자가 빚은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한 상황.

이와 관련해 하종강 학장은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국방부는) 개인 장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구조, 환경, 상황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2011년판 불온서적 리스트. 노란색 부분이 2008년에 지정된 불온서적, 붉은 색 부분이 새로 추가된 19종의 볼온도서. ⓒ시사인

한편, 시사주간지 <시사IN>은 공군의 한 전투비행단에서 지난 8월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절한 서적반입 차단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공문에 딸려 있는 '불온서적 리스트'를 입수해 보도했다. 국방부는 2011년판 불온서적에 대해 부인하고 있으나, 해당 공문에는 '9월1일~13일 이들 서적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한다'는 지시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인에 따르면, 2011년 군대 내 불온서적은 2008년 23권에서 19권이 새로 추가된 총 42권이다. <국가의 역할>(장하준), <청년 노동자>(위기철), <달려라 냇물아>(최성각), <낯선 식민지 한미FTA>(이해영), <슬롯>(신경진), <길에서 만난 사람들>(하종강) 등이 '반자본주의' 책으로 불온서적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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