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주창해 온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과 황철증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 왔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년 넘게 각종 금품을 받아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신재민 전 차관은 "내가 그 사람 10년 넘게 알고 온 것밖에 죄가 더 있느냐"고 했다. ‘최시중 위원장이 자랑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최고의 인재’라고 불리는 황철증 통신정책국장 역시 컴퓨터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윤아무개 씨로부터 ‘미국 유학 중인 자녀 학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 "우리 둘의 관계는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거다"고 했다.

▲ 황철증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장(좌)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우)
'비즈니스 프렌들리' 차관과 '비즈니스 프렌들리' 국장.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정확히 일치한다. 기업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상황에 대한 두 고위 공직자의 항변은 너무나도 똑같다. '돈은 받았지만 별 문제 없다'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의 태도도 그렇고, 친구사이일 뿐이고 적당한 친교 차원에서 돈이 오갔던 것이지 대가성은 전혀 없어 억울하단 입장까지 완전 판박이다. 아마도 차마 하지 못한 얘기 가운데는 이런 얘기가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비즈니스맨 프렌들리 해주는데 공짜로 해주냐"

종합하면 이렇게 된다. 그들은 모두 죄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의장을 지내셨던 김형오 의원이 성희롱 유죄 판결을 받은 강용석 의원을 두둔하며 "죄 있는 자 이들에게 돈을 던지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고위 관료로서 비즈니스와 프렌들리하게 지내라는 국정운영 방향에 충실했을 뿐, 이들은 죄가 없다. 단지 친한 사이인지라 주겠다는 돈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았을 뿐이다. 비록 돈을 받은 횟수와 강도가 점점 세지긴 했지만 전혀 강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두 고위공직자들에게 수천에서 수십억 원의 돈을 건넨 기업인들은 둘 다 망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그저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기만 했을 뿐, 이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생생한 물증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안다. 이 순간 당신을 스치고 지나간 억눌러지지 않는 분노와 은하수의 별과 같은 짜증들이 무엇일지. 돈을 건네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렇다면 왜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는 '선의'로 돈을 준 것뿐인 교육감은 구속되어 있는지 답답할 것이다. 이런 답답하긴. 신재민 전 차관과 황철증 국장은 비즈니스맨에게 돈을 받은 것이니 국정 운영 목표인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신에 입각한 활동을 한 것이고,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없이 돈을 준 곽 교육감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상관없는 인간적 감정대로 행동했으니 처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26일 <뉴시스>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이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 등 아무 근거 없이 '돈을 줬다'고만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수사 측면에서 볼 때 (이 회장의 폭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 전 차관을 소환할 계획이 없고, 이 회장의 재소환 여부 역시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단 입장이다. 신 전 차관이 이럴진대 황철증 국장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신 전 차관이 돈을 받은 스케일에 비하면 황 국장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도는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황 국장은 고작해야 애들 유학비나 받고, 지갑이나 털어가고, 법인카드로 커피값이나 계산한 잡스런 수준이다. 역시, 차관과 국장은 비즈니스맨과 우애를 맺는 수준이 좀 다르다. 이 회장은 자신이 스폰을 한 게 신 전 차관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신 전 차관보다 높은 고위 관료와는 더 센 우애를 맺었다고 했는데, 그게 누굴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이래서 '레임덕'인가 싶다. 한나라당이 이상하다. 말을 안 듣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실천한 관료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한나라당은 딴 소릴 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에서 청와대를 향해 "정권 후반기에 권력비리, 친인척비리, 측근비리, 고위공직자 비리, 이 모든 사항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며 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했다. 친박계인 유승민 최고위원 역시 홍 대표의 발언에 적극 공감하며, "지금 터진 이 문제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차라리 "청와대가 특단의 기구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단의 대책과 특단의 기구는 무엇일까? '특검' 이외에는 없다.

아니 '특검'이라니, 대체 불손하게 뭘 특검하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제 아무리 막돼먹은 여당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국정 지표 자체를 '특검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러면 '어륀지'도 특검하고 '고소영'도 특검하고, 소망교회는 국정조사 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을 나무란 것도 그렇다. 족발의 원조가 장충동에 있다면, 스폰서의 원조는 누가 뭐래도 검찰청이다. 대통령의 말씀이 있기 훨씬 전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전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온 검찰이다.

신 전 차관이나 황 국장이 받은 스폰의 내역들은 어떤 검사라면 이미 수년 전부터 관행처럼 받고 있는 것들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룸살롱에서 술 접대받고 만날 때마다 용돈 주는 것이야 검사 입장에선 스폰서라고 할 것도 없는 만연한 우정의 형태일 뿐이고, 대신 집값 내주고, 때마다 골프장 부킹해주고 경우에 따라 차도 렌트해주고 가족들 위장 취업시켜 월급도 좀 주고, 또 뭘 주고 줄 게 딱히 없으면 무얼 더 주어야 하나 고민하고 마땅치 않으면 빌려서 해주고 다른 걸 해달라면 군말 없이 또 해주고 뭐 등등. 이명박 정부는 스폰을 받은 혐의로 잘린 바로 그 검사가 곧장 직위를 회복해달라고 당당히 소송을 하는 뭐 그런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닌가.

스폰서 기자, 스폰서 국장, 스폰서 차관, 스폰서 검사가 옹기종기 모여 누가 누가 더 스폰을 많이 받았나를 뽐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정부. 방통위 국장이 화장실에서 기업인의 지갑을 뺏어 돈을 강탈해가는 참 대단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오렌지라고 쓰고 어륀지라고 읽고, 프렌들리라고 쓰고 스폰서라고 읽는 관료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권력.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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