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한 TBS에서 비정규직 채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몇몇 프로그램에서 프리랜서 채용공고가 진행됐고, 기간제 막내작가 자리에는 프리랜서 작가가 채용되고 있다. 간부회의에서는 파견직 사용을 건의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TBS가 다시 '비정규직 일터'로 퇴행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이 제기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이하 TBS지부)는 지난달 26일 발간한 노보를 통해 TBS가 여전히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재단' 출범 이후 회사 인력 구조 50% 이상을 차지하던 비정규직·프리랜서 인력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TBS에서 비정규직 채용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TBS 사옥 전경 (TBS)

TBS는 지난 8월부터 일부 프로그램에서 프리랜서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 TBS는 8월 <그대에게> 편집 PD, 9월 <그대에게> 조연출, 11월 <코로나19 정규 프로그램> 막내작가, <김지윤의 이브닝쇼> 후속프로그램 제작보조원 등을 모두 프리랜서 채용 공고로 띄웠다. TBS지부는 "올해 초와 지난 6월 TBS가 크게 두 차례 정규직원 채용을 진행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낸 뒤 불과 2달 만에 프리랜서 채용이 또 고개를 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간제 막내작가 자리는 프리랜서 작가로 대체되고 있다. 최대 7명에 달하던 기간제 막내작가는 현재 1명 뿐이다. TBS는 재단법인 출범을 앞둔 2018년 8월, 국내 최초로 신입 막내작가들과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해 화제에 올랐다. 프리랜서 시절 140만원 안팎의 돈을 받던 막내작가들에게 서울형 생활임금(월 192만원)이 적용됐다. 또 작가들은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와 함께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수당을 보장받게 됐다. 그런 TBS에서 프리랜서 작가 채용이 사실상 부활한 것이다. (관련기사▶tbs, 방송계 최초로 방송작가 직접고용 나서)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언론인지망생 인터넷카페 '아랑'에 올라온 TBS 채용공고

이에 대해 TBS지부는 "명백한 정책 후퇴이자 기만"이라고 했다. TBS지부는 "신규채용 막내작가도 기간제로 채용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게 해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사측은 '막내작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PD와 메인작가가 할 일을 후배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말로 막내작가의 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며 그 사이 <신박한 벙커>, <코로나 특방>, <킹슈맨>, <팩트인스타> 등 주요 TV프로그램 막내작가 자리가 프리랜서로 채워졌다고 밝혔다.

TBS지부는 "막내작가 채용이 주먹구구로 진행되고 있다는 노조의 항의에 경영지원본부는 '프리랜서 막내작가 채용을 지양하고 있지만 부서별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채용 진행을 제지할 수는 없다'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이것이 비정규직 일자리의 정규직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자평하는 TBS의 실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TBS지부는 일부 부서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1일 계약' 형태로 외부 인력에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TV제작본부 영상제작팀·TV운영팀·시사교양팀 등에서 신규채용 없이 '1일 계약' 형태의 프리랜서 업무 위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TBS지부는 경영지원본부가 비정규직 인원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지원본부 자료에 상당수 사내 인원이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TBS지부는 "보도본부의 경우 프리랜서 편집리포터 2명이 사측이 집계한 현황에서 빠져 있었고, TV제작본부의 경우 <더룸>, <민생경제연구소>, <뉴스공장 라이브> 등의 프로그램에서 프리랜서 PD와 AD, 촬영보조, 제작보조 등이 대거 빠져 있었다"며 "경영지원본부는 비정규직 현황 파악도 허술히 하고 있는 데다, 심지어 '각 부서가 자체 계약으로 하는 일이라 손을 쓸 수 없다'는 식의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했다.

TBS 비정규직 인력 현황 (표=전국언론노조 TBS지부)

이런 가운데 TBS 확대간부회의에서는 '파견직' 사용 주장이 나오고 있다. TBS지부가 공개한 지난달 2일 TBS 확대간부회의록에 따르면, TV제작본부장은 "조연출과 촬영보조 인원이 현재 한 명도 없다. 조연출, FD, 카메라 보조를 파견직으로 사용 가능한지 문의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강택 TBS 대표는 "파견직을 사용하자는 이야기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한 TBS가 다시 몇 달만에 비정규직을 늘릴 수 없다"며 "불가피성이 있어야 하고 제한적으로 해야한다. TBS의 정체성과도 관련된 문제라 특정 부서에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TBS지부는 "비정규직 일자리의 정규직화를 이룬 TBS에서 또 다시 비정규직을 양산하자는 주장이 간부회의에서 당당히 나온다는 것을 보면 TBS 임원진이 아직도 얼마나 안이한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단 번에 알 수 있다"면서 "회사는 인력이 필요하면 채용을 해야한다. 언제까지 외부 인력에 의존하면서 하루하루 방송제작을 때울 것인가"라고 촉구했다.

한편, TBS에서는 이달 둘째 주 무렵 촬영보조, AD, FD 등 방송 필수인력 13명의 계약이 만료된다. 이들은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사업에 따라 6개월 단위로 채용된 인력으로 전해졌다. TBS지부는 "사내 각 제작부서는 이들 인력 없이 업무를 이어나갈 수 없다. 회사는 결국 각 부서 차원에서 또 프리랜서 채용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AD, FD, 촬영보조는 방송사의 '필수' 인력이므로 정규직으로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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