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KIA가 조범현 감독을 퇴진시키고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뒤 3연패한 KIA가 탈락한 것이 10월 12일이었으니 6일 만에 감독이 전격 교체된 것입니다. 조범현 감독의 계약 기간이 내년까지 남아 있었으며 KIA 프런트가 준플레이오프 탈락 직후에도 신임을 밝힌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교체입니다.

조범현 감독은 2007 시즌 종료와 함께 KIA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09 시즌에는 KIA의 창단 이후 처음으로 페넌트 레이스 1위와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각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0 시즌에는 16연패로 5위로 추락해 11월에 개최된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을 우승시키지 못했다면 경질되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올 시즌 페넌트 레이스 전반기에는 KIA를 1위에 올려놓았지만 후반기에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무기력하게 밀리며 결국 지휘봉을 놓게 되었습니다.

조범현 감독의 퇴진과 선동열 감독의 선임은 KIA 프런트보다는 그룹 최고위층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된 인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단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호랑이 사랑방’(이하 ‘호사방’)을 중심으로 조범현 감독에 대한 KIA팬들의 강력한 불만이 누적되었으며 불세출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검증된 감독인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의 영입 요구를 KIA 그룹에서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선동열 감독은 조범현 감독 시절 KIA의 최대 약점이었던 불펜진 강화에 정평이 나있다는 점 역시 영입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현욱, 권오준, 권혁,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최강의 삼성 필승 계투진을 구축시킨 것이 바로 선동열 감독입니다. 초보 감독인 류중일 감독이 올 시즌 삼성을 한국 시리즈로 직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동열 감독의 유산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따라서 KIA의 선동열 감독 임명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귀환이자 성적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조치로 호사방을 비롯한 KIA팬들은 환영 일색입니다.

KIA의 선동열 감독 영입은 LG의 감독 선임 과정과 극명히 대조됩니다. 10월 6일 삼성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박종훈 감독이 사퇴한 뒤 LG팬들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를 두 자릿수로 늘리지 않기 위한 LG 프런트의 전향적인 감독 선임을 기대했습니다. LG 트윈스의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쌍둥이 마당(이하 ‘쌍마’)뿐만 아니라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LG가 김성근, 선동열 감독과 같은 검증된 감독을 영입할 것 같다는 기대에 부푼 게시물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뒷받침하듯 10월 6일 저녁 SBS 스포츠 뉴스에서는 LG의 김성근 감독 영입이 유력하다는 보도까지 이루어졌습니다.

▲ LG의 최근 행보와는 너무나 상반된 배너 광고 문구 '언제가 고객 곁에 LG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10월 7일 오후 김기태 수석 코치의 감독 승격이 발표되자 LG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분노를 여과 없이 쌍마에 표출했습니다. 이에 LG 프런트는 10월 7일 밤 12시 경 쌍마를 사전 공지 없이 폐쇄시킨 뒤 4일 동안이나 방치했습니다. 팬들의 입을 틀어막고 의사소통을 거부한 것입니다. 폐쇄 3일째인 10월 10일에 다음날 정상화를 알리는 공지가 올라왔지만 정상화 이후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로 인해 쌍마가 폐쇄되었는지 공지하지 않았으며 관련자들을 문책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8월 소위 ‘청문회’ 당시 트위터 상에서 LG 팬들을 비웃었던 LG 구단 관계자들이 즉시 해고된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LG팬들의 분노는 케이블 TV의 한 스포츠 전문 토크쇼에서 LG 담당 기자가 LG 프런트의 전횡을 고발하자 대폭발했습니다. 매년 이맘때는 비록 LG와는 거리가 멀지만 포스트 시즌에 관한 게시물이 쌍마에 올라왔지만 올해만큼은 어이없는 감독 선임과 프런트의 전횡에 대한 분노가 쌍마를 뒤덮고 있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시즌 말 박종훈 감독 사퇴를 원하던 LG팬들의 릴레이 게시물은 방치하던 LG 프런트가 김기태 감독 선임과 프런트의 전횡을 비판하는 게시물은 속속 삭제하며 게시판 글쓰기에 제한을 가하는 벌점을 마구 남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LG의 공식 홈페이지의 ‘언제나 고객 곁에 LG는 사랑입니다’라는 큼지막한 광고 배너 문구(이 광고 배너를 클릭하면 LG 그룹의 공식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는 그야말로 지나가던 소가 웃을 지경입니다. LG 트윈스 야구단이 LG 그룹에 먹칠을 가하는 현 상황에 야구 사랑으로 이름난 LG 그룹 최고위층은 팔짱 낀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2년 전 우승을 차지했으며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 대스타 투수 출신의 검증된 감독을 새로 영입한 KIA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도 아니며 검증도 되지 않은 야수 출신의 초보 감독을 앉힌 LG를 비교하면 오히려 LG 프런트가 KIA에 비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느긋한 것처럼 보입니다. 팬들의 염원에 대한 반응 또한 극명히 대조되는 KIA와 LG의 내년 시즌 성적이 어떻게 갈릴지 주목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