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처음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안철수 교수는 “사람들이 한 달만 지나도 다 잊어버릴 것"이라며 스스로 ‘안철수 바람’의 소멸을 전망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도 박근혜를 넘는 ‘기적’ 같은 사건‘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것 같진 않다. 안 교수의 발언은 특유의 ’겸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안철수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후 언론은 무엇으로 안철수를 말할 것인가? 물론, 안 교수가 서울시장 재보선 야권단일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는다든지 모종의 역할을 통해 계속 뉴스거리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잊혀짐을 택하겠다는 그의 발언을 보건대, 쉽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매일 여론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 아무리 ‘기적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처음 봤을 때나 입이 짝 벌어지는 것이지 매일 보게 되면 그러려니 싶어진다. 이미 차기 대선 구도는 ‘박근혜 대세론’이 아닌 ‘박근혜 vs 안철수(혹은 그를 포함한 야권단일후보)’의 구도로 형질전환되었다.

‘안철수 바람’은 거대한 사회적 의미를 던졌다. 우선, 반MB 정서 앞에서 ‘박근혜 대세론’은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민주당이 그 반MB 정서를 흡수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중은 새로운 인물과 신선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으며, 그 방향이 4년 전 MB를 뽑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길이란 점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저 안철수를 ‘박근혜에 버금가는 지지율’로 박제화해버렸다. 안철수 바람이 던진 의미에 대해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정도로 축소 해석하면서 말이다. 언론에게 안철수는 그저 ‘박근혜에 버금가는 지지율을 가진 사내’ 정도의 의미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 그 자체가 아니라 안철수를 향해 있는 대중의 지지와 욕구일 것이다. 안철수를 개인의 차원으로 놓고보면, 최근의 상황이 단순한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람’이 아닌 안철수를 품은 ‘하늘’의 문제다.

▲ 9월 15일자 한국일보
안철수 바람에 대해 언론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안철수 바람을 전하며 여론조사의 숫자만 나열하는 방식에서 이제 탈피해야 한다. 물론, 여론조사는 편리한 방법이다. 바람의 크기나 파장을 쉽게 숫자로 보여줄 수 있단 점에서 언론의 선호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안철수와 박근혜를 여론의 장에 풀어놓고, 경주마처럼 달리게 하여 이를 관전하는 재미를 주는데 여론조사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여론조사 자체의 합리성과 목적성의 문제도 불투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론조사의 숫자만 부각될 경우 우리의 뇌리 속에 무엇도 남지 않고 그저 박근혜와 안철수가 달리고 있단 것밖에 떠오르지 않게 된다. 언론은 이제 안철수에 대한 검증, 안철수를 지지하는 거대한 실체에 대한 탐구에 나서야 한다.

50%의 후보가 5%의 후보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했다는 미담을 넘어서, 안철수의 비전이 무엇이기에 그런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를 더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바람’에 지배되는 선거가 어떤 뼈아픈 결과를 낳았는지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해오면서 가장 빈번하게 경험했던 ‘실패’ 가운데 하나였다.

언론은 이제 여론조사의 마법을 그만 설파했으면 한다. 언론이 통계의 주술을 외는 상황을 넘어서야 우리는 진짜 안철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다. 안철수의 ‘스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팬덤’을 형성한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다. 후진적인 이명박 스타일의 토건 정치와 실종된 민주주의 질서,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기득권 세력의 끊임없는 부패 스캔들, 이명박을 반대하는 것 외엔 콘텐츠가 없는 야당의 무력함 등 안철수 바람을 불러온 진짜 이유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안철수는 끝내 ‘박근혜의 지지율에 버금가는 사내’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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