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부결시켰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 복잡한 사건이다. 나 자신이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활동했고, 2008년 분당 시기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과정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그 소회가 남다르다.

하지만 내부에서 함께 부대꼈던 사람들이 아니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상황이 무엇 때문에 벌어졌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전망해보기로 한다.

우선 이 논의가 시작된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도 민주노동당도 지금 이대로 당세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의 결과는 진보신당에게는 사실상 당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는 점을, 민주노동당에게는 소위 민주, 평화, 개혁세력과 함께 행보를 하지 않으면 2012년 국면에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키기는 것이었다.

▲ 진보신당 조승수대표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6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통합을 목표로 열린 진보신당 2011년 2차 임시 당 대회에서 자리를 같이 하고 있다.ⓒ연합뉴스
2012년의 태풍은 국민들의 '정권교체'를 향한 열망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바람은 민주당에게는 기회의 요인이지만 진보정당에게는 위기의 요인이다. 정권을 교체해야 하므로 가장 경쟁력이 강한 정치세력에게 기회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논리에 진보정당에게 가야 할 기회가 모두 민주당으로 휩쓸려갈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 진보정당은 오랫동안 이러한 논리와 싸워왔다. 92년의 백기완과 97년의 권영길이 자신들이 받아야 할 지지를 온전히 다 받을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핵심은 대선 전술이다. 범민주당 계열 후보를 지지해주느냐 마느냐이다. 진보신당은 이런 입장에 부정적이고 민주노동당은 여기에 대단히 긍정적이다. 이런 논란은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기 전에도 당내에서 벌어지던 논란이었다. 당시 당내의 자주파는 상대적으로 선거 전술에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평등파는 원칙적 입장을 중시하는 편이었다. 평등파가 갈라져 나와 진보신당을 창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보면 양측의 입장 차이가 이해가 될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합당은 이 대선 전술에 대한 어느 정도의 교감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점을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는 잘 알고 있지만 2012년을 진보진영 독자 후보로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새로운 활로가 열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물론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고민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각 지역별로 나누어진 계파들이 서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상황에서 선거연합 등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무슨 말이냐면, 민주노동당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광주전남권의 인사들 같은 경우 현실적인 고민의 종류가 남다를 것이라는 얘기다.

모두가 알다시피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호남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과는 달리 민주당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즉, 다른 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을 이기기 위해 민주당을 포함한 선거연합을 진행해야 하지만 광주전남지역에서는 민주당을 포함한 선거연합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당선되는데 일부러 진보정당 몫의 지역구를 할당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려면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을 다 뭉쳐서 한 판 크게 붙어야 한다. 진보신당까지 다 뭉치면 가장 좋지만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 양측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지지율이 괜찮게 나오는 국민참여당과 손을 잡아야 선거연합이 수월하다. 이렇게 해야 민주노동당의 광주전남권의 인사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연합뉴스
2010년 7월 광주 남구 보궐선거와 2011년 4월 순천 보궐선거의 결과는 많은 광주전남권 인사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광주 남구에서는 민주노동당 오병윤 후보가 거의 민주당 후보를 위협할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고 순천 보궐선거에서는 물론 민주당이 후보를 안 낸 덕이긴 했지만 국회의원을 한 사람 배출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각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각 계파들도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입장을 달리했다.

하지만 어쨌든 당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에서 통합안을 가결시킬 수 있는 선은 2/3 이상의 대의원은 이미 확보했다는 계산을 끝내놓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안이 가결되지 못했던 것은 노회찬, 심상정의 진보신당 탈당과 권영길 의원의 현장 연설 덕분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특히 권영길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 맬 만한 것이었다. 그는 참여정부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예를 들며 '용서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라고 말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하면 민주노총은 분열될 것이고 또 하나의 진보정당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상의 협박이 주효했다는 말도 나온다. '또 하나의 진보정당'이란 아마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 부결 이후 진보신당을 탈당한 노회찬, 심상정 의원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제3지대에 있는 노회찬, 심상정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민주노총 일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그림이 일각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말은 민주노동당의 결정 이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 바로 이곳임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의 통합안 부결 이후 탈당하여 외곽에서 진보대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에서 국민참여당 통합안이 부결된 이 때 그냥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슈의 중심에 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외곽에서 무언가를 해야 진보신당에서 이들의 입장을 따르던 사람들이 계속 탈당할 수 있고 민주노동당 내의 국민참여당 통합 반대 여론을 환기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뭔가를 예측하는 것이 아직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는 박원순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이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하였기는 하지만 어차피 야권의 후보단일화 레이스에 뛰어들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 결과로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로 단일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박원순 이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진보진영 다수와도 얘기가 잘 통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야권의 여러 인사들이 두루 모여 힘을 합쳐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이루어 낸다면 2012년에 모두가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미리 연출하며 진보대통합의 가능성을 많은 사람들 앞에 또 보여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세력의 성장과 발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든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