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작가의 '천일의 약속'(이하 '천약' 표기)이 첫 방송됐습니다. 시작한 지 불과 1분 만에 김래원과 수애의 베드신이 나와 '이건 또 뭐야?'하고 실망했습니다. 천하의 김수현도 시청률 때문에 첫 회부터 베드신부터 나오는 건가 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극중 박지형(김래원)과 이서연(수애)의 지독한 사랑에 그 베드신을 이해할 만했으니까요. 시청률을 위해 쓴 무리한 베드신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베드신을 많이 쓰는데요, '천약'이 베드신을 쓴 건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그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천약' 1회는 스토리 전개도 빠르고 김래원과 수애의 대사도 많아 정신없이 지나갔는데요, 베드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볼까요?
나중에 보니 서연은 지형이 향기와 10년 동안 사귀어왔고 곧 결혼할 사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서연은 결혼할 때까지 만이라도 지형을 자신의 남자로 만나고 싶어했는데요, 결혼날짜가 잡혔으니 이제 쿨하게 이별해야하는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다음 달에 결혼한다는 지형의 말에 서연은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그녀의 아픔을 지형이 왜 모르겠어요. 지형의 결혼 소식에 서연은 그동안 숱하게 이별 연습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미 무너지고 있었어요. 서연말대로 지형 결혼 전까지 도둑질 사랑을 하려했는데, 그 도둑질을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된 것이 슬픈 겁니다.
여기까지 보면 지형이 두 여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나쁜 양다리남으로 생각되는데요, 지형은 처음에 서연과 결혼하려 했는데 서연이 원치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형과 가정형편이 너무 차이가 나서 통속적인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연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도망가서 남동생과 고모네집에서 자랐습니다. 반면 지형은 부모가 모두 의사고 집안도 빵빵하기 때문에 서연이 며느리로 들어가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지형을 사랑하면서도 차마 결혼까진 생각지 못한 겁니다. 사랑하지만 집안 배경 때문에 서연은 지형을 붙잡지 못한 거지요.
지형의 아버지가 향기 부모가 이사장으로 있는 병원의 병원장이기 때문에 부모들끼리 결혼을 시키려한 것인데, 지형은 향기와 결혼할 뜻이 없습니다. 부모님을 따르자니 서연이 울고, 서연을 사랑하자니 부모님에게 불효를 저지르니까요. 결국 지형은 어머니(김해숙)에게 '향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냐?'며 폭탄선언을 합니다. 강 여사는 지형의 말에 '내가 잘못 들은 거지?'라며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을 짓지만 지형은 결코 서연을 버릴 수 없다는 의지가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이게 첫 회 엔딩 장면이었습니다.
첫 방인 만큼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를 위한 장치들도 많이 보였는데요, 서연이 약을 먹고 건망증까지 보인 건 왜 그럴까요? '천일의 약속' 제목은 김래원과 수애의 3년간의 사랑과 추억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서연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둔 채 고모네집에 가는 걸 보니 기억상실증에 걸려 천일간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회 예고편을 보니 지형의 어머니 강수정이 벌써 서연을 만나 교제를 반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런 대사가 나오죠. '부모 없는 여자는 죄악이야' 부모를 잃은 건 슬프고 힘든 일이지 죄악은 아니잖아요. 이 드라마가 얼마나 지독한 사랑과 아픔을 그릴지 짐작이 가네요.
잘 키운 아줌마 열 처녀 안 부럽다. 주부가 바라보는 방송 연예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깐깐하다. 블로그 http://fiancee.tistory.com 를 운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