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미국 여론조사 업체들과 주요 언론이 4년전 대선에 이어 올해 대선에서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저학력 백인' 등의 반영비율을 높여 여론조사 정확도를 제고했다는 미 여론조사 업체들이 또 다시 '샤이 트럼프'를 잡아내지 못해 선거기간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미 대선판도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간 접전이 벌어지면서 5일 국내 주요언론은 미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의 예측실패를 조명했다. 4년 전 대선에서 미 여론조사 기관과 주요언론 대다수가 선기기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확률이 90%라고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미 여론조사기관들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의 낙승을 전망했다. 미 여론조사업체 파이브서티에잇(FiveThirtyEight)이 투표 당일인 3일 새벽(현지시간) 바이든 후보의 승리 확률을 89%로 전망한 게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즈, CNN 등 미 주요매체들은 지난 대선 경험한 여론조사 악몽에 당선확률 공개를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바이든의 승리를 유력한 전망 중 하나로 보도했다. 그러나 개표시작과 함께 트럼프와 바이든 간 초박빙 판세가 나타났다. 개표가 이어지면서 다수의 경합주에서는 여론조사와 달리 트럼프가 크게 선전했다.

11월 5일 국내언론은 4년 전 미국 대선 당시 여론조사 충격을 거론하며 사실상의 예측실패를 조명했다.

이에 5일 국내언론은 4년 전 미 대선 당시 여론조사 충격을 거론하며 사실상의 예측실패를 조명하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국내 주요언론 관련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 <바이든이 낙승한다더니… 또 빗나간 여론조사>
경향신문 <경합주 예측,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국일보 <또 빗나간 여론조사… 사이 트럼프 예상보다 많았다>
서울신문 <공화·민주 절묘한 힘의 균형… 민주 ‘블루 웨이브’는 없었다>
조선일보 <빗나간 여론조사… 숨어있는 '샤이 트럼프' 또 못봤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보완했다지만 "이번에도 샤이 트럼프 과소평가">
동아일보 <개표 중반까지 혼전… 여론조사 또 빗나가나>

한겨레는 "4년간 갈고닦아온 미국 여론조사업체와 언론의 '명예회복'을 향한 꿈은 멀어지고 있다"며 "4년 전인 2016년 대선 때의 충격을 떠올리게 했다. 미 언론 다수가 이번엔 바이든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월스트리트저널, NBC, 리얼클리어폴리틱스, 파이브서티에이트 등의 바이든 우세 전망을 열거하며 "그러나 바이든에 유리한 우편투표 개표가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출구조사와 개표 상황은 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다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번 대선에서 CNN·ABC·CBS·NBC 등 주요 방송사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여론조사업체 에디슨 리서치와 함께 출구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우편·사전투표 규모를 고려해 전화 인터뷰 등 보정작업을 거쳐 정확한 결과를 끌어낼 것으로 밝혀왔다"며 "그러나 예측은 예측일 뿐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올해 대선의 여론조사가 이전보다 예측이 더 어려운 이유로 '모바일 시대', '여론조사를 가장한 선거운동과 그에 대한 불신', '코로나19' 등을 짚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번에도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본심을 숨긴 '샤이 트럼프'가 예상보다 많았다"며 "선거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경합주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들도 엎치락뒤치락하는 개표 결과에 하루종일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4년 전 여론조사기관들은 전국단위 득표율보다는 주별 예측을 잘못해 실패했다. 당시 트럼프 지지성향을 밝히기 꺼리는 '샤이 트럼프'의 규모를 낮잡아봤고,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해당 주 배정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간접선거제도의 특성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경합주를 중심으로 트럼프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유권자 비중을 높이는 등 조사설계를 보정했다. 입소스와 퓨리서치센터는 거주지·인종·교육수준별 가중치를 변경해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골 거주·백인·고졸 이하 유권자의 가중치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일 게재한 대선후보 당선확률 인포그래픽. (허핑턴포스트 사이트 캡쳐)

조선일보는 플로리다, 펜실베니아 등 여러 경합주에서 개표 중반 두 후보가 접전을 보이거나 전망과 다른 결과들이 나온 점을 짚으며 "여론조사에서 열세로 집계되는 일이 잦았던 트럼프는 '여론조사는 가짜'라고 해왔다. 바이든 측도 여론조사에 대한 경계심을 내보였는데, 오말리 딜런 바이든 캠프 선대본부장은 '핵심 경합주에서 경쟁은 TV 등에서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좁혀져 있다'고 말한바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전문가들은 보완책이 조사 정확도를 높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됐겠지만 '샤이 트럼프'를 수면 위로 완전히 끌어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고있다"며 "무엇보다 4년 전보다 정치 양극화가 더 심해진 영향이란 분석"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4년 전 트럼프 지지를 말하면 개탄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여서 더 숨을 수밖에 없다"는 여론조사기관 트라팔가의 로버트 케헬리 수석위원 발언을 인용했다. 동아일보는 "여론조사업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절대 찍지 않겠다는 '네버 트럼프' 표심을 과대평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했다.

트럼프가 예상보다 선전한 배경 중 하나로는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방역 문제보다는 경제문제를 후보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다.

3일 보도된 여론조사업체 에디슨리서치의 미 대선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을 '경제'라고 답했다. 유권자의 35%가 '경제'라고 응답했고, 이어 인종차별 20%, 코로나19 억제 17%, 건강보험법 10%, 범죄·폭력 10% 순으로 유권자 관심사가 나타났다.(에디슨리서치 출구조사는 CNN, ABC, CBS 등 다수 언론사들의 의뢰로 실시됐다. 3일 일찍 투표를 마친 이들에게 전화로, 혹은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미국 민주당의 전략적 미스는 '방역이 경제다'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지지 못한 것"이라며 "방역을 잘한 나라들이 경제성장률이 좋다. 대표적으로 한국이 그렇다. 그런 메시지를 던지면서 '방역이 경제니까 우리를 믿고 따라오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면서 이런 혼전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트럼프는 소셜미디어를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메시지에 동화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며 "트럼프의 메시지를 단순히 보고 정보만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까지 전달받고 동조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간과되어왔기 때문에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