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열풍이 거세다. 영화는 성공했고, 인화학교 문제에 대해서 너도나도 떠들기 시작했다. 전면 재수사를 위한 청원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인화학교는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영화 한 편이 마침내 세상을 바꿨다. 정말 다행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도가니 열풍을 고운 시선만으로 볼 수는 없다.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은 2000년부터 발생한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에 발생한 일이다. 그때 당시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이 사건은 2005년에 성폭행 사실이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에 제보되면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에도 일반 대중은 이 사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5년 11월 1일 PD수첩에서 이 사건을 보도한 것이다. 마침내 이 끔직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이 사건은 일정 수준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다. 그러나 2007년 어이없는 판결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만약 국민들이 지금처럼 공분했었더라면 그렇게 가벼운 판결로 끝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2009년에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가 출판된다. 소설 도가니는 수십만 권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야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다. 가장 직접적인 경험을 안겨 줄 수 있는 영화까지 그 전달매체가 바뀌지 않았더라도, 이미 PD수첩 보도만으로도 이 사건의 끔찍함을 알았을 것이다. 그때 지금처럼 분노가 거세게 일어났더라면 어쩌면 죄인들이 버젓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일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지금처럼 분노했다면 이 영화는 지금과는 다른 내용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사회복지법인'에 공익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려 했다. 공익 이사가 있으면 적어도 친인척 족벌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외부 감독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개신교계,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해 3월 신경하 감리회 감독회장과 만나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와 유사한 개념의 '공익 이사제' 도입 문제를 두고 기독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국민일보 2007년 3월 9일자가 보도했다.

결국 핵심은 너무나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래되어버린 얘기가 다시 화제가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영화라는 가장 친근한 대중매체까지 이 이야기가 흘러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장 깊은 관심사이자 주요한 관심사인 연예계로 이야기가 흘러들어온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너무 많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비약적인 결론일 수 있지만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관심을 접는 반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나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왜 대한민국에 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연예인들의 사건이 터져나오는지,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나 너무나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의 일이 반복되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지를 이제는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스스로도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글쟁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바로 도가니에 관한 내용이 이와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키리크스에 나오고 있는 수많은 문서들, 그리고 도가니 사건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어렵더라도 일일이 찾아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가니와 같은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도가니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뒷북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마저도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지 말고,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지 않는다면 우린 앞으로 또 너무 늦게 분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는 것이, 이 사건의 피해자분들과 이 사건을 어떻게든 알리려 노력해온 분들과 공지영 작가와 영화제작진 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일 것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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