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주창해 온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과 황철증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 왔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년 넘게 각종 금품을 받아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신재민 전 차관은 "내가 그 사람 10년 넘게 알고 온 것밖에 죄가 더 있느냐"고 했다. ‘최시중 위원장이 자랑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최고의 인재’라고 불리는 황철증 통신정책국장 역시 컴퓨터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윤아무개 씨로부터 ‘미국 유학 중인 자녀 학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 "우리 둘의 관계는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거다"고 했다.
종합하면 이렇게 된다. 그들은 모두 죄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의장을 지내셨던 김형오 의원이 성희롱 유죄 판결을 받은 강용석 의원을 두둔하며 "죄 있는 자 이들에게 돈을 던지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고위 관료로서 비즈니스와 프렌들리하게 지내라는 국정운영 방향에 충실했을 뿐, 이들은 죄가 없다. 단지 친한 사이인지라 주겠다는 돈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았을 뿐이다. 비록 돈을 받은 횟수와 강도가 점점 세지긴 했지만 전혀 강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두 고위공직자들에게 수천에서 수십억 원의 돈을 건넨 기업인들은 둘 다 망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그저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기만 했을 뿐, 이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생생한 물증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안다. 이 순간 당신을 스치고 지나간 억눌러지지 않는 분노와 은하수의 별과 같은 짜증들이 무엇일지. 돈을 건네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렇다면 왜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는 '선의'로 돈을 준 것뿐인 교육감은 구속되어 있는지 답답할 것이다. 이런 답답하긴. 신재민 전 차관과 황철증 국장은 비즈니스맨에게 돈을 받은 것이니 국정 운영 목표인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신에 입각한 활동을 한 것이고,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없이 돈을 준 곽 교육감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상관없는 인간적 감정대로 행동했으니 처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26일 <뉴시스>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이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 등 아무 근거 없이 '돈을 줬다'고만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수사 측면에서 볼 때 (이 회장의 폭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 전 차관을 소환할 계획이 없고, 이 회장의 재소환 여부 역시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단 입장이다. 신 전 차관이 이럴진대 황철증 국장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신 전 차관이 돈을 받은 스케일에 비하면 황 국장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도는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황 국장은 고작해야 애들 유학비나 받고, 지갑이나 털어가고, 법인카드로 커피값이나 계산한 잡스런 수준이다. 역시, 차관과 국장은 비즈니스맨과 우애를 맺는 수준이 좀 다르다. 이 회장은 자신이 스폰을 한 게 신 전 차관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신 전 차관보다 높은 고위 관료와는 더 센 우애를 맺었다고 했는데, 그게 누굴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이래서 '레임덕'인가 싶다. 한나라당이 이상하다. 말을 안 듣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실천한 관료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한나라당은 딴 소릴 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에서 청와대를 향해 "정권 후반기에 권력비리, 친인척비리, 측근비리, 고위공직자 비리, 이 모든 사항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며 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했다. 친박계인 유승민 최고위원 역시 홍 대표의 발언에 적극 공감하며, "지금 터진 이 문제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차라리 "청와대가 특단의 기구를 만들어 선제적으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단의 대책과 특단의 기구는 무엇일까? '특검' 이외에는 없다.
아니 '특검'이라니, 대체 불손하게 뭘 특검하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제 아무리 막돼먹은 여당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국정 지표 자체를 '특검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러면 '어륀지'도 특검하고 '고소영'도 특검하고, 소망교회는 국정조사 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을 나무란 것도 그렇다. 족발의 원조가 장충동에 있다면, 스폰서의 원조는 누가 뭐래도 검찰청이다. 대통령의 말씀이 있기 훨씬 전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전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온 검찰이다.
신 전 차관이나 황 국장이 받은 스폰의 내역들은 어떤 검사라면 이미 수년 전부터 관행처럼 받고 있는 것들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룸살롱에서 술 접대받고 만날 때마다 용돈 주는 것이야 검사 입장에선 스폰서라고 할 것도 없는 만연한 우정의 형태일 뿐이고, 대신 집값 내주고, 때마다 골프장 부킹해주고 경우에 따라 차도 렌트해주고 가족들 위장 취업시켜 월급도 좀 주고, 또 뭘 주고 줄 게 딱히 없으면 무얼 더 주어야 하나 고민하고 마땅치 않으면 빌려서 해주고 다른 걸 해달라면 군말 없이 또 해주고 뭐 등등. 이명박 정부는 스폰을 받은 혐의로 잘린 바로 그 검사가 곧장 직위를 회복해달라고 당당히 소송을 하는 뭐 그런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닌가.
스폰서 기자, 스폰서 국장, 스폰서 차관, 스폰서 검사가 옹기종기 모여 누가 누가 더 스폰을 많이 받았나를 뽐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정부. 방통위 국장이 화장실에서 기업인의 지갑을 뺏어 돈을 강탈해가는 참 대단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오렌지라고 쓰고 어륀지라고 읽고, 프렌들리라고 쓰고 스폰서라고 읽는 관료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권력. 이명박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