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스포츠를 비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기하는 방식도 다르고, 각 스포츠 나름대로의 매력, 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야구계의 전설로 통했던 옛 선수들의 별세로 인한 추모 분위기를 보면 축구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부러움이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30년을 기념해 전설을 기억하고 옛 팀을 추억하는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야구와 다르게, 축구는 그럴 만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프로야구의 전설이었던 장효조, 최동원 두 야구 영웅의 잇따른 별세는 야구팬들에 큰 충격과 아픔을 줬습니다. 불과 몇 달 전, 공식석상에서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다르게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뜬 소식이 전해진 순간 그들의 활발했던 모습을 기억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마음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야구인들과 팬들은 지금의 아픔보다 화려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영웅을 재조명하려 했습니다. 프로야구 수장인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부터 "프로야구의 전설들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 설립을 당장 추진하겠다"라고 밝히는 등 프로야구 역사 발전에 기여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고 기리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옛 전설들을 그대로 묻히게 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어나가면서 올드팬들에게는 향수를,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도 이 영웅들이 기억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프로야구는 몇 년 전부터 한국야구위원회, 각 구단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 옛 전설들을 직접 초청하는 크고 작은 행사를 치러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올해 역시 올스타전에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를 선정해 기념행사를 벌이기도 했으며, 1982년 원년 우승팀 두산 베어스는 박철순, 김경문, 김우열, 김유동, 김영덕 감독 등 원년 멤버를 개막전에 초청해 챔피언 반지 수여식을 해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올드팬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점차 많아지고 있는 젊은 층 팬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눈에 띕니다. 옛 유니폼을 입고 몇 차례 경기에 나서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이 유니폼을 입는 젊은 층도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제는 제법 나이를 먹은 프로야구가 소중했던 과거도 챙기면서 화려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셈입니다.

▲ 프로축구 K리그 (사진: 김지한)
하지만 내년에 30년 세월을 맞이하는 프로축구 K리그에는 이런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프로야구와 양대 산맥을 이어왔다고 하지만 출범 초기인 1980년대에 대한 추억, 기억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아시아 최초로 출범한 프로축구의 명성과도 거리가 있는 모습인 게 사실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이라도 1980년대 프로축구에서 어떤 선수들이 얼마나 활약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닥공 축구'로 유명한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이 1986년 최우수선수(MVP) 출신 선수이자 베스트11에 3번이나 이름을 올린 유명 스타 플레이어였던 것도, '축구계 패셔니스타'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 1988년 MVP, 베스트11 2회 출신의 뛰어난 수비수였던 것도, 조광래 현 축구대표팀 감독이 1983년 초대 베스트11 미드필더 출신인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가끔 1985년 득점, 도움왕을 동시에 휩쓸며 프로축구를 뒤흔들었던 태국 선수 피아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딱히 1980년대에 떠올랐던 영웅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팀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프로축구는 1980년대 잇따라 대회방식을 바꾸고 명칭까지 바꾸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 왔습니다. 1983년에 '83 수퍼리그'로 시작해 평균 관중수만 20,974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과시하며 출발했던 프로축구였지만 이듬해부터 1987년까지 4년간 대회명칭, 방식이 계속 바뀌면서 팬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만 갔습니다. 특히 확실한 지역연고로 시작했던 프로야구와 다르게 체육부의 규제로 홈앤드어웨이 방식을 한동안 치르지 못하다보니 유랑 신세를 겪고 이 때문에 지역밀착형 팀이 없었던 것은 흥행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습니다.

기업 구단들의 연고 이전도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른바 '올드 마케팅'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 왔습니다. FC 서울은 1984년 럭키금성부터 시작해 1991년 LG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꽤 상당한 축구팬들은 LG가 안양 연고를 했던 점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 유나이티드 역시 전신 팀인 유공부터 시작해 SK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지만 부천에서 제주로의 연고 이전 문제로 FC 서울과 마찬가지 신세를 겪고 있습니다. 그나마 1983년 원년부터 참가한 포항제철이 포항 스틸러스로, 1984년부터 참가한 현대가 울산 현대로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프로축구 출범 초기에 참가했던 팀들이 사실상 거의 없다보니 올드 마케팅을 하기에도 머쓱하기만 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축구계가 프로축구 출범 초기의 옛 추억, 영웅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할지라도 이를 내세울 만한 스토리가 없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나라 축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프로축구에 스스로 먹칠을 가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아픈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 하며 좋은 활약을 펼친 옛 선수들, 팀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없다면 프로축구 나아가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도 부끄러운 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는 기억하면서 프로축구에서 크게 활약했던 대표적인 선수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국가대표밖에 없는 한국 축구'라는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계기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수원 삼성이 빅버드 입성 10주년을 기념해 관중들에게 나눠줬던 응원도구 클래퍼 (사진:김지한)
그런 의미에서 그나마 지난달, 수원 삼성이 수원 빅버드 입성 10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것은 축구계 전체적으로 의미 있었습니다. 당시 수원은 홈경기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 별칭을 '수원 빅버드'로 명명한 사람을 수소문해 찾아내서 감사 행사를 벌였는가 하면 수원 빅버드에 입성한 10년 전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경기를 가져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몇몇 서포터들 뿐 아니라 경기장을 처음 찾은 사람들까지도 수원 빅버드의 의미를 느끼게 해 큰 호응을 얻었는데 사실상 K리그 팀에서 처음 벌인 '올드 마케팅'이었다는 점에서 이 행사는 아주 뜻 깊고 값졌습니다.

프로축구도 내년에는 출범 30년을 맞습니다. 올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내후년 승강제 도입을 통해 재도약을 노리는 프로축구는 그런 의미에서 내년이 아주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쉬웠던 순간은 있어도 출범 초기부터 르네상스기를 맞이했던 1990년대 중후반, 그리고 최근까지 있었던 수많은 영광, 그 속에서 탄생한 영웅들을 조명하고 추억하는 자리는 분명히 마련돼야 합니다. 30년이라는 묵직한 시간, 역사에 걸맞게 다양하고 의미 있는 기념사업을 통해 좋았던 옛 기운을 이어받고 프로축구가 다시 태어나는 좋은 계기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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