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4.19혁명 단체 등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승만 다큐의 일부 내용을 변경했지만, "여전히 독재자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것에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 지난해 7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후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23일 KBS 1TV는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의 첫 번째 편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28일부터 30일까지 밤 10시에 방송한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은 각각 '1부 개화와 독립' '2부 건국과 분단' '3부 6.25와 4.19'로 구성된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이승만 다큐는 '1부 개화청년 이승만' '2부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3부 대한민국을 건국하다' '4부 이승만과 한국전쟁' '5부 제1공화국의 명과 암' 등으로 구성돼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라는 뉴라이트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이 일자 최종 내용에서는 '건국인가 분단인가'라고 표현하는 등 프로그램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수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재자 이승만 미화에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립운동단체, 4.19혁명 단체 등 101개 단체로 구성된 '친일ㆍ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학계 등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KBS 측이 제시한 기획안을 살펴본 결과 "지난 5부작에 비해 일정하게 변경한 것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독재자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것에 다름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승만이 권력장악을 위해 자행했던 야비한 행동과 김구 암살 관련 의혹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관련된 언급이 없다는 점 △정부 수립 이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역사를 파탄낸 범죄적 행동, 인권탄압, 고문, 학살 등 반민주적 만행에 대한 언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 △부정선거와 부패행위가 대한민국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여전히 부족한 점 등이 지적됐다.

비대위는 "이승만의 역사적, 사회적 평가는 1960년 4.19 민주주의 혁명에 의해 가장 엄정하게 평가되고 단죄됐다"며 "이는 무엇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역사의 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왜 지금 시점에서 이승만 미화 다큐를 굳이 공영방송 KBS에서 방송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일부 뉴라이트와 친일세력을 대표로 하는 역사왜곡의 움직임에 KBS가 적극 부역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이승만 다큐 방송은 아무런 실익도 없고,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뿐"이라며 "지금이라도 이승만 미화다큐 방송 방침을 전면 중단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만약 방송 강행시 그 책임은 온전히 김인규 사장에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오늘(27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독재자 이승만 미화다큐 강행 KBS 규탄 대국민대회'를 열 예정이며 오후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이승만 미화다큐 강행 규탄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28일 오전 11시에는 서울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이승만 미화 다큐 중단을 호소할 계획이다.

한편, KBS 내부에서도 이승만 다큐 편성을 즉각 취소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KBS 새 노조(위원장 엄경철)는 "이승만 다큐의 꼼수 편성을 당장 취소하라"며 "이승만 미화 논란 속에서 허겁지겁 9월 안에 방송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만약 특보 사장이 진심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방송을 강행한다면 오직 '심판' 만이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KBS 사측이 백범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후속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꼼수"라며 "후속인물로 갑자기 김구 선생을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승만 다큐 후폭풍이 무서워 물타기용으로 김구 선생을 긴급히 선정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용길 콘텐츠본부장이 26일 KBS PD협회 긴급총회에 참석해 "3,4편의 인물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을 확정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서도 "그동안 후속 인물을 선정하라고 몇개월 째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더니 며칠 사이에 후속 인물들을 쏟아내고 있다"며 "사측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인물들을 제작진과 상의없이 자의적으로 선정해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 노조는 "이승만 다큐는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전체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하고, 이에 걸맞는 후속인물들을 선정한 이후에 방송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당장 방송해야 할 기획은 이승만 다큐가 아니라 정율성 다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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